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명백히 위기를 맞고 있다. 아랍의 봄과 오렌지 혁명으로 비추었던 독재 정부 틈새의 민주주의의 서광은 또 다른 전제적 정부와 독재 정부의 집권으로 그 빛을 잃었다. 나치즘과 아파르트헤이트와 빈곤의 위기에도 민주주의는 그리스, 스페인,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소비에트 연방에서 수많은 독재 정부를 물리치고 전 세계 인구의 40% 이상에게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제도를 전파했지만, 21세기에 들어 그 자유도는 꾸준히 하락했다.

 


베를린 장벽 붕괴와 소비에트 연방 해체 이후의 러시아는 전 KGB 국장 출신의 '포스트모던 짜르' 푸틴이 정적들을 압살하며 집권중이고, 베네주엘라와 우크라이나 아르헨티나 등이 그의 뒤를 따르고 있다. 이라크에서의 두 번의 전쟁 이후의 중동 지역에 대한 민주주의 이식은 미국의 제국주의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이집트에서 무바라크의 하야는 무슬림 형제단의 또 다른 전제 정부로 대체되었을 뿐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1994년부터 일당 집권 체제를 유지하고 있고 터키의 이슬람적 민주주의 실험은 부패와 독재로 타락하고 있다.

 


중국의 부상도 경제 성장이 민주주의 체제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상징적이고 강력한 위협이다. 집권 단일당에 의해 엄격히 통제되는 금융과 경제 체제는 금융 위기를 잘 피해나갔고 30년마다 삶의 수준을 두 배씩 향상시켜나간 결과 중국의 독재 정부는, 85%의 국민 지지를 받고 있다. 한편 자유민주주의의 상징 미국의 정부 지지율은 31%에 머무르고 있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양당의 양극화와 게리맨더링, 로비스트에 의한 금권 선거와 이권 집단의 영향력 강화로 비틀거리고 있고, EU조차도 일부 국가들의 테크노크라트들이 회원국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관료체제로 변질되어가고 있다. 세계화 또한 시민국가의 의사와 참여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다. 국제 무역과 세계 금융의 성장으로 IMF나 WTO 등 국제 기구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고, 국가 기반의 민주주의 시스템은 기후 변화나 역외 탈세 등 국제 문제를 다루는 데 취약함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따라 민주주의 기반의 선진국 국민들도 정치 체제에 대한 열정과 관심을 잃어가고 있다. 1950년에는 20%의 영국 국민이 정당원이었으나 현재는 1%에 불과하고, 절반 이상의 EU 시민들은 정부를 신뢰하지 않고 있다.

 


플라톤의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가 옳았던가? 토크빌이 지적한 대로 민주주의는 언제나 실제보다 약해 보이기 마련이다. 겉으로는 항상 혼란스럽고, 무책임하며, 나약한 듯 하지만 민주주의는 결국 전제정부보다 더 나은 대안들을 더 창의적인 답안들을 찾아내곤 했다. 제임스 메디슨과 존 스튜어트 밀이 단호하게 주장한 바 대로, 민주주의는 강하고 불완전한 메커니즘이다. 신중하게 설계되어야 하고 인간의 창조성을 연결하며 탐욕을 잘 견제해야 한다. 현재 수많은 민주주의 실험들이 실패한 원인은 '선거' 에 대한 과도한 열정에 기인한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 21세기에 가장 성공한 체제로 자리잡은 민주주의의 정체는 국가 권력의 견제와 표현 및 집회의 자유와 같은 개인의 권리, 다수결주의에 대한 경계와 강력한 분권으로 인한 권력 집중의 예방에 있다. 이 시스템은 끊임없는 학습과, 설득과, 반 자유와의 투쟁과 그리고 균형으로 유지되고 또 성숙될 수 있는 것이다.


 http://www.economist.com/news/essays/21596796-democracy-was-most-successful-political-idea-20th-century-why-has-it-run-trouble-and-what-can-be-do

 

 

