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의 거의 절반 이상의 인구가, 여성의 출산율이 자연 인구 유지를 위한 최소 수치인 2.1을 밑도는 국가에 살고 있다. 이는 멜버른과 모스크바, 상파울로 그리고 서울, 테헤란, 도쿄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이는 서구나 부유한 국가들에만 국한되지 않아서 아르메니아, 부탄, 엘살바도르, 폴란드, 카타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1957년에 4에 가까운 절정을 이루었던 미국의 출산율은 이제 2를 간신히 넘는 정도인데 다른 부유한 국가인 독일이나 일본 등과 비교하면 단연 높은 수준이다. 인건비가 저렴한 브라질, 러시아, 이란 및 남 인도와 같은 개도국들에서도 출산율은 1980년 이후로 꾸준히 하락하는 추세다. 중국의 노동인구는 지난 35년간의 경제적 기적 이후로 2012년 피크를 찍고 감소하고 있으며, 통치지도자들에게 중국이 부유해지기 전에 늙어버릴 것이라는 공포를 안겨주고 있다.

 

매우 높은 출산율은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으나 사하라 이남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니제르, 말리, 소말리아, 우간다 그리고 부르키나파소 등 5개국이 6이상의 출산율을 기록했다. 5 이상의 국가는 18개국에 이른다. 이라크 요르단 필리핀 과테말라 등의 예외를 제외하면 사하라 이남 지대가 출산율이 3~4에 이르는 국가들을 이룬다. 파키스탄, 이집트, 아이티, 온두라스 및 볼리비아의 출산율은 3을 약간 밑돈다.

 

이것은 서구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그리고 경고의 알람으로 때로는 히스테리 증상을 불러일으키는 소식으로 다가왔다. Jonathan V. Last, 는 그의 책 "What to Expect When No One's Expecting,"에서 '다가올 인구 재앙'을 '미국의 baby bust'로 표현했다. 국립 국방대학교의 Steven Philip Kramer 교수는 '출산 갭'을 줄이고 적은 노동자가 많은 은퇴자를 부양하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 '출산 촉진' 정책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지한 이코노미스트지마저도 '사라져가는 일본인' 에 대한 경고 기사를 내기도 했다.

 

이러한 어두운 예언은 긴 역사를 갖고 있으며, 별로 독창적이지도 않고 결국 사실에 부합하지도 않았다. 시어도어 루스젤트는 1934년 "Twilight of Parenthood" 와 같은 책에서 대공황시기에 앵글로색슨들이 "인종적 자살"을 할 것이라고 우려했으며 이는 서구 세계의 상상을 사로잡았다. 거의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서구의 베이비 붐 추세 이후로 재앙의 합창은 다시 부활했는데, Paul R Ehrlich 의 1968년 책 "The Population Bomb" 에서는 식량의 생산을 압도하는 인구 증가가 전지구적인 재난적 맬더스트랩을 일으킬 것이라는 전망들이 팔려나갔다. 이런 공포의 행진은 지치지도 않아서, "The Birth Dearth" (1987) 이나 "The Empty Cradle" (2004) 같은 제목의 책들은 꾸준히 반복해서 서점에 나타나곤 했다.

 

왜 시람들은 이런 전세계적 트렌드를 집단 자살과 같은 표현을 써 가면서 재앙으로 다루는 것일까? 이는 인구 감소가 국가적, 군사적, 경제적 파워의 저하를 발기부전처럼 연상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Margaret Artwood 의 1985년 디스토피아 고전 The Handmaid's Tale 이나, P. D. James 의 소설에 기반한 멕시코 감독 Alfonso Cuaron 의 2006년 영화 "Children of Men" 등에서 이런 근심들이 예술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사실, 느려진 인구 증가는 인류의 번성에 많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돌이킬 수 없는 기후 변화와 끝날 전망이 보이지 않는 핵 위험의 시대에, 인구의 규모가 곧 힘이라는 역사 속의 공식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출산율의 저하는 부의 성장이나 세속주의의 기능이 아니며, 이는 전세계적인 것이다.




 

총 출산율이 2.1 이하로 떨어졌을 때조차도 과거 인구 증가의 '모멘텀'은 그대로 남아 인구를 수십년 간 증가시켰다. 인구 총수가 감소하는 시기가 닥치더라도 이 추세는 곧 사라져 전체 추세에 큰 영향을 주진 못했다.

 

물론 예외도 있는데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한 이후 러시아는 급격한 출산율 감소를 경험했고 이는 높은 성인 남성 사망률과 맞물려 (이는 음주 성향과 깊은 관계가 있다) 널리 알려진, 러시아 인구의 지속적 감소를 가져왔다. 출산율은 이후 1.6 수준으로 반등했고, 음주 관련 규제의 도입으로 노동인구 감소율도 둔화되었다.

 

절망적으로 가난하지는 않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가임기 여성들은 연적으로 아이를 갖는 부담과 대가를 비교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젊은 여성은 특히, 물론 젊은 남성들마저도, 높은 이혼율과 더욱 오래 사는 고령의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환경 속에서 결혼과 육아를 중요한 리스크로 보고 있다. 이 리스크를 준비하고 부담해야 하는 것은 대부분의 출산을 하게 되는 20~35세 사이의 청년들에게 가장 큰 짐이다. 브라질, 이탈리아, 터키 그리고 미국에서 청년들은 더 높은 교육과 그로 인한 더 많은 교육 채무를 요구하는 커리어를 준비해야 한다. 대학 수준의 학위를 지니더라도 고용은 불확실하고 커리어패스는 갈수록 불안정해지고 있다.

