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역사는, 다른 것들 중에서도, 토지에 덜 얽매이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기도 했다. 18세기 프랑스의 중농학파는 토지야말로 부의 보증이라 보았고, 애덤 스미스는 토지를 노동과 자본과 나란히 두어 생산을 만들어내는 3요소로 정리했다. 얼마 후 토마스 맬더스는 토지의 타고난 한계야말로 인구 증가가 맞닥뜨릴 재앙이라고 보았다.

 이런 재앙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 서구 국가들은 토지 부족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을 찾아냈는데, 어떤 것들은 독창적이었고 – 고층 건물, 인공 비료, 교외 지역 – 어떤 것들은 비도덕적 – 식민지 개척, 토지소유의 몰수 – 인 방식이었다. 발달한 교통수단은 더 먼 토지를 가깝게 이용할 수 있게 했고, 지구 반대편에서 곡물을 수확하거나 더 먼 교외 지역에 노동자들이 거주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높은 생산성은 더 좁은 농장에서 더 많은 작물을 생산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GDP 대비 토지의 가치도 크게 하락했다. 20세기 후반 선진국 경지에서 토지는 충분히 주변화되어, 경제학 교과서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지 않을 소재가 되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일부 미래학자들은 교통과 통신의 발전이, 토지와 입지의 중요성을 실제 삶에서 떨어뜨릴 것으로 교과서에 기재하고 믿곤 했다.

 그러나 토지에 대한 관심은 다시 폭발하기 시작했는데, 이제 문제는 토지 전체의 공급부족이 아니라, 특정 장소의 부족 – 세계경제의 불균형한 생산을 책임지고 있는 도시 공간의 부족이 핵심 이슈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 장소에 대한 높은 토지가격은 성공에 수반되는 필연적인 결과 같은 것이었는데, 그러나 또한 세계경제에 가혹한 비용을 요구하는 왜곡의 산물이기도 했다. 혹자는 1960년 이후로 이 왜곡은 미국의 GDP 를 13% 이상 손상시켰다고 추산했다.




 Old kent road to mayfair

 토지의 새로운 위상은 두 가지의 발전에 근거한 것인데, 첫째는 역설적으로 1970년대 이후로 두드러지기 시작한, 컴퓨터와 통신의 발전이다. 어떤 면에서 이 혁명은 Frances Cairncross 가 전망했던 ‘거리의 종말’ 과 함께 온 것인데, 서플라이체인은 국경과 대양을 초월하여 소비자 서비스와 재화를 공급할 수 있게 된 현상과 함께한다. 거리는 죽었지만, 입지는 그러하지 않았다.

 20세기 중반 선진국에서는 수많은 활기넘치던 대도시들이 축소되었다. 1980년대에 이중 일부는 부활하였는데, 하버드대의 Edward Glaeser 와 CREI의 Giacomo Ponzetto 는 이것이 수익성 좋은 지식집약적 산업의 성장에 기인한 것으로 파악했다. 트레이더들은 더 많은 투자자를 통하여 더 많은 금액을 관리할 수 있게 되었고,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세계시장을 통하여 더 많은 제품을 저렴하게 판매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지식집약적 경제활동의 산물이 폭증하자, 아이디어를 생산하는 장소의 가치도 그렇게 되었다.

 Lund 대학의 Thor Berger 와 옥스포드 대학의 Carl Benedikt Frey 또한 이 사상을 지지하는데, 1980년대 이전에는 도시 노동력의 숙련도와 새로운 종류의 직업을 창출해내는 역량간의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없었다. 하지만 80년대 이후로 새로운 카테고리의 고숙련 직업군과 더 많은 수요들이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Mr Glaeser 연구진은 메트로폴리탄 지역의 인구와 이 지역 내 노동자들 생산성의 강한 상관관계를 발견하였다. 아이디어 중심 산업이 자리잡은 도시에서는 노동자들이 더 지식을 더 빠르게 모으고 축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류 도시들은, 다른 도시들이 쉽게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혁신적 활동의 뜨거운 요람이 되었다. 무리를 이루어 모인 사람들은 서로의 고용 기회와 잠재적 소득을 북돋았고, 방갈로르에서 오스틴까지, 밀란에서 파리까지, 토지는 결과적으로 더욱 희소하고 귀중한 자원이 되었다. 그 결과; 켄터키 지역의 시골 토지 1헥타르의 잠재적 가치는 실리콘밸리 산타클라라 1헥타르의 가치에 비해 한없이 조그마해졌다.

 산타클라라 토지의 부활에는, 아직 더 지을 것이 많음에도 또다른 고통스러운 요소들이 뒤따랐는데 바로 증가하는 토지사용규제였다. 세계적 IT 기업들의 고향인 마운틴 뷰의 산타클라라 타운을 예로 들자면, 아직 시내 주택의 절반 가량이 1인 가구 건물들이고 인구밀도는 이제 제곱킬로미터당 2,300명을 갓 넘은 수준으로써, 딱히 엄청나게 밀집된 도시도 아닌 샌프란시스코의 1/3에 불과하다.

