홉스의 법률관은 명령주의적 이론이다. 주권자를 국가 내의 모든 문제들에 대한 최종 결정권자로 파악하고, 법을 낳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주권자의 권위라고 말한다. 법의 핵심은 명령으로서 주권자가 권위를 행사한 산물이라고 보기는 하지만, 사실적 강제력을 독점한 권력자의 명령으로만 단순하게 축소되지 않는다. 작위/ 부작위만 아니라 어느 것을 해도 되고 (허용) 무엇이 정당/ 부당한지 무엇이 좋고 나쁜지를 정하는 것도 주권자의 명령에 포함시킨다는 점에서 ‘조야한 명령주의’와는 다르다고 평가된다.
‘조야한 명령주의’ 는 19세기 영국의 법학자 J. Austin의 법이론이다. 법은 ‘명령의 특수한 유형’ a species of command’이다. 명령은 힘을 가진 자가 의욕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 의사에 따르지 않는 경우 해악을 가할 목적을 가진 강제력으로 뒷받침되는, 힘 가진 자의 의지의 표현이다. 이처럼 조야한 명령주의는 법을 해악을 가하겠다고 강력하게 위협함으로써 뒷받침되는 명령으로만 보기 때문에 ‘깡패의 법이론 gunman theory of law’ 이라고 희화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법률관과 주권론에 따르면, 복종의 습관을 가진 신민과 누구에게도 복종하지 않는 주권자 사이에는 단순한 수직관계만이 존재한다. 등뼈가 인간 신체에 중요한 부분이듯이 이 신민과 주권자 사이의 수직적 구조는 법을 가지고 있는 사회의 본질적 부분을 이룬다. 이러한 관점에서 주권자란 ‘위협에 의해서 지탱되는 명령을 발할 지위에 있는 자’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조직폭력배 집단의 일반명령과 법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법의 본질을 [바로 앞에서 풀이된 속성을 가지는] 주권자에 의해서 제정되고 처벌의 위협에 의해서 유지되는 규칙’으로만 보는 [조야한]명령주의적 이론에 따르면, 법과 조직폭력집단의 명령 사이에는 어떤 구별도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 이론에서 의무는 처벌의 위협에 대한 복속에, 법의 권위는 전적으로 불복종하는 자에게 해악을 가할 능력과 의지에만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은 바로 그 규범적 성격으로 인해서, 즉 단순한 처벌의 위협을 넘어서서 수범자에게 요구되는 행위의 기준 설정한다는 점에서 폭력집단의 일반명령과는 다르다. 법규범은 물리력을 가진 누군가가 그 규범을 원하기 때문에 구속력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 법규범을 발할 권위를 가진 자가 제정하였기 때문에 법규범으로서의 구속력을 가지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법규범을 제정할 권위는, 법 제정자가 규율하려고 하는 수범자들에게 이미 구속력을 행사하고 있는 또 다른 법규범으로부터 나온다. 이러한 특징이 타당한 법과 조직폭력집단의 일반명령과 결정적으로 차이가 나는 점이다.
홉스는 법을 최고통치자 (주권자) 가 자신에게 복종하는 사람들에게 명령하고 공포한 규칙으로 파악하면서도, 법을 한편으로는 신민에게 직접 작위 부작위 허용을 명하는 차원의 규칙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재판관과 법공무원이 어떻게 집행할 것인지를 명하는 차원의 규칙으로도 이해한다. 법은 단지 행위 명령 / 금지의 규칙이 아니라 법공무원(법원/행정청 등) 에게 권능을 부여하는 규칙이기도 한 것이다.
홉스에게서 주권은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하나는 통치권 governmental power 의 요소이며, 다른 하나는 통치권위 governmental authority 의 요소이다. 전자는 사회구성원 간의 평화로운 협동관계를 실현하고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사회 자체를 수호하기 위하여 행사되는 사실상의 권력이다.
반면 통치의 권위 요소는 ‘통치할 권리 the right to rule’을 핵심으로 한다. 주권을 이루는 통치권의 골자는 주권자가 통치권력을 행사하여 구성원에게 강제를 부과하는 것이 일단 (prima facte: 그에 반대되는 강력한 사유가 없다면) 도덕적으로 정당하고 피치자들은 그에 복종할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라는 데에 있다.
홉스의
주권자가 통치할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은 그럼으로써 안정과 평화를 확보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주권이란 통치할 권리를 의미하며, 법은 신민이 마땅히 복종할 의무가 있는, 주권자의 통치권 the right to rule and to be
obeyed 의 표현이라고 보면 정확할 것이다.
Th. Hobbes - Leviathan.
HLA Hart - The Concept of Law
R. Ladenson - In defense of a Hobbesian Conception of Law.
김도균, 최병조, 최종고 - 법치주의의 기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