Posted by 김구공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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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까지 청년층은 주요한 빈곤층이 아니었고, 빈곤정책은 주로 노인과 한부모 가정 같은 ‘취약계층’에 대한 소득보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또, 청년기는 아동에서 성인으로 가는 짧은 통과기간 정도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별도의 분석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청년기 ‘출발의 실패’는 이 시기의 경제적 불안, 독립연기, 정신적 건강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이후 생애과정에서 장기적인 ‘상처’효과(scar effect)를 남길 수 있다. 청년층 내부에서도 상대적으로 부모의 경제적 자원이 풍부한 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 사이의 간격이 이행에서 양극화(youth divide)를 초래하고 장기적으로 부와 빈곤이 대물림되는 닫힌 사회로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청년빈곤층의 속성 및 빈곤요인에 대한 실증적 이해가 시급하다.


전체 빈곤율 수준은 한국이 약간 더 높지만, 청년층 빈곤율은 일본이 더 높다. [그림 1]에서 나타나듯이, 양국 모두 아동기에서 청년기로 이행하는 시기인 18~24세에 봉우리가 형성되면서 빈곤율이 높아진다. 일본의 경우 20~24세 청년층 빈곤율이 18.1%로 은퇴기인 50대 후반의 빈곤율보다 더 높다. 한국은 일본보다는 낮은 수준이지만 역시 18~24세 연령의 빈곤율이 14.3%로 50대 초반에 접어든 장년기의 빈곤위험과 유사한 수준을 보인다.생애주기에서 돌출적으로 높은 청년층 빈곤의 '피크' 혹은 '점프' 현상은 최근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아베(阿部, 2010)에 따르면, 일본의 경우 1990년대 중반부터 초기청년기(20~24세)의 빈곤율 증가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와 같은 빈곤 '점프' 현상은 남성에게서 더욱 두드러진다. 한국의 경우 20대 초반 초기청년층의 빈곤율은 1990년대 후반부터 증가하기 시작하였는데, 2000년대 중반 이후 아동빈곤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경제위기 이후의 노동시장 유연화와 불안정성의 증가는 취업을 앞둔 18~24세 인구층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음이 빈곤율 지표를 통해서도 드러난다(김수정, 2010). 양국 모두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빈곤율이 감소하긴 하지만, '독립적 성인'으로의 이행의 경제적 조건이 순탄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저학력은 빈곤을 설명하는 주요한 원인이지만 최근 한일 청년층이 경험하는 학력관련 변화에는 특수한 점이 있다. 양국 모두 빠른 고학력화 현상을 경험했고 구미 국가에 비해 청년층의 학력수준이 매우 높다. 이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고졸자의 저학력화 현상이 급속히 진행되었는데, 대학교육이 보편화된 한국에서는 상대적 저학력자인 고졸층은 반복적 실업상황에 있거나(남재량, 2006b; 정인수 외 2006) 나쁜 일자리에 취업할 가능성이 높다(김유선 외, 2009; 이병희, 2004; 이병희 외, 2010). 일본에서도 고졸자의 노동시장 상황은 좋지 않다. 1990년대 이래 학교노동시장 이행시스템의 붕괴의 충격은 고졸 노동시장에서 가장 컸다. 일본에는 '실적관계'라고 하는 고등학교와 기업을 연결하는 (school to work) 독특한 취업연결제도가 있어 오랜 기간 고졸자가 안정적으로 학교에서 시장으로 이행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장기불황기를 통해 이 관행은 거의 붕괴된 상황이다(本田, 2005). '고졸 학력자의 빈곤화'라고 할 수 있을 이와 같은 변화는 양국에서 다른 세대들은 경험하지 못했던 현상이며, 다른 국가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현상이다.

 

둘째, 청년층의 경제상황과 관련해서 부모의 경제적 영향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상대적으로 연령이 높고 노동시장지위가 안정적인 청년층들은 독립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경제적 안정과 관련해 부모의 경제적 지위의 직, 간접적 영향을 받게 된다. 부모의 영향력과 관련하여 한일 양국은 구미 국가들에 비해 보살핌 노동과 경제적 자원의 상호교환이라는 점에서 강한 세대 상호의존성을 갖고 있다(김수영, 2000).

