아퀴나스는 고대 로마법학과 스토아학파의 자연법론을 계승하여 법의 위계질서를 永久法 lex acterna 自然法 lex naturalis 人定法 lex humana 神聖法 또는 聖經琺 lex divina 의 네 유형으로 분류했다. 영구법은 기타 세 유형의 법들의 바탕을 이루며, 우주의 지배자로서의 신이 인식하고 계획하고 명하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한다. 물리적 법칙과 도덕원리들 모두가 이에 포함되는데, 인간은 그 내용을 불완전하게 인식할 뿐이며 불완전하게 인식한 내용조차 불확실할 뿐이다. 모든 종류의 합리적 법이나 원리들은 여기에서 연원한다.

자연법은 오직 인간에게만 적용되며 합리적 행동의 본원적 원리들의 형식으로 나타난다. 자연법은 인간의 실천이성에 내재하는 근본원리들에 직접적으로 근원을 두고 있다. 인간의 행위에 관심을 가지는 실천이성의 본질은 인간에게 좋은 것을 꾀하고 나쁜 것은 피하는 데 있다. 그렇다면 자연법의 내용은 이 '좋음' the good 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달려 있다. 모든 사람이 획득하고자 애쓰는 것이 자연적 선 natural good 이라면 자연법의 제 1원리는 "인간에게 본래 좋은 것은 행해지고 추구되어야 하고 나쁜 것은 피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법의 기타 원리들은 바로 이 제 1원리를 구체화하는 것이며, 이는 인간에게 본질적으로 좋은 것 basic human good 과 본질적으로 나쁜 것 harm 을 구명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따라서 자연법의 원리들은 도덕적인 근본 원리이기도 하다.

인정법은 입법자가 인간사회의 조직과 통치를 위하여 고안하여 제정한 법이며, 자연법의 원리들로부터 도출된 것이며 자연법에 의존한다. 신성한 법은 영구법이 기독교의 성경에 명시적으로 표현되어 나타나는 도덕규범들과 법규범들로서 인간의 생존과 행위의 구체적 내용 제시하는 규범들이다.

 

문제는 자연법과 인정법이 충돌하는 경우 과연 인정법의 효력이 어떠한가라는 것이다. 우선 아퀴나스의 법개념은 다음과 같다.

"법은 한 정치적 공동체의 주권자가 제정하고 공포한, 공공복리를 지향하는 이성의 명령이다. 법은 한 정치적 공동체를 통치하는 주권자 princeps 의 실천이성의 명령이다" - Summa Theologiae.

아퀴나스에 따르면, 통치의 핵심은 자유로운 개인들의 지배이며 법의 핵심은 법에 기꺼이 복종하는 개인들의 행위조정에 있다. 법은 그 공공성 (공포되어야 함) 명확성, 일반성, 안정성, 실행가능성의 특징을 가지고서 구성원들을 공공적 논의의 참여자들로 대우하며, 이를 통해서 개인들은 서로의 행위들을 조정해 간다.

아퀴나스의 법유형론에서 인정법은 실정법이며, 이 인정법은 두 가지 상이한 방식으로 자연법과 자연권, 즉 보편타당한 도덕원리와 격률들로부터 도출된다. 첫 번째 방식은 '연역적 추론'에 의한 것 deduction 이다. 두 번째는 아퀴나스가 '확정' determination 이라고 명명한 방식이며, 대부분의 많은 법들이 이 방식에 의해서 형성된다.