 

동시에, 맞벌이는 갈수록 핵심이 되어 가고 있다. 부유한 국가와 빈곤한 국가를 가릴 것 없이 소득은 위태로워지고 있다. 높은 주택 가격과 임대료, 모기지론의 높은 장벽은 갈수록 새로운 가정을 만들어 낼 동력을 제한하고 있다.

 

빠르게 감소하는 출산율은 끊임없는 근심걱정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반대로 그것이 줄 수 있는 혜택은 거의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첫째, 전술한 대로 출산율의 감소는 전반적으로 거의 모든 지역에서 여성들에게 기회를 준다. 결혼의 연기와 출산을 2명 이하로 줄이는 추세는 개발도상국에서도 일반적이며, 이는 젊은 여성의 교육 수준 증가와 커리어의 개선과 연관되어 있다. 출산 저하를 걱정하는 것이 거의 남자들뿐이라는 점은 전혀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둘째로 중간 수준의 노동력은 저출산사회에서 더 높은 생산성을 보인다는 점이다. 이것이 1970년 이후 중국의 경제성장이 인도를 압도한 원인 중 하나이다. 남인도 특히 Kerala 주에서도 상당한 출산율 감소는 두드러지는 경제와 교육 성과로 되돌아왔다. 당연히, 어린아이들은 서비스업과 농업 및 산업에서의 육체노동 모두에서 숙련된 청장년노동자만큼의 생산성을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기초교육을 해야 하는 아이들이 줄어들수록 고급 교육에 더 자원이 집중될 수 있다. 비록 중국의 경기 성장이 초기에는 농촌 지역의 수많은 저임금 이민자 유입에 힘입은 적도 있지만, 이 나라는 인력의 양이 아니라 곧 고급 교육을 받은 고급인력의 질이 떠받치는 경제체제로 성공적으로 이행했다.

 

셋째, 젊은이들의 고용과 커리어 경험을 강화함으로써 저출산은 사회적 정치적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 고출산율 사회는 생산적인 일자리를 찾지 못한 젊은이들을 양산하게 마련이고, 전문가들은 이들이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아랍의 봄과 테러리즘에 기여하는 'youthquake' 현상을 일으켰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출산율이 감소하기 시작한 이후 20~30년 후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됨으로써 청년들은 더 이상 노동시장의 과잉공급이 아니게 된다. 고용주들에 대한 그들의 상대적 가치가 높아짐으로써 이에 따라 경제적 직업적 전망도 개선되고, 그로 인해 결혼과 가정 형성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이는 한 세기 이상 세계 최대 경제 체제인 미국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젊은 노동자들은 심각한 고용과 커리어 문제에 직면해 있고 이는 나이든 노동자들이 그들의 직업을 틀어쥐고 있는 현상에서 일부 기인한다. 지난 10년 간 노동참여율은 고령층에서 더욱 높아졌고, 이는 고령노동자들의 건강과 생산성 향상, 육체노동을 필요로 하는 일자리의 감소와 서비스업의 증가, 그리고 파괴적인 금융위기가 베이비부머들의 은퇴 계획에 미친 충격 등과 관계가 있다. 아무도 지난 6년간의 추세로부터 미래를 전망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낮은 출산율은 해당 국가의 정부들이 자국의 청년들을 외국으로 내보내 직업을 찾게 하고 돈만 송금하게 하고 자국내에서 정치적 활동에 참여할 위험을 줄이는 따위의 인구 유출 정책을 쓰게 할 유인을 낮춘다.

 

이러한 정책들은 때로는 명백하고 때로는 암시적으로 실제적 양가감정과 결함한 상태로 멕시코, 필리핀,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그리고 인디아에서, 사하라 이남 지대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서 마찬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해외 이민이 필수적인 삶의 길이 되는 방식은 한계가 분명하다.

 

다른 수많은 사회적 변동이 그러하듯 저출산의 확대는 수많은 도전과 극복해야 할 과제를 안겨준다. 이에 적응하지 못한 정치 체제는 골치아픈 재정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후한 공공연금제도를 갖춘 유럽은 청년 취직자들의 감소와 기대여명의 증가로 인해 큰 불안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각국의 지도자들은 지속적인 시스템 유지를 위해 빠른 정년과 높은 '연금 지불 비율'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할 상황에 놓여 있다.

 

저출산 추세는 조정될 수 있고, 역전될 수도 있다. 사실 이는 스웨덴과 프랑스 같은 일부 국가들이 이미 경험했던 추세이다. 전후 스웨덴은 1970년대와 1990년대에 1.6 수준의 낮은 출산율을 기록했지만, 이는 아마도 다양한 육아지원시스템 덕분에, 1.9 수준으로 반등했다. 프랑스는 아이를 가진 젊은 가족에 장기적인 공공 지원책을 마련했고 출산율은 스웨덴 수준으로 낮아지지 않았다. 다른 국가들은 맞벌이 부모를 지원하기 위해 반나절을 교육하고 일찍 마치는 전통적인 학교 일정 제도를 재고하기 시작했다.

 

스웨덴과 러시아의 이러한 경험들은 일각이 주장하듯 저출산 문제가 멸망으로 치닫는 '죽음의 나선' 과 같이 호들갑을 떨 공포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물론 세계 경제는 여전히 취약하고, 노령 사회라는 불길한 전망이 여전히 안전한 추정이긴 하지만, 인구 감소는 어찌되었건 반복되는 하나의 유행이기도 하다. 수많은 다른 유행처럼 이 또한 지나갈 것이고, 인본주의는 대처해야 할 다른 문제들이 많다. 저출산은 그 중의 하나가 아니다.

   

 

By MICHAEL S. TEITELBAUM and JAY M. WINTERAPRIL 4, 2014

 

Posted by 김구공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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