 이런 클러스터링이 지역경제에 일으키는 반향과 그 비용 – 이를테면 19세기의 붐비는 슬럼가들이 범죄와 전염병과 환경오염과 계층갈등의 온상이 되었던 - 을 고려해 보면 토지사용규제의 증가는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정부는 이러한 빌딩들에 새로운 규제를 적용하거나 연장하여 고도와 디자인을 제한하고 주차장을 갖출 것을 요구하고 그린벨트를 강제하기도 했는데, 또한 이런 규제들은 전 세계적으로 비슷하게 복제되었다.

 대도시경제가 20세기 이후 부활하면서 인구도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는데, 런던과 뉴욕의 중심부에 사는 인구가 이토록 많아진 시점은 없었다. 그렇게 주택 건축의 질에 대한 상승한 요구도 규제의 덤불과 부딪혀 예상치 못한 결과들을 빚어내기 시작했다.
 맬서스의 친구이자 또한 저명한 경제학자인 리카르도는, 이러한 희소자원의 소유자들이 뜻하지 않은 횡재를 하게 되는 지대추구경제들에 대한 예견을 했다. 곡물의 공급이 부족해지면 곡물가가 상승하고, 이는 지주들로 하여금 더 많은 토지를 경작하게 한다. 높은 식량가격은 모든 지주들에게 이익이 된다. 그러나 높은 생산성을 가진 땅을 깔고 앉은 군주는, 어떤 혁신이 없이도, 그가 어쩌다가 갖고 있던 자원을 더 많은 사람들이 원하게 된 고로 그의 소득이 갑작스럽게 뛰는 걸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오늘날 세계의 도시들이 직면한 문제들이다.

 예일대학교 Robert Shiller 의 추산에 따르면, 미국에서 새로운 주택을 건설하는 비용은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80년대와 거의 차이가 없다. 그러나 2000년대의 자산버블은 주택가격을 동기간 대비 30%이상, 보스턴과 샌프란시스코에서는 60% 이상 밀어올렸다. 미국만이 아니라, 경제의 변화는 전 세계 모든 도시들을 부활시키고, 주택값을 뛰어올렸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에서, 주택 가격에는 어느 떄보다 거대한 부가 담겨 있다.





 Belleville to Rue de la Paix

 이 문제를 연구하는 경제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상승하는 집값은 상승하는 토지값의 산물로 본다. 일리노이 대학의 David Albouy와 미국 의회 예산국의 Gabriel Ehrlich 는 미국의 토지값이 총 주택가격의 1/3, 도심지에서는 절반에 달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주택가격에서 토지값이 차지하는 높은 비중은 필연적으로 토지보유자의 높은 지대地帶수익으로 이어진다.

 만일 고도와 밀도에 대한 법적 제한이 완화된다면,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필요한 땅의 규모는 감축될 수 있다. 이는 지주들에 의한 지대수익을 감소시키고 새로운 개발수요는 재빨리 충족될 수 있다. 마치 농업생산성의 향상이 농지보유자들의 경제적 영향력을 감소시켰던 19~20세기의 흐름처럼, 개발 제한의 완화는 전체 경제에 있어 고정 자산의 비중을 줄이고 경제활동의 더 많은 소득이 노동자들과 투자자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

 건물 규제가 도시 지역의 생산성을 낮추고 비용은 비대하게 만드는데, 미국 연방준비위원회의 Mr Glaeser 와 Raven Saks, 그리고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Joseph Gyourko 는 공급을 제한하는 규제로 인한 자산 비용을 산출하는 시도를 하였는데, 이들이 '그림자 세금 shadow tax'이라 명명한 이 비용은 1998년 워싱턴과 보스턴에서는 20%, 샌프란시스코와 맨하탄에서는 무려 50%에 달했다. 그리고 사정은 그 후로 명백히 더 나빠졌다.
 런던경제대학의 Paul Cheshire 와 Christian Hilber 팀 또한 비슷한 추산을 시도했는데, 2000년대 초반 이 '그림자 세금'의 규모는 밀라노와 파리에서는 무려 300%, 런던에서는 450%, 특히 런던 서부지구에서는 무려 800%에 달했다. 유럽의 경제적 중심지 상업부동산의 가치를 차지하는 가장 큰 몫은 새 건물을 짓기 어렵게 만들어 놓은 데에서 기인하는 것이었다.