그러나 이와 같은 유사성에 불구하고 양국의 차이도 적지 않다. 일본에서는 고도성장기와 저성장기를 통해 미혼이더라도 부모 세대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규범이 상당 정도 확산되었지만 한국에서는 부모와의 거주지 분리는 결혼 이후라는 규범이 일반적이다. 1990년대 일본에서 취업한 미혼의 자녀 특히 딸이 부모와 함께 거주하는 경향이 증가하는 현상을 '기생 독신(parasite single)'이라고 칭하며 강한 사회적 비난 여론이 형성(山田, 1999)된 점에서도 잘 알 수 있듯이 일본은 우리보다 분거 규범이 더 강하고 그런 한에서 우리보다 개인주의적 정서가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일본에서도 최근 고용지위가 불안정한 청년층이 증가하면서, 고용지위와 부모와의 동거 간의 관계가 강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비정규직일수록 부모와의 동거가 증가하고 있다(内閣府, 2003; 酒井 樋口, 2005; 小杉, 2010). 부모와의 동거가 증가하는 추세는 한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1995년에서 2005년 사이 15~34세 청년층 중 부모와의 동거율이 증가하고 있고, 30대 초반에서 증가율이 가장 빠르다. 부모와의 동거 증가에 대해서는 고용불안보다는 초혼연령 상승이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하고(이병희 외, 2010: 156-164) 비정규직 증가와 같은 고용불안이 원인이라는 분석도 제출된 바 있다(우석훈· 박권일, 2007).

한국의 경우 고졸 이하가 27.8%에 불과하지만, 일본에서는 청년층의 절반 정도가 고졸 이하의 학력을 갖고 있다. 이 같은 분포상의 차이는 '고학력화'가 정점에 달한 집단이 현재 한국사회의 청년층이라는 사실을 반영한다. 혼인지위의 경우, 한국의 미혼자 비율이 일본보다 약간 높지만 유사한 분포를 나타낸다, 양국 모두 청년층에서 미혼자와 기혼자의 비율은 6:4 정도의 분포를 보이고 있다. 거주지역은, 한국의 경우 7대 광역시에 사는 비율이 높고, 일본은 대도시에 사는 청년층이 상대적으로 적다.

 

고용지위를 살펴보면, 취업 청년층 비율은 일본이 높다. 한국의 경우 학업, 취업준비, 실업 등 사실상 실업상태인 청년층이 45%인데 반해, 일본의 경우 26%에 불과하다. 이것은 한국의 높은 대학 진학률, 학업기간의 장기화를 반영하는 지표이기도 하지만, 노동시장 상황의 악화 때문에 '스펙'을 늘리고 졸업을 연기하는 등 은폐된 실업을 포함하는 수치로 해석된다. 반면 일본의 경우 임시, 일용직 등의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이 높게 나타나는데, 이는 우리보다 앞서 노동력의 비정규화가 진행되었고 장기불황 이후 노동력의 비정규화가 청년층에 집중된 일본 노동시장의 경험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가족(가구)특성변수인 혼인여부, 자녀수 변수를 살펴보면, 양국 모두 기혼자보다 미혼자의 비율이 더 높다. 한국의 미혼자 비중은 59.2%, 일본은 56.1%로 나타났다. 자녀가 없는 가구 비율 역시 양국 모두 높게 나타나는데, 청년층 응답자 중 한국은 67.7%, 일본은 65.0%가 자녀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자녀로서 부모와 함께 사는 비율도 높게 나타났다. 양국 모두 부모와 동거하는 청년층의 비율이 높은데, 한국은 절반을 상회하는 52.0%가, 일본은 절반에 약간 못 미치는 41.4%가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의 영향을 보여주는 또 다른 변수인 주된 소득원 변수의 경우 한국의 경우 부모가 주된 소득원인 경우가 21.9%, 일본이 11.1%로 한국에서 부모소득에 의존하는 청년층이 많았다. 다른 성인가구와 달리 청년층 가구에서는 부모의 경제력, 부모에의 의존(가능성)이 경제적 안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마지막으로 가구의 규모를 보여주는 가구원수 변수에서 일본의 가구원수 평균이 약간 더 높게 나타나지만 대체로 양국이 유사한 수치를 보였다.

