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장관리

카테고리 없음 2013. 10. 14. 11:58



부유한 독신 산양치기 처녀 마르셀라를 사모하다 자살한 (수많은) 청년 (중 하나인) 그리소스토모의 장례식에 느닷없이 죽음의 주인공(?) 마르셀라가 나타나다. 그녀를 처음 본 사람들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경탄의 탄성조차 내뱉지 못한 채 그녀를 멍하니 쳐다보는 가운데 상주 암브로시오가 마르셀라를 비난하다

“이곳엔 우연히 온 것인가? 오, 산 속의 잔인한 바실리스코 괴물이여! 네 등장과 더불어 너의 냉담 때문에 목숨을 잃은 불쌍한 자의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보기 위해 왔는가? 혹은 네 잔혹한 행적을 뽐내기 위해 왔는가?”


“오 암브로시오! 나 자신을 해명하러 온 것이며, 그리소스토모가 받은 고통과 그의 죽음을 모두 나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얼마나 이치에 맞지 않는지 말씀드리기 위해 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늘이 제게 아름다움을 주셔서,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이 제 아름다움이 저를 사랑하는 여러분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고 말씀하지요.
여러분이 제게 사랑을 보여주셨다는 이유로 제가 여러분을 사랑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씀하셨지요.

그렇지만 아름답기에 사랑받는 사람이 자신이 사랑받는다는 이유로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듭니다. 더욱이 ‘아름답기에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 비록 못생겼더라도 나를 사랑해주세요’ 라고 말하는 것은 어폐가 있지요.

진정한 사랑은 깨지지 않으며 스스로의 마음에서 우러나야지 강요해서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왜 제게 나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마음을 줄 것을 강요하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고 하십니까?

하늘이 저를 아름답게 만들었듯이 저를 못생기게 만들었다면 여러분들이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가 불평하는 게 옳았겠습니까? 하물며 저의 이 아름다움은 제가 선택한 것이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그것은 하늘이 내려주신 은혜일 뿐 제가 달라고 한 적도, 선택한 적도 없었습니다.

만일 정절이라는 것이 육체와 영혼을 더욱 더 아름답게 꾸며주는 미덕이라면 왜 아름다움으로 인해 사랑받는 여인이 그저 재미로, 그리고 강압적으로 달려드는 남자의 의도에 의해 정절을 잃어야만 하는 겁니까?

저는 그리소스토모에게 아무런 희망도 준 적이 없고, 그건 다른 남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 잔혹함이 그를 죽였다고 하기에 앞서 그의 집착이 그를 죽였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겁니다.

저는 자유로우며 구속당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도 사랑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지요. 이 사람을 속이고 저 사람에게 구애하지 않으며, 한 사람을 농락하고 다른 이의 마음을 유혹하지도 않았답니다. 이 마을의 양치기 여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산양을 돌보는 것이 제 기쁨이지요. 결국 이 산이야말로 제 갈망의 대상이며, 만일 제가 이곳에서 발걸음을 내디뎌 제 영혼이 본향을 찾아가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천국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함일 것입니다”


- Miguel de Cervantes Saavedra, Don Quixote of La Mancha



Posted by 김구공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