 런던 메이페어 지구 (동부 고급주택가) 조차도 높은 임대료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을 터인데, 그러나 이런 효과들은 부자들보다는 빈자들에게 더 타격을 입힌다. 미국의 주택보유자로 말할 것 같으면, 가구들의 60%가량은 중산층의 대부분이 주택가격상승으로 인한 이득을 보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뉴욕 대학교 Edward Wolff 는 이 부의 효과가, 모기지 채무의 동반상승으로 인해서 실제로는 훨씬 줄어든 데에다가, 주택을 임대한 세입자들에게는 높은 생활고를 안겨주었다고 지적한다.
 베스트셀러이기도 한 '21세기 자본'의 저자인, 파리 경제대학 Thomas Piketty는 주택의 부가 불평등 심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MIT의 Matthew Rognlie 또한 국가 소득의 상당수가 노동자가 아닌 자본소유자로 몰리고 이 흐름이 더 커지는 현상이 바로 높은 주택가격에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1950년 주택가격으로 인한 자본소득은 GDP 의 3%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10%를 넘어서고 있다.

 토지임대는 지주들에 의해 신흥경제 또한 장악하고 있다. 자산관리기업 CBRE 는 베이징과 뉴델리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오피스 시장 중 하나이고, 쿠알라룸푸르와 자카르타는 가장 빠르게 상업용부동산가격이 등귀하고 있다고 말한다. 토지가격의 극단적 상승은 성장하는 경제에 치명적인데, 특히 잘못 규제된 자산시장은 더 많은 피해를 의미한다. 인도의 대도시는 짐덩어리인 규제와 빡빡한 임대료 제한, 그리고 복잡한 토지용도규제가 경제성장의 패턴과 과실의 분배를 왜곡하고 있다. 지대의 상승은 또한 자산보유자로 하여금 부패와 자원의 낭비를 하는 유인을 제공한다. 지주들은 개발제한규제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설정하도록 정치인들에게 현금을 제공하고 횡재를 노리게 마련이다. 2014년 10월 인디아타임스는 뭄바이 중심부에 개발계획을 승인받기 위해 제공해야 하는 뇌물의 액수가 건축비의 절반에 달한다고 고발한 바 있다.

 토지의 부활이 보여주는 가장 추한 일면은 경제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브레이크가 될 수 있다. 경제가 노동자를 생산적으로 일하게 하고 그리하여 부유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 중 하나는, 사람과 자원을 낮은 생산성의 세그먼트에서 효율적인 위치로 재조정하는 것이다.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이는 좀비 기업이 사업을 접고 좋은 기업이 크게 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도시에서도 마찬가지 원리가 작동하는데, 높은 생산성을 낼 수 있는 노동자들의 부족은 높은 임금으로 노동자들을 유혹하도록 하게 되고, 그 결과 모여든 유능한 노동자들과 기업의 클러스터는 높은 임금과 생산성으로 인해서 경제 전체의 헤택으로 이어지게 된다.


 Mediterranean Avenue to Boardwalk

 그러나 이런 성장의 흐름은 많은 경제권에서 부러지고 있다. 노동자가 높은 임금을 좇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하려면 일단 지역 노동시장에 접근하기 위한 집을 구해야 한다. 가까운 집을 구하기 위한 입찰경쟁은 제한된 주거공간을 꽉 채울 때까지 밀어올려지고, 유능한 노동자들을 끌어오기 위한 신호가 되어야 할 임금들은 임대업자들의 호주머니로 흘러들어가면서 이 불공정은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저항을 촉발시켰다. 많은 노동자들이 (비효율적으로) 저임금 일자리를 감수하곤 하는 까닭은, 그런 직장밖에 없지만 집값이 저렴한 지역에 머무르는 게 그나마 나은 길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경제는 손상된다.

 Chicago Booth School of Business 대학의 Chang-Tai Hsieh와 UC버클리의 Enrico Moretti는 이러한 비용에 대해서, 캘리포니아 베이 지역의 까다로운 건축규제가 없었더라면 총 고용은 5배까지도 증가할 것이라고 추산하기도 했다. 이러한 경제손실은 1964년부터 2009년까지 미국의 총 GDP 를 대략 13.5% 낮추었을 것이라고도 보았다. 현 경제규모와 대비하면 이 액수는 연간 총 2조 달러, 인당 1만불에 달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세계의 도심부족 문제는 거의 인공적인 문제라는 점인데, 힘든 점은 그게 해결이 쉬운 문제는 또 아니라는 점이다. 까다로운 토지 규제는 가장 정치적으로 복잡하고 민감한 이슈이다. 또한 그것은, 상업과 이민 관련한 것들 처럼 유해한 이슈이기도 하다. 새로운 재화와 사람을 받아들이는 사회는 결국 이익을 보게 되지만, 그 과정에서 경쟁을 통해 일부의 비즈니스를 밀어내고 문화적 변화는 불균형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 피해는 반대세력을 규합하고, 그렇게 토지가 이익을 본다.

