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일하는 방, 그리고 잠자리이기도 한 방에서 아내가 먹고 마시고 요리하고 세탁과 다림질을 비롯한 여러 집안 일을 해야 한다는 것보다 부부 모두에게 더 비참한 일은 없을 것이다” 

1820년대, 당시 영국의 지도적 사상가이자 정치적 활동가였던 프랜시스 플레이스와 윌리엄 코벳은, ‘독립’ 가옥의 장점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덕분에 아내는 방을 더 잘 정돈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도덕적인 면에서도 좋은 영향을 끼친다. 아이를 돌보는 것도 전처럼 늘 내가 있는 자리에서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방에 불을 피우고 요리라든가 설거지, 청소, 세탁, 다림질을 하고 있는 아내의 모습을 더 이상 보지 않아도 좋게 되었다”

 이는 단지 여성에게 가사일만을 요구하는 구태적 성역할의 배분 이상의 의미가 있는데, 바로 여성 노동 과정의 ‘은폐’ 이다. 복음주의와 산업혁명의 결합, 그리고 ‘방’을 갖춘 가옥의 보급으로 프라이버시가 자리잡고 가족이 하나의 경제단위로 성장하면서, 가사노동은 아내의 것임과 동시에 숨겨야만 하는 노동의 절차가 되었다. 힘들게 일하고, 혹은 바깥에서 위대한 일에 종사하고 돌아온 가장을 위해서, 가정은 완전히 준비되어 있어야 했다. 물이 길어져 있고, 화덕에는 연료가 채워져 있고, 집 안은 정리되고 청소되어 있고, 시트 식탁보 의복 등은 말끔하게 세탁, 개조, 수선되어 있어야 했다. 가장이 먼 곳으로 일하러 떠날 때에는 아침 일찍 도시락이 준비되어 있어야 했으며, 이 지출들을, 가장이 주는 빠듯한 월급 내에서 해결되어 있어야 했다.
 그리고 이 모든 절차들은, 이러한 노동들을 하다 보면 당연히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때와 먼지로 찌든 상태로 아내가 있어서는 안 되었다. 아내는 마치 투명인간처럼, 가장의 눈에 띄지 않게 가사를 처리하고 요리를 내놓으며 그릇을 닦고 아이를 키워낸 다음에, 말끔하고 정숙하나 또한 성적으로 요염하게 준비된 상태여야 했다. 근대 이후 가사 공간의 ‘분리’는, 이런 함의를 또한 의도하여 설계되었고 덕분에 가장은 자신의 가장 친밀한 가족이자 동료가 지저분하고 끊임없는 노동을 ‘격리’함으로써 더욱 편안히 외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2015년, 장기 불황의 초입에 접어든 한국에는, 구태적 성역할의 조정에 대한 여론의 강한 요구와 함께 ‘집에서 요리하는 남성’ 에 대한 선호와 성적 코드가 새로이 조명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잡지에서는, <남자들의 항변:요리 좀 못하면 안됩니까> 라는 제목 하에 이러한 내용의 아티클이 게재되었다.

 "요리가 뭔데? 요리프로그램에 대한 최근의 관심. 그걸 반영하는 기사들을 보면 남자들이 정육점 고깃덩어리처럼 줄지어 걸려 있는 것 같다. 어떤 놈이 신선한지 여자들이 팔짱 끼고 보고 있는 것 같다. 앞치마 두르고 부엌을 분주히 돌아다녀야 남자구실을 한다는 거지. 이것도 차별 아닌가?"



 직접 식재료를 준비하고 메뉴를 고르고 채소를 다듬고 불을 조절하며 다양한 양념과 맛의 향연을 보여주는, ‘남자의 요리’. 그것은 심지어는 과거 여자의 몫이었던, 너무나도 당연했으면서도 독립된 공간으로 은폐되기까지 했던, 음식 준비의 과정이, 더 많은 헤게모니를 쥔, 남성들의 손을 거치면서, 미디어의 세트와 무대 조명을 받는 ‘공연’으로 재탄생했다. 요리하는 남자는 숨지 않는다. 재와 먼지와 피곤에 찌들어 있지도 않는다. 드라마 ‘한니발’의 메즈 미켈슨과 ‘삼시세끼’ 차승원, 그리고 ‘집밥’ 백종원은, ‘여자들의 일’을 하는 것이 나의 남성성을 털끝만큼도 위협하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탄탄한 근육과 체격으로 내보이며 맛과 향내의 콘서트를 펼친다.

 이러한 스펙터클이, 성적으로 매력을 뽐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수많은 여성들은 요리하는 한니발 렉터 박사와, ‘차줌마’와, 그리고 ‘백선생’ 의 새로운 섹시함에 환호했고, ‘나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지만, 뒤에서 다가가 끌어안고 바지를 내리고 싶을 지경이다!’ 고 외치기 시작했다. 남성의 가사 노동과 여성의 욕망, 어느 것도 숨기는 건 없다. 그래서인가? 구태적 성역할이 흔들리고 세상의 지형이 진화의 무대로 헤쳐모이기 시작하자, 과거의 서열에 익숙해진 채, 어느새 자신들이 새로이 바뀐 레이스의 한참 뒤에 내팽겨쳐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일군의 무리들이 볼멘 소리를 내뱉는다. “이것도 차별 아닌가?” 아무도 귀기울여줄 필요가 없는 이런 구시대적 항변은, 음식물 쓰레기 통에 좀 숨겨놓는 게 어떤가.


Posted by 김구공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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