아퀴나스는 확정의 방식을 건축의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건물 전체 및 문이나 문 손잡이의 구조와 형식에 관한 추상적 관념은 건물의 구체적인 설계도와 구체적인 문의 형태와 문 손잡이로 특정될 때 비로소 확정된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 것도 건축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설계자나 건축가가 결정한 건물의 구체적인 모습은 짓고자 하는 건물에 관한 기본적 관념에서 이끌어지기는 하지만, 어떻게 건물을 짓고 시설들의 겉모양이나 내부구조, 각각의 재료들은 어떤 것들을 선택할 것인지를 확정하는 작업은 건축자와 설계자의 자유이며 여러 측면을 고려하여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 즉 짓고자 하는 건물의 기본 관념과 목적의 범위 내에서라면 건축가의 자유는 충분히 고려되어야 하듯, 실정법의 경우에는 입법자의 입법재량이 충분히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두 번째 방식으로 자연법에서 도출되는 실정법들은 입법자의 재량에 따라서 다양하게 정해지며, 바로 입법자가 제정하였다는 점에서 법으로서의 구속력을 가진다. 즉, 그러한 법들은 이성으로부터 뿐만 아니라 제정되었다는 사실로부터 구속력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퀴나스는 실정법의 내용이 인간의 사회생활에서 반드시 존중하여야 하는 실천이성의 원리에 부합하는 범위 내에 있어야 법적 구속력을 가진다고 본다. 자연법 원리들은 한 가지 특정한 방향으로만 확정되고 구체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상이하지만 각각 합리적인 방식으로 입법자에 의해 제정되거나 법원에 의해 판결로 구체화될 수 있다고 한다. 즉, 여러 가지의 합리적 자연법 확정 방식과 내용이 가능하다.

법은 권위적 결정 authoritative decision으로서의 성격을 갖는다는 점을 인정한다. 이는 다른 사람과 어떻게 같이 살아갈지와 관련하여 구성원 각자가 어떤 방향으로 행동할 것인가를 법이 결정하였을 때 모든 구성원들이 그 법적 결정을 별다른 사정이 없는 한 일단 prima facie 해결책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그래야만 서로간의 행위조정이 가능해지고, 어떠한 형식이든 사회적 협동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다양하고 상이한 견해들과 이해관계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행위의 상호조정과 사회적 협동이 달성되려면 권위적 법적 결정은 필수적이다. 다만 정치적 공동체의 지배자 (주권자) 가 제정한 규범이라고 해서 모두 법으로서의 구속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며, 입법자가 제정한 규범이 법으로 인정되려면 일정 요건을 갖추어야만 한다.

다만 주권자가 제정한 규범이라고 모두 법으로서 구속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며, 입법자가 제정한 규범이 법으로 인정되려면 다음의 요건을 갖추어야만 한다.

  1. 이성의 명령일 것
  2. 공공복리를 지향할 것
  3. 통치자에 의해 제정/공포될 것
  4. 정치적 공동체 전체에 책임을 지며 관할권을 가지는 통치자일 것
  5. 어떤 행위를 하게 하거나 하지 못하게 할 것
  6. 강제력을 가질 것
  7. 준수될 것을 의도할 것

   1과 2의 조건을 충족하는 법들이 정의롭기 위한 요건은 (i) 주권자가 제정한 법규범은 공동선의 실현에 봉사하여야 (ratione finis) 하며, (ii) 국가가 제정한 규범의 정당성은 피치자에게 부과되는 부담이 비례적 평등에 부합하는지에 따라 (ratione formae) 판단되고, (iii) 국가의 규범은 주어진 권한의 한도 내에서 입법자가 제정한 것이어야 ratione auctoritatis 한다. 이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하면 이성적 양심의 법정 in foro conscientiae 에서도 외부의 법정 in foro externo 에서도 구속력을 갖게 된다.

 

법이 인간으로서 절대로 행해서는 안 될 종류의 행위들을 요구하고 있다면 개인의 도덕적 의무는 그 법에 불복종하고 저항하는 것이며, 법이 개인에게 그러한 행위를 할 권한을 준다면 그러한 권한 부여는 도덕적으로도 법적으로도 완전히 무효이다. 이는 제정규범이 자연법의 근본 원리들, 따라서 영구법 lex aeterna 을 침해하는 경우이다. 이 경우의 제정법규범은 '법의 부패 legis corruptio' 이며 법으로서의 자격을 잃게 된다.

그런데 입법자가 (i) 입법자가 공공복리가 아닌 개인적인 탐욕에서 법을 제정하거나 (ii) 입법자에게 부여된 권한을 넘어서거나 (iii) 공공복리를 고려하기는 하지만 사회구성원의 필수적 부담과 의무를 불공정하게 배분하는 법을 제정한 경우에는 제정법규범이 자연법의 근본 원리들을 침해하고 있지는 않지만 근본 원리들로부터 도출된 자연법의 이차적 원리들을 위반하는 경우이다. 이러한 실정법들은 부정의하며 이성적 양심의 법정에서 법으로서 구속력을 가지지 않는다.