 이는 결국 정책적으로 풀어야 하는데, 정부는, 자유시장경제로 인한 이해를 보전하듯 밀집적 개발로 인한 피해를 보상하도록 특정 정책을 수립할 수 있다. 새로운 개발로 확충한 세수를 개발반대운동과 협상하는 데 지출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아니면, 리카르도의 후계자인 미국 경제학자 헨리 조지의 제안인 '토지가치세'를 고려해볼 수도 있다. 대부분의 세금은 이윤에 대한 유인을 변경함으로써 경제활동을 왜곡시키고는 하는데, 토지세는 토지의 공급을 감쇄시킬 수 없을 뿐더러 토지가 비생산적으로 사용되는 행위에 과세함으로써 경제활동을 촉진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과제표준이 항상 거기 있기 때문에 - 도시의 입지를 룩셈부르크로 옮길 수는 없으므로.

 뉴욕 시장인 Bill de Blasio는 도시의 빈 로트에 시세별로 과세함으로써 브롱크스와 주변부의 활용을 망치는 구역의 거래를 활성화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적인 문제들이 있는데, 단단하게 연결되고 조직된 부자들을 건드려야 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른바 재정순수주의자로 불리는 에스토니아는 1993년 토지세를 도입하였으나 이는 여러 단계의 밴드로 나뉘어진 복잡하며 약한 세제이며 또한 주택보유자에 대해서도 공제하고 있다.

 이미 부유함의 축복을 받은 자산들은, 문제 해결을 위한 또 다른 접근도 방해하곤 하는데, 더 빠르고 많은 수용량을 가진 교통망의 연결을 통한 도시의 확장이 그것이다. 교통을 개선하기 위한 어떤 정책들 - 교통혼잡세라거나 - 은 저렴한데 비해, 대도시에서의 새로운 인프라는 느리고 비싸다. 런던의 새로운 지하철 라인 - Crossrail - 은 이미 유럽에서 가장 돈이 많이 드는 프로젝트가 되어 있다.

 제트팩이 없는 한, 기술이 어떤 대안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인가? 언젠가는 거리의 포학을 극복할 만한 기술이 등장하여 이 모든 문제들을 걷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가상현실과 소셜네트워크는 인접성이 없이도 고밀도의 이득을 결합할 수 있다. 그러나 리카르도에 있어서도, 결국 고층빌딩과 지하철 이상이긴 힘들 것이다.



Posted by 김구공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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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이 일하는 방, 그리고 잠자리이기도 한 방에서 아내가 먹고 마시고 요리하고 세탁과 다림질을 비롯한 여러 집안 일을 해야 한다는 것보다 부부 모두에게 더 비참한 일은 없을 것이다” 

1820년대, 당시 영국의 지도적 사상가이자 정치적 활동가였던 프랜시스 플레이스와 윌리엄 코벳은, ‘독립’ 가옥의 장점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덕분에 아내는 방을 더 잘 정돈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도덕적인 면에서도 좋은 영향을 끼친다. 아이를 돌보는 것도 전처럼 늘 내가 있는 자리에서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방에 불을 피우고 요리라든가 설거지, 청소, 세탁, 다림질을 하고 있는 아내의 모습을 더 이상 보지 않아도 좋게 되었다”

 이는 단지 여성에게 가사일만을 요구하는 구태적 성역할의 배분 이상의 의미가 있는데, 바로 여성 노동 과정의 ‘은폐’ 이다. 복음주의와 산업혁명의 결합, 그리고 ‘방’을 갖춘 가옥의 보급으로 프라이버시가 자리잡고 가족이 하나의 경제단위로 성장하면서, 가사노동은 아내의 것임과 동시에 숨겨야만 하는 노동의 절차가 되었다. 힘들게 일하고, 혹은 바깥에서 위대한 일에 종사하고 돌아온 가장을 위해서, 가정은 완전히 준비되어 있어야 했다. 물이 길어져 있고, 화덕에는 연료가 채워져 있고, 집 안은 정리되고 청소되어 있고, 시트 식탁보 의복 등은 말끔하게 세탁, 개조, 수선되어 있어야 했다. 가장이 먼 곳으로 일하러 떠날 때에는 아침 일찍 도시락이 준비되어 있어야 했으며, 이 지출들을, 가장이 주는 빠듯한 월급 내에서 해결되어 있어야 했다.
 그리고 이 모든 절차들은, 이러한 노동들을 하다 보면 당연히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때와 먼지로 찌든 상태로 아내가 있어서는 안 되었다. 아내는 마치 투명인간처럼, 가장의 눈에 띄지 않게 가사를 처리하고 요리를 내놓으며 그릇을 닦고 아이를 키워낸 다음에, 말끔하고 정숙하나 또한 성적으로 요염하게 준비된 상태여야 했다. 근대 이후 가사 공간의 ‘분리’는, 이런 함의를 또한 의도하여 설계되었고 덕분에 가장은 자신의 가장 친밀한 가족이자 동료가 지저분하고 끊임없는 노동을 ‘격리’함으로써 더욱 편안히 외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2015년, 장기 불황의 초입에 접어든 한국에는, 구태적 성역할의 조정에 대한 여론의 강한 요구와 함께 ‘집에서 요리하는 남성’ 에 대한 선호와 성적 코드가 새로이 조명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잡지에서는, <남자들의 항변:요리 좀 못하면 안됩니까> 라는 제목 하에 이러한 내용의 아티클이 게재되었다.

