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생계형 편견이라는 것을 접하게 될 때가 있다. 사업을 하다가 외국인 노동자나 파트너에게 사기를 당했다거나, 여행을 갔다가 폭행이나 강도를 당하게 된 경우 등이 그것이다. 누구나 신체와 재산의 안전에 대한 본능이 가장 강력하기 때문에, 그에 따라 방어적 인지의 프레임을 형성하게 되는 사고의 흐름에서 일반화의 논리라거나 통계적 확률 등은 무력해질 수 밖에 없다.

 

외국인 전용 (열등) 목욕탕의 기사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돌을 던졌다. 어떤 사람들은, 흑인이라는 이유로 버스에 탈 수 없었던 로자 파크스를 인용했고, 어떤 사람들은 한국인들 또한 외국에서 똑같은 차별을 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성을 높였다. 다른 민족을 조직적으로 학살한 적도 없고 특정 민족이나 인종을 격리 거주 구역에 몰아넣고 외출시 특별히 허가받은 낙인과 목걸이를 요구한 역사도 없는 한국이 가장 인종차별이 심한 나라라고 성토하는 글을 보기도 했다.

 

나는 그 분노하는 사람들이 평소에 얼마나 자주 연 소득 1만 달러 이하의 흑인, 아랍인, 인도인, 캄보디아인 등 10명 이상과 알몸으로 공중목욕탕에서 마주하는지 잘 모른다. 인터넷에서 큰 인기를 끄는 외국 드라마는 백인 뿐이고, 백인들이 운영하는 기업의 핸드폰과 점퍼와 가구로 두른 가정을 끊임없이 전시해대며 한국의 유통망이 백인 국가 제품들을 들여오면서 얼마나 폭리를 취하는지에 대한 글을 공유해대며 사는 사람들이 평소에 차별 받는 유색인종들과 얼마나 자주 인사하며 돈을 거래하고 살을 부대끼는지도 의문이다.

 

재산권과 치안이 정교하게 보장된 현대 선진국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낯선 이에 대한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음이 자신의 노력과 교육과 교양 혹은 좋은 가정 환경 덕분인 척 으스대며 가난하며 배운 것이 없어 편견으로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 사람들을 멸시하고 조롱하곤 한다. 안전한 성채 속에서만 사는 부유한 귀족들만이 갖출 수 있었던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교양의 옷을 치렁치렁 두르고 방어적 혐오를 혐오로 되돌리며 가난함과 못 배움의 결과를 좀 더 세련되게 무시하고 조롱하면서 자신을 선진국 중산층의 교양 있는 백인들에게 감정이입하며 어떻게 유색인종인 한국인 따위가 다른 유색인종을 차별하느냐고 핏대를 세우기도 한다.

 

그렇지만 상대의 인종과 외모를 의식하는 티도 내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미국에서는 흑인이 백인보다 5배 이상 더 사형을 당하고 백인이 피해자인 경우는 흑인이 피해자인 경우보다 두 배 더 많이 해결되며 유럽은 부르카를 금지시키고 격리거주구역을 만들며 타 인종과는 살아도 무슬림과는 못살겠다는 응답이 9할을 가볍게 찍는 것이 현실이다. 유색 인종이나 동성애자와 함께 축구 경기를 관람할 수 있고, 그가 충분한 교육을 받았으면 함께 아이폰을 팔 수도 있지만, 그들을 내 아이의 보모로 맡기기는 께름직하고 아파트 위층 아래층으로 살기에는 꺼려져서 백인 마을에 프리미엄을 주고 이사하는 것이 '다양성을 존중하는 선진국 중산층 시민'들이 '실제로 취하는 삶의 모습' 아니던가.

 

외국인을 구별하여 열악한 시설로 보내는 것은 교과서적 차별이다. 그 행위를 옹호해줄 수는 없다. 다만 외국인을 흔쾌히 받아들였을 때 내국인들이 떠나고, 그 결과 목욕탕이 망하게 된다면 그 연쇄를 어떻게 사회적으로 제도적으로 문화적으로 다루어야 할지는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저 돈을 많이 벌어서, 차별과 편견 없이도 생계에 위협이 되지 않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개인적 다짐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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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구공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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