 

연령이 증가할수록 (중간층 이상에 속할 가능성에 비해) 저소득층에 속할 가능성이 낮고 경제적으로 안정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20대 초반(기준변수)과 20대 후반의 차이는 유의하지 않았고, 30대 초반이 되어서야 빈곤위험이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은 20대 초반, 20대 후반, 30대 초반 순으로 빈곤위험이 유의미하게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별의 경우 한국에서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빈곤위험이 더 낮다. 한국 데이터에서 나타나는 여성의 '상대적 유리함'은 노동시장에서의 성별 불평등을 비롯해 한국 2,30대 여성들이 경험하는 경제적 불리함에 비추어보았을 때 상식에 반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성의 효과는 다른 변수의 영향력을 통제한 것이기 때문에 제한적으로 해석될 필요가 있다. 즉, 한국의 2,30대 미혼 여성의 경우 부모와 동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독립한 경우가 적고, 독립한 경우 동일 속성의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건이 나을 가능성이 있다(김수정, 2010). 한편, 한국 남성들에게 20대는 군복무를 하는 시기인데 이 때문에 여성보다 늦게 취업한다. 여성들은 직업기대가 남성보다 낮아 빨리 취업하는 등 20대에 상대적으로 활발하게 경제활동을 하는 경향이 있다. 연령별 경제활동 참가율에서 남성보다 여성이 높은 유일한 연령구간이 20대인 것을 고려하면 성별 변수에서의 차이는 경제활동에서의 차이와도 연관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겠다

 

학력은 고졸이 저소득층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양국 모두 대졸자 수가 많은 고학력사회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고졸은 인적자본이 부족한 '저학력'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한국의 경우 대졸(고졸 대비)이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계층에 속할 확률이 일본보다 높게 나타났다.

 

고용지위 변수의 경우, 정규직을 기준변수로 했을 때 임시직, 무직의 빈곤위험이 증가한다. 양국 모두 정규직과 임시직 간 임금격차가 크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다만 추가검증을 했을 때 양국 모두 임시직과 무직 간의 차이는 유의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청년층의 경제적 안정성을 위해서는 취업이 아니라 정규직 여부가 더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혼인지위와 관련해, 양국 모두 기혼자에 비해 미혼자가 저소득층이 될 가능성이 더 높았다. 양국 중에서는 한국보다 일본에서 기혼자의 경제적 안정성이 높은 편이다. 이와 같은 결과는 청년층에게 혼인은 상대적으로 경제적 지위가 안정될 때까지 유예된 결정이거나 경제적 지위가 안정된 집단에게만 허락된 '선택'일 가능성이 높은 것과도 연관된다.

취업이 어려운 청년들이 경제적 자립을 못한 상황에서 혼인을 통해 독자적인 가구를 형성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혼인을 통해 누릴 수 있는 경제적 이득과 안정도 있겠지만, 혼인과 빈곤의 관계는 혼인자체가 지위재적 성격을 갖고 경제적 여력을 반영한다. 양국에서 나타나는 결과 역시 이런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한편, 부양부담을 보여주는 자녀수 변수는 양국 모두 자녀수가 늘어날수록 빈곤위험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청년층 유자녀 가구의 경우 자녀의 연령이 낮아 여성 배우자의 경제활동이 제약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본의 경우 자녀수에 따라 빈곤위험의 정도가 크게 달라지는데, 자녀가 많을수록 저소득층에 속할 확률이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편, 부모와의 동거는 빈곤위험을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와의 동거는 독립에 수반되는 주거비용을 부담하지 않고 공동생활에 수반되는 제반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소득이 적거나 없는 청년층에서는 빈곤의 방어막 역할을 한다. 주거독립의 규범이 강한 나라들에서는 초기 청년기부터 주거분리가 시작되는데 이것이 빈곤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Iacovou & Berthoud, 2001). 한국에서는 동거대비 비동거시 저소득층에 속할 가능성이 1.5배 증가했고, 일본은 3배 정도 높았다.