 "요리가 뭔데? 요리프로그램에 대한 최근의 관심. 그걸 반영하는 기사들을 보면 남자들이 정육점 고깃덩어리처럼 줄지어 걸려 있는 것 같다. 어떤 놈이 신선한지 여자들이 팔짱 끼고 보고 있는 것 같다. 앞치마 두르고 부엌을 분주히 돌아다녀야 남자구실을 한다는 거지. 이것도 차별 아닌가?"



 직접 식재료를 준비하고 메뉴를 고르고 채소를 다듬고 불을 조절하며 다양한 양념과 맛의 향연을 보여주는, ‘남자의 요리’. 그것은 심지어는 과거 여자의 몫이었던, 너무나도 당연했으면서도 독립된 공간으로 은폐되기까지 했던, 음식 준비의 과정이, 더 많은 헤게모니를 쥔, 남성들의 손을 거치면서, 미디어의 세트와 무대 조명을 받는 ‘공연’으로 재탄생했다. 요리하는 남자는 숨지 않는다. 재와 먼지와 피곤에 찌들어 있지도 않는다. 드라마 ‘한니발’의 메즈 미켈슨과 ‘삼시세끼’ 차승원, 그리고 ‘집밥’ 백종원은, ‘여자들의 일’을 하는 것이 나의 남성성을 털끝만큼도 위협하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탄탄한 근육과 체격으로 내보이며 맛과 향내의 콘서트를 펼친다.

 이러한 스펙터클이, 성적으로 매력을 뽐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수많은 여성들은 요리하는 한니발 렉터 박사와, ‘차줌마’와, 그리고 ‘백선생’ 의 새로운 섹시함에 환호했고, ‘나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지만, 뒤에서 다가가 끌어안고 바지를 내리고 싶을 지경이다!’ 고 외치기 시작했다. 남성의 가사 노동과 여성의 욕망, 어느 것도 숨기는 건 없다. 그래서인가? 구태적 성역할이 흔들리고 세상의 지형이 진화의 무대로 헤쳐모이기 시작하자, 과거의 서열에 익숙해진 채, 어느새 자신들이 새로이 바뀐 레이스의 한참 뒤에 내팽겨쳐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일군의 무리들이 볼멘 소리를 내뱉는다. “이것도 차별 아닌가?” 아무도 귀기울여줄 필요가 없는 이런 구시대적 항변은, 음식물 쓰레기 통에 좀 숨겨놓는 게 어떤가.


Posted by 김구공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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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what comes down doesn’t go up



 선진국 정치계에서, 새로운 적은 바로 경제가 되었다. 지난 7여년 간, 허술한 규제들을 농락하던 부도덕한 은행가들이 악당이었다면, 이제는 끔찍한 보수에 고통받는 정직한 노동자들을 쥐어짜는 인색한 보스들이 주적으로 지목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과 강한 조합의 권리를, 많은 이익을 거두지만 적은 보수를 주는 식음료업계를 상대로 주장하기 시작했다. 힐러리 클린턴은 CEO 들이 평균적 노동자들보다 300배나 많은 보수를 받는다는 사실을 규탄하며 “everyday Americans” 캠페인을 시작했다. 영국의 노동당 당수 에드 밀리번드는 유권자들이 '포식자' 자본주의자들을 심판할 것을 요청했으며 데이비드 캐머런 보수당 총리는 자신들이 '일하는 사람들의 당' 이라고 반박했다. 일본 신조 아베 총리는 기업가들로 하여금 임금을 인상할 것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이런 레토릭들은 분명한 공명이 있었다. 전 세계 대부분에서 금융공황은 임금에 지독한 악영향을 끼쳤다. 지난 5년간의 경기 성장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에서 실질 임금은 2009년 대비 오히려 1.2% 하락했다. 영국에서도 실질임금은 2009년부터 2014년 기간 매년 하락하여 1900년대 중반 이후로 가장 긴 침체를 기록했다. 2014년 노동소득의 중간값은 2008년의 10%나 떨어졌다. 유로존의 위기에서 유일하게 선방한 독일에서도 임금은 2008년 대비 2.4% 하락했다. 유이한 예외가 바로 캐나다와 프랑스였지만 임금소득이 매우 부진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Sin of wages