양심적인 개인들이 부정의한 법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도덕적 해이와 무질서 turbatio 가 양산되거나 다른 구성원들이 그것을 말미암아 법을 어기는 다른 나쁜 행동을 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될 때눈, 설령 법이 부정의하여도 공공적 이익이나 개인적 이익에 부당한 해악을 미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일단 법에 복종하여야 할 도덕적 의무가 부여된다. 불복종이 가져올 이익과 해악을 형량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아퀴나스는 통치를 한 정치적 공동체의 정의와 평화를 확보하는 데 적절한 전반적 권위 (입법, 사법, 행정의 권능) 를 보유하여 행사하는 것으로 이해하면서, 통치 (국가적용)는 법에 의해서 규제되고 제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통치가 폭정이 아니려면 국가의 명령들 중 어떤 것들에는 저항할 권리를 가지는 자유롭고 평등한 인민의 통치 principatus liberorum et aequalium 이어야 한다.

이러한 통치는 두 유형으로 나뉘는데, 하나는 獨裁政 regnum: regal government 이며 다른 하나는 제한정부 politeia: political government이다. 전자는 통치자가 제한되지 않고 그 권력이 분리되지 않은 완전한 절대권력 plenitude potestatis을 가지는 정체이다. 본래 regal (regalis) 이라는 용어는 왕 rex 에서 유래한 것이기는 하지만 아퀴나스는 '독재정'을 단지 왕에 국한하지 않고 개인이건 집단이건 지명이건 선출이건 종신이건 임기제건 무관하게 절대권력을 가지고 지배하는 통치구조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 통치구조는 왕정이나 대통령제, 또는 귀족정이나 민주적으로 산출된 의회제에도 적용될 수 있다. 한 통치구조를 독재정 regal 으로 만드는 것은 그 권력의 완전성(제한되지 않음)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독재정이 법에 의해 제한될 수 있는가? Legibus solutes 원칙이 적용되었던 고대 로마 황제조차도 자신이 선언한 법의 명령에는 복종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황제 (또는 최고통치권자)는 신민에게는 복종의 의무를 부과하면서 자신은 그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즉 '부담의 공평한 배분' 이라는 원칙을 어겼다는 점에서 부정의를 저지른 것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독재정에서 최고통치자와 신민이 계약을 맺고 상호의무를 부담하고 있다면 그 계약을 위반하고 신민에게 과도한 의무를 부과하는 경우에도 정당한 권위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 된다.

 

아퀴나스는 최고통치자를 규제하고 제한할 목적으로 제정된 법들에 의해 통치작용이 제한되는 통치구조 limited government 의 유형이 독재정보다 낫다는 견해를 표명하면서, 혼합적 통치구조를 최상의 정체라고 본다. 혼합적 통치구조란 한 사람이 최고통치자이되 나머지 지배자들은 일종의 귀족정과 민주정으로 나뉘는 통치구조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권력과 공적 권위를 가지는 자들의 임명, 책임, 권한범위 등을 규율하는 법적 규정들이 반드시 제정되고 운용되는 통치구조여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입법부의 우위성을 강조하면서 아퀴나스는 입법권은 자유로운 전체 인민 tota multitude 또는 전체 인민을 대표하는 공적 인물들 persona publica 에 의해서 보유되고 행사된다고 말한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계승하여, 정치적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만일 자유에 가장 필수적인 권능, 즉 통치자들을 선출하고 통치자들이 잘못했을 때 교정할 수 있는 권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자유로운 시민이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아퀴나스가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 의 공동체라고 할 때 과연 누가 자유롭고 평등한 구성원에 속하는지에 관하여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 J.Finnis. Aquinas: Moral, Political and Legal The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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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퀴나스의 법이론에서 법의 지배는 이론상으로는 '실질적 법의 지배'라고 보아도 될 것이나, 당시의 법현실을 고려하면 법을 제정하는 궁극적 권한을 가진 자가 교황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역사적 사실은 자연법론이 교황의 권력을 강화하는 데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보여준다.

 

Posted by 김구공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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