 

소득 측면에서도 부모의 영향력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가구의 주된 소득이 부모일 때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빈곤위험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거 및 소득에서 부모의존 비율은 한국이 높고 일본이 낮은데, 일단 부모로부터 독립한 일본의 청년층들은 독립의 비용을 상대적으로 높은 빈곤위험의 형태로 치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는 '모든 것이 준비되었을 때' 독립시키는 한국과 독립의 연령규범이 강한 일본의 차이 효과도 관련되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부모의 영향력과 관련된 두 가지 결과로 미루어보았을 때, 20세에서 34세라는 비교적 넓게 정의된 청년층에서도 여전히 아동기처럼 부모의 자원(주거제공, 소득지원)이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양국 모두 얼어붙은 청년노동시장현실과 높은 주거비용을 고려할 때, 부모자원에의 의존도는 증가할 것으로 보이며, 청년층 빈곤의 '아동기적' 특징이 초기 청년기에 국한되지 않고 장기화될 우려도 있다.

 

마지막으로, 통제변수로 포함된 거주지역에서 결과는 한국에서 인구, 자본, 경제활동이 수도권, 대도시에 집중된 현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중소도시 청년은 광역시 지역의 청년에 비해 빈곤위험에 노출될 위험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 경제적 기회 및 산업구조에서의 지역 간 불평등이 한국 청년들의 경제적 불안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사회정책, 제20집 제1호 <한국과 일본 청년층의 빈곤요인에 대한 탐색적 연구> 김수정, 김영




Posted by 김구공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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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년 한 해 동안에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93,693개 분묘의 총면적(4.8㎢)이 여의도 면적(8.4㎢)의 57%에 달하는 등, 좁은 국토에서 매년 상당규모의 면적이 묘지로 바뀌고 있는 문제 
  • 전국에 흩어져있는 연고 및 무연고묘지 규모도 약 2,000만기 
  • 전국의 봉안시설은 공설 131개소, 사설 253개소이며, 향후 봉안이 가능한 구()수는 모두 합쳐 약 248만구 규모. 약 12년 정도 봉안이 가능한 인프라 수준 
  • 시설 설치과정에서 지역주민들에게 부대시설개발권 및 우선사용권, 사용 시 할인혜택 등 다양한 보상이 이루어지도록 하다 보니 화장시설 확충에 따른 행정적ㆍ물리적 비용도 증가 
  • 화장시설은 사회복지시설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음에도 일반 쓰레기소각장과 동일한 영업용 시설로 분류
  • 두께가 두껍고 무거우며 값이 비싼 매장용 관에 고인의 부장품들을 함께 담아 화장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다. 이는 화장 시간을 더 오래 걸리게 만드는 요인. 
  • 봉안시설은 일정 규모 이상의 인공적인 시설 설치가 필요.
  • 1995년에 설치되어 19년이 경과된 봉안시설의 경우, 유가족이 발길을 끊어 관리비가 연체된 채 방치된 사례들이 벌써부터 상당수 등장. 
  • 사설봉안시설의 시설폐지 이후의 대책 부재: 일단 만장이 되고 난 후에는 관리비만으로 봉안 시설을 장기간 운영하기 어려운 시설들이 등장하게 될 것.




 - 국회입법조사처, 원시연.


Posted by 김구공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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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

 

미국 연방대법원(Supreme Court of the United States)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상원의 권고와 동의 하에 임명되는 대법원장(Chief Justice), 8명의 대법관(Associate Justice)으로 구성되고 있다. 대법관은 종신직이며, 사망, 사직, 은퇴, 탄핵의 확정에 의해서만 물러나게 된다.

미국 헌법은 대법관의 수를 정할 수 있는 권한을 의회에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대법관의 자격요건에 대해서는 헌법과 법률에 어떤 설명도 없다. 따라서 이론상 대통령은 누구나 대법관후보에 지명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미국 대통령은 자신과 비슷한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을 대법관후보로 지명하고 있다. 이렇게 지명된 후보자는 상원 사법위원회의 청문회 과정에서 정치적인 검증을 받게 된다.