 정체 혹은 하락하는 임금소득은 단지 고통받는 가구나, 증가하는 불평등에 대한 문제만은 아니다. 노동자는 또한 소비자이기도 하다. G7 국가들에서 가구소비는 GDP 의 55% (프랑스) 에서 68% (미국) 에 달한다. 만약 모든 개인기업가들이 임금을 깎는다면 저임금은 필연적으로 경기 전반을 압박할 것이고, 가계는 부채에 시달리거나 지속가능하지 않은 지출구조에 처할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것인데, 불황기 이전에도, 임금은 생산성을 제대로 따라간 적이 없었다. 미국에서 제 2차대전 직후 1960년때까지는 둘이 함께 상승 (51%) 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이 둘은 분리되기 시작하여, 생산성이 220% 증가하는 동안 실질 임금은 100% 이하로 증가했다. 그 결과는 GDP 에서 노동자의 몫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나타났다. 나머지는 최고 수준의 급여를 받는 층에 더 쏠리기 시작했고, 문제를 악화시켰다. 


학자들은 이러한 노동소득 지분의 저하를 몇몇 큰 요소들에서 찾기 시작했다. 하나는 자본소득 - 특히 주택임대 - 이 노동소득을 앞지르기 시작한 점이다. 또 다른 요인은 자본재가 더 저렴해지고 나아지기 시작한 추세이다. 기업가들은 노동자 대신 더 생산성 있고 저렴한 기계 시스템을 도입하기 시작했고, 이는 노동수요와 임금압력을 낮추었다. 세계화 또한 선진국들의 노동수요를 감소시켰다. 에딘버러 대학의 Michael Elsby와 연방준비위원회의 Bart Hobijn and Aysegul Sahin이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1993년에서 2010년 간에 수입이 공급체인을 많이 대체한 산업일수록 노동자들의 지분이 가장 많이 낮아졌다. 노동조합의 감소도 노동자들의 협상력을 약화시켰다. 1960년 이후 미국 노동조합의 힘은 매년 감소해왔으며 이는 G7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불황 이후 임금소득 성장의 부진을 불러온 숨은 요인은 좀 더 복잡한데, 과거의 경제학자들은 이중 가장 중요한 요소를 '실업'으로 보았다. 실업이 일단 일정 수준 이하로 내려가면, 괜찮은 인력을 구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구인시장은 달아오르며, 결국 새로운 노동자들은 더 높은 임금을 받을 것이라는 가정이 일반적이었다. 실업률은 보통 낮고, 임금상승압력이 인플레이션을 주도할 것이라는 가정 하에 물가안정실업률 NAIRU 을 계산하는 일이, 중앙은행들의 주 역할 중 하나였다. 


 

Matching quandaries


 대침체 이후로, NAIRU 는 종종 상승했다. 실업의 시기는 활기의 손상으로부터 장기적 침체로 이끄는 영향을 미쳤다. 직장에서 떨어져 있는 기간은 기술의 쇠퇴와 시장에서의 필요와의 미스매치로 이어졌다. 경기회복기의 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들은, 산업의 중심부로부터 슬럼프 시기에 해고된 사람들에게 다르게 다가왔다. 이렇기 때문에 일단 해고된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다시 직장에 복귀하기 어렵게 되었음을 깨닫게 될 수 밖에 없었다. 누군가는 연금수령연령까지도 비고용상태로 남아 있을 수 밖에 없게 되고, 결국 그들의 지속적인 비고용상태는 임금을 끌어내리는 데 큰 역할을 하지는 못하게 되었다. 그 결과 대불황 이후 NAIRU 는 상승했고, 인플레이션은 곧 뒤따를 것이었다.


현재의 침체에 뒤이어, 여러 경험칙들이 많은 나라들에서 뒤집혀갔다. 2013년 OECD는, 영국에서 실업률이 6.9% 이하로 유지된다면 임금 주도 인플레이션이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2014년 실질임금은 오히려 0.6% 하락했다. 2013년 연방준비위원회의 경제학자들은 안정적인 고용이 0.3%의 인플레이션을 가져올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실업률이 2% 하락했음에도 임금의 중간값은 그 이상 하락했다. 일본에서 2014년 실업률은 공황 이전 수준인 3.6%를 회복했지만, 실질임금은 오히려 2.5% 하락했다.