미국에서도 보수와 진보간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자기 정파의 의견이 대법원의 판결에 반영될 수 있도록 대법관 선출에 첨예한 대립을 보이고 있다. 다만, 그 내용면에서 변화가 일고 있는데, 연방국가의 특성상 민족과 지역에 대한 정치적인 고려 외에 후보자의 법조경력이 더욱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현재 미국의 대법관은 주로 정치경력이 많은 역대 대법관들과 다르게 순수한 법조 경력만을 가진 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2014년 1월 현재 총 9인의 대법관 중 남성이 6인, 여성이 3인이며, 인종 면에서는 유태계 3인, 앵글로색슨계 2인, 이탈리아계 2인, 아프리카계와 푸에르토리코계가 각 1인임. 이들은 모두 정치경력이 없는 법조경력자들임)

 

 

(2) 영국

 

종전에는 12명의 상원 법률귀족(Law Lords)으로 구성된 상원 상소위원회가 최고사법기관의 역할을 수행하였으나, 2005년 「헌법개혁법」(Constitutional Reform Act)에 따라 2009년 10월에 상원으로부터 독립한 대법원이 설치되었다.

대법관(Justice of Supreme Court) 12명은 상원의장(Lord Chancellor, 법무부 장관직 겸임)이 구성하는 대법관추천회의 (대법원장, 부대법원장, 각 지역 법관지명위원회 위원 3인(1명은 비법조인이어야 한다) 등 5명으로 구성됨) 의 추천과 총리의 재청을 받아 여왕에 의해 최종적으로 임명된다. 대법관은 종신제가 원칙이나 재판업무는 75세까지만 종사할 수 있다. 2007년 「헌법개혁법」을 개정하여 대법관으로 임명되기 위해서는 최소 2년 이상의 고위법관직(high judicial office) 근무경력 또는 최소 15년 이상의 자격있는 변호사(a qualified practitioner)의 조건을 갖추도록 하였다. 2014년 1월 현재, 대법관 12인 중 4명은 종전의 법률귀족이고, 나머지 8명은 「헌법개혁법」에 따라 새로 임명된 법조경력자들이다. (종전 상원 상소위원회 소속 법률귀족 12명이 신설 대법원의 초대 대법관으로 전직하였으나, 「헌법개혁법」은 초대 대법관 이후로는 상원의원이나 귀족들은 대법관이 될 수 없도록 규정하였음)

한편, 영국은 통치구조와 관련하여 영국법상 '법의 지배의 원칙'(the doctrine of rule of law)이 법원구조에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대법관 구성에 있어 정치적 쟁점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Baroness Hale 현 부대법원장이 유일한 최초의 여성 대법관(2004년 임명)일 만큼 대법관 구성에 있어 여전히 보수적이다.

 

 

(3) 캐나다

 

대법관 임명절차에 관하여 헌법뿐 아니라 법령에 어떤 규정도 없다. 다만, 관례에 따라 대법원장을 포함한 9명의 대법관은 캐나다 연방수상이 지명한 자를 영국왕실의 대리인 격인 총독이 임명하고 있다.

대법관으로 임명되기 위해서는 10년 이상 의 법조경력을 필요로 하고, 퀘벡주 출신 대법관이 3명이어야 한다는 법적 요건 외에는 연방수상이 대법관 지명권을 행사하는데 공식적으로는 아무런 제약이 없다. 대법관의 임기는 없으며, 정년이 75세로 규정되어 있다.