 이것은 이상한 현상이지만, 그것이 일시적이라면 문제는 심각하지 않다. 실질임금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는 근거들도 있다. 지난 2월 독일 최대 노조인 IG Metall은 현재 인플레이션 0.3%를 뛰어넘는 3.4%의 임금인상을 합의했다. 영국의 최근 데이터는, 인플레이션율이 사실상 제로에 가까움에도 평균 월급이 1.7% 상승했다는 자료가 있다. 또 다른 가능성도 있는데, 임금 충돌에 대한 최근의 힌트는 예상치 못한 저인플레이션의 인공적 창조물이다. 미국과 영국의 평균 임금 데이터는, 수요가 많은 중위 노동자의 고통을 감추고 있을 수 있다. 그것은 이 침체가 노동시장에 남긴 손상 - 숙련의 손실과, 산업 수요/경력의 불일치 - 이 장기간의 비고용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징후일 수 있다. 이 가정대로라면 저임금은 더욱 고정되고,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은 저실업률 상황에서도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 그 노동시장 전환은, 인플레이션율을 견제하고자 하는 중앙은행에게는 새로운 도전일 것이며, 또한 저임금의 정치가 등장해야 할 순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무엇이 이러한 변화를 만들어냈는가. 하나의 유력한 트렌드는, 임금을 올리지 않고도 포스트를 쉽게 채우곤 하는, 비정규직 고용의 증가이다. 독일에서 400유로 미만의 월급을 받는 '미니 잡'이 급증했고, 영국에서는 근무 시간을 특정하지 않는 'zero hour' 계약이 유행하고 있다. 해고를 쉽게 만든 사회 구조는 고용에 대한 부담을 줄이는 대신 노동자의 위치를 취약하게 만들고 협상력을 깎아내리고 있다. 







Not for the long haul


 "staffing industry" 인력고용 혹은 파견 산업도 비슷한 영향을 미친다. 1960년 최초로 사무직 노동자를 대행 고용 및 파견하는 기업이 창업하면서 생겨난 이 인력 파견의 영향은 보이는 것보다 더 중대하고 컸다. 오늘날 Kelly Services, Adecco and Randstad 등의 파견 고용 기업은 경량 제조업체와 공장들에 노동자를 공급한다. 2013년 Kelly Services 는 75만명을 '공급'하여 월마트 다음으로 가장 많은 고용을 하는 사기업이 되었고, 미국 고용의 2%를 차지하는 290만 비정규직 창출에 큰 역할을 했다. 

 비정규직은 G7 에 범람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른바 종신고용 shûshin koyô 이 일단 종료된 이후로 임시적 고용이 일반적인 형태가 되었다. 2014년, 일본 최대의 채용 에이전시인 Recruit 그룹은, 도쿄 증시에 190억 달러의 가치를 기록했다. 영국에서는 올림픽도 경비에서부터 (G4S) 음식까지 (Compass) 거의 모든 진행과 물품들이 비정규직 파견 업체들을 통해 제공되었다.

 구인기업과 구직자를 충분한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최적 매치를 이루어내면 양 측 모두에게 유연성을 제공하고 저실업도 이끌어낼 수 있다는, 2010년 노벨상을 받기도 한 연구 결과는 분명 어느 정도 사실로 증명되었다. 그러나 구직 경쟁의 규모가 커지면서 더 많은 임금을 주어야 할 인센티브는 매우 낮아졌고, 결국 노동자 파견 기업들은 노동자들의 협상력을 크게 낮추었음을 2014년 Rebecca Smith and Claire McKenna의 연구가 보였다. 

 G7 국가들은 대체로 세 가지 방향으로 이런 저임금의 압력 문제를 해소하고자 하고 있다.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덜 시도되는 방안은 고용유연화를 재규제하는 방안으로, 특히 독일에서는 노동조합이, '미니잡'을 고임금 직장을 없애는 원인으로 지목하며 가장 비판적이다. 이는 사실과 다른데, IAB 의 조사에 따르면 미니잡은 풀타임 정규직이 강한 곳에서 가장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영국에서는 노동당이 제로아워 컨트랙트를 금지할 것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Credit where it’s due

 이런 추진들이 노동자들의 형편을 낫게 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하나는 실제로 많은 노동자들이 양방향 유연 임시직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일본에서 비정규직은 어린아이를 둔 여성과 연금이 충분하지 않은 노인들에게 인기가 좋다. 시장이 덜 유연해질수록 경기하강기에 대량해고의 위험은 높아진다. G7 국가 중 가장 노동유연성이 낮은 프랑스는 10%대에 달하는 실업률을 기록중이다. 2010년부터 프랑스 경제는 14만 개의 새 포스트를 만들어냈는데 이보다 훨씬 유연한 영국 경제는 동기간 160만개의 실적을 달성했다. 정치인들의 노력이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저임금 직종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이 가혹한 진실이다.