집권당 수상이 대법관을 지명하는데 법률적인 제약이 없기 때문에8) 대법관 구성이 정파적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임명되는 대법관은 임명 주체가 진보당이냐 보수당이냐에 관계없이 이념성향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4) 독일

 

독일의 경우 최고법원을 단일화하지 아니하고, 그 권한을 5개의 최고사법기관에 분장시키고 있다. 최고법원 중 하나인 연방일반법원(BGH:Bundesgerichtshof)이 민사·형사사건에 대한 상고심을 담당하고, 그 외의 사건은 전문 연방법원격인 행정법원, 노동법원, 사회법원, 재정법원이 분야별로 소관하고 있다. (「기본법」 제95조제1항. 각 최고법원은 재판상 독립뿐 아니라 인사, 행정 등에 있어서도 완전히 독립되어 있음)

모든 연방법관의 임명은 「법관법」 상 법관자격이 있는 자10) 중에서 각 관장분야에 해당하는 연방장관이 법관선출위원회와 공동으로 결정하고, 그 숫자는 법률로 정해져 있지 않다.

2010년 각 최고법원의 사무분장계획에 따른 연방법관의 수를 종합하면 총 320명에 이른다.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모든 법관은 임기없이 65세의 정년까지 근무한다.

한편, 연방법관을 구성하는 데 있어 경력법관제의 특성상 정치적 고려보다는 해당 분야의 법관경력을 중시하고 있고, 독일의 법원은 입법부, 행정부로부터의 독립뿐 아니라, '개개 법원의 독립'과 재판부를 구성하는 '개개 법관의 독립' 역시 잘 확립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5) 프랑스

 

사법법원의 최고법원인 파기원[Cour de Cassation](우리의 대법원)의 심리대상은 민사와 형사사건으로 제한된다. (프랑스는 사법영역과 공법영역을 준별하는 이원적 사법조직체계를 유지하고 있음. 따라서, 사법영역의 소송을 관할하는 파기원[Cour de Cassation]외에 공법영역의 행정소송을 관할하는 행정법원 조직의 대법원격인 국사원[Conseil d'Etat]이 있음. 국사원의 경우 최고행정법원으로서의 기능 외에도 행정적 심의기능을 중요하게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대법원과 차이가 있음) 파기원은 하급 법원이 법을 제대로 적용했는지 여부만 고려하고, 사실문제를 다루거나 사건의 재심을 맡지 않기 때문에 파기심이라 불린다.

파기원의 조직과 정원은 법규명령(Decret)으로 결정되는데, 현재 1명의 파기원장과 6명의 재판국장, 84명의 파기원 판사가 민사사건을 담당하는 5개 재판국과 형사재판을 담당하는 1개 재판국 등 총 6개의 재판국에 배치되어 있다. 파기원 판사는 최고사법관회의(유일한 사법관련 헌법기관으로 법원 운영과 법관의 인사에 관여하고 있음.)의 제청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고 있다. 정해진 임기는 없으며, 대부분 65세 정년까지 근무한다.

프랑스 역시 기본적으로 경력법관제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파기원을 구성하는데 정치적인 고려는 크게 작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6) 일본

 

헌법에 근거를 두고 있는 일본 최고재판소는 최고재판소 장관과 14인의 재판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최고재판소 장관은 내각의 지명에 따라 천황이 임명하고, 재판관은 내각에 의해 임명되어 천황의 인증을 받는 구조이다.

최고재판소 15인의 재판관 중에서 10인은 판사, 검사, 변호사 등의 직에 있는 자 중에서 선발되지만 나머지 5인은 반드시 법률가의 자격을 요하지 않는다. 다만, 관례에 따라 1970년대 이후 출신분야별 최고재판소 재판관 인원할당은 판사 출신 6명, 변호사 출신 4명, 검찰관 출신 2명, 행정관, 외교관, 대학교수 출신 각 1명으로 되어 있다.

최고재판소의 장관과 재판관의 정년이 70세로 규정되어 있는데, 재판관은 임명 이후 처음 시행되는 중의원 총선거 시에 최고재판소 재판관 국민심사(신임투표)를 받고, 이후 10년마다 국민심사(파면투표)를 받는다. 심사를 통해 파면된 재판관은 현재까지 없다.

최고재판소 판사가 70세에 정년퇴직하면 같은 출신분야에서 후임이 선택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일본에서 최고재판소 재판관 임명이 정치적 쟁점이 되는 일은 찾아보기 힘들다.