 두 번째 접근 방식은 세금 공제이다. 2010년 영국에서 최저임금 (시간당 5.93파운드) 을 받는 노동자는 그 해 소득 12,300만 파운드 중 5,900파운드에 대해서만 납세 의무를 진다. 오늘날 이 선은 13,520 파운드로 상향되었는데 납세구간은 2,920파운드로 하향조정되었다.
 이러한 보상세제의 문제는 타겟팅과 잘못된 보상에 있다. 저소득층에 대한 세금 '크레딧'은, 특히 고용주에게, 임금을 낮게 유지할 보상으로 작동한다. 

 물론, 인색한 고용주들이 임금을 인상하는 대신 세금환급에 의존할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맥도날드, 버거킹, 웬디스에서 버거를 굽는 저임금 노동자들은 상당한 세금환급을 받는다. 이 세제혜택은 결국 이 기업들의 주주들에게도 이익이 되었고, 다른 회사들은 더 높은 임금도 지불할 여력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월마트는 270억 달러의 순익과 60억 달러의 배당을 지불한 후에도 최저임금을 7.25달러에서 9달러로 올리기로 하였고, 영국의 연구들은 임금인상이 노동자들을 머무르게 하는데 도움이 됨을 밝혀냈다. 

 타겟팅된 세금환급이 전면적인 부가비용의 삭감보다 저렴했다 - 영국 재무부는 2013년 14년 기간 300억 파운드를 지출했다 - 10년 전 대비 2배 이상이 지불되었다. 캘리포니아 대학과 CLR 의 보고에 따르면 미국은 009년부터 2011년까지 연간 연방 예산의 6%가량인 2270억 달러를 저임금 노동자 보조에 사용했는데 이들 중 주 구성 요소는 구매력을 직접적으로 올리기 위한 세금 환급 (670억 달러) 과 푸드스탬프 (710억 달러) 으로 지불되었다. 또다른 큰 지출항목인 메디케이드 (830억 달러) 는 고용 기업들의 의료보험 부담 비용을 절감시켰고 2003년부터 2013년 기간 동안 커버리지는 67%에서 59%로 감소했다. 

 세 번째 방법인 최저 임금의 인상은 부담을 다시 기업에게로 되돌리는 길이다. 이 선은 G7 국가별로 다른데 이탈리아에서는 제한이 없고, 프랑스는 9.61유로로 최고 수준이다. 미국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최저임금을 대략 40%가량 인상한 $10.1 목표를 제시했고, 영국에서는 SNP 가 8.7유로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싱크탱크 생계임금연구소는 최저임금이 런던에서는 9.15유로 그 외 지역에서는 7.85유로는 되어야 한다는 결과를 제시했으며 이는 현 수준보다 41% 높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가격에 바닥과 천장을 규정하는 데에는 위험이 따른다. 에너지 단가 캡은 에너지 기업들의 추가 투자를 저해하며 최저임금선의 인상은, 프랑스가 보여주듯, 고용을 줄이게 된다. 그러나, 영국의 2009년 이후 경기침체시기 분석을 비롯한 대부분의 연구들은 최저임금의 완만한 인상은 실업을 악화시키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최저임금바닥설정에 대한 권한을 가진 미국의 대도시들은 종종 연방기준 최저빈곤선 이상의 최저임금을 요구하기도 하는데, 샌프란시스코와 워싱턴의 연구들 또한 이러한 높은 수준의 최저임금이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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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저임금 직종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지만, 없느니만 못한 직장은 분명 (적지 않게) 존재한다. 반사회적, 폭력적 직업 그리고 인적자원에 손해를 끼치는 유해하거나 위험한 직종들인데,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그걸 인력으로 갈아엎고 메꾸는 '일자리를 창출' 해 냈고, 좀 더 과거로 올라가면 런던 페스트도 수십만의 검시관 / 시체처리관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고 디킨스는 적고 있다. 이게 '없는 것보다는 나은 일자리' 는 아닌 것이다. 


 이 기사에서 이코노미스트는 또한, 노동은 빈곤을 벗어나는 길이 되어야지 빈곤에 갇힌 채 머물러선 안 된다고 하면서 (여기까지는 지극히 옳다!) 도 정치가 저임금을 규제하는 데 개입하는 과정에서 경제 성장의 동력을 꺼트릴 정도로 위험하게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임금 인상이 주가를 올리고 보드 멤버에게 엄청난 사이닝 보너스를 지급하고 회사채를 상환하고 세금을 지급한 다음에도 향후년도 실적전망이 튼튼할 것임을 수 년 이상 확신한 다음에야 가장 나중에 마지 못해 수혜처럼 말석을 내주는 원칙이 그것인가? 양차대전 이후 전 세계적 경제 성장이 어디에 흘러가고 어디에 귀착되며 누구에게 유통되는가에 대해서는 이제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번 돈이란 언제는 쓰일 것이고, 결국 언제 누군가에게 쓰이느냐의 문제이다. 그게 경제성장의 이유 아니겠는가. 



Posted by 김구공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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