 

  • 국회입법조사처, 서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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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의 금융위기는, 시장경제의 내재적 흠이 아니라 원죄론, 채무 불관용론 debt intolerance theory 등에서 보이듯 시장경제운영을 잘못한 후진국이나 신흥시장경제의 문제가 아닌 선진국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금융위기 이후 바젤위원회가 채택한 바젤 III 는 경기역행적 버퍼를 포함한 완충자본을 쌓게 하는 등 자본충실화를 대폭 강화하고 자산확대 억제 위한 레버리지 비율, 긴급 유동성 확보를 목적으로 한 다양한 규제를 부과하고 있다. 국제사회가 금융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위기 발생 시 위기비용을 줄이는 동기가 있으며, 예전에는 거품인지 여부는 꺼질 때까지는 알 수 없으므로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라는 이른바 신중한 무시 benign neglect 전략과 대조되는 것이다.

 

금융안전망에 대한 전통적 시각은 그린스펀의 연설에서 잘 드러난다. 시장 규율을 대체하는 금융안전망은 은행부채에 대한 위험 프리미엄을 낮추었고, 자산 위험과 차입위험 간 연결고리, 예금비용과 다른 부채비용간 연결고리가 약화되었다. 정부보호가 당연히 예상되면서 은행의 위험추구행위에 대해 예금자들의 감시가 약화되었다. 그에따르면 건전성 규제 감독이 시장 규율을 대체하고, 그 결과 높은 위험을 수반하는 투자가 실물경제에 적정한 위험이 따르는 투자를 구축하는 자원왜곡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린스펀은 현실적 대안으로서 금융안전망 규제체계를 위험에 대한 적절한 pricing 이 반영되도록 설계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은행이 의무적으로 후순위채권을 발행하되 가산금리가 일정수준 이상인 은행은 예외 없이 문을 닫도록 하는 Calomiris (1999) 의 제안이 대표적인 예.

 

그러나 이러한 시장신뢰에 기반한 시장규율은, 민스키의 금융불안정 가설을 끌어오지 않더라도, 위기는 글로벌세계의 중심국가에서 발생했으며 국제사회의 컨센서스는 시장경제를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회의론으로 돌아선 것이다. 19세기 은행들이 기술 및 정보통신이 발전함에 따라 경쟁이 심화되면서 더 평판을 얻기 위해 위험관리를 위한 시장규율을 도입해냈는데, 당시 은행들의 자본비율이 현재보다 훨씬 높았던 것이 그 증거다.

 

미시건전성 정책과 중앙은행의 최종대부자기능, 예금보험 그리고 보유외환 등으로 요약되는 위기관리기능이 전통적 금융안전망이라면, 새로운 금융안정프레임워크는 거시건전성정책, 통화정책, 금융회사의 행위규제, 금융소비자보호, 회계제도 등을 포함한다.


 


Claessens et al. (2012) 는 1960년부터 2010년까지 44개국을 대상으로 분석하여 경기순환과 신용순환이 겹칠 때 금융가속기 및 담보의 역할을 수행하는 부()의 외부효과가 동반되어 진폭과 강도가 강화되는 사실을 규명했다. '좋은 신용 붐'은 금융심도를 높이고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나쁜 신용 붐'은 금융불안정과 경제적 불균형을 초래하나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신용순환은 경기순환과 꼭 일치하지는 않기 때문에 금융의 경기순응성이 중앙은행들의 물가안정목표 inflation targeting 체계로 강화될 수 있다. 신용 붐은 단기로 자금조달하고 장기로 자금 공여하는 만기전환으로 단기금리를 높이는 압력을 준다. 한편 물가안정통화정책을 수행하는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 전망이 목표 밴드 내에 있는 한 시장금리가 정책금리에서 일정수준 이상 벗어났을 때 정책금리를 인상하는 대신 공개시장조작을 통해 시장금리를 인하하고자 하여 결과적으로 유동성이 늘어나게 된다. 통상 신용순환이 경기순환보다 길기 때문에 물가안정 하에서 신용 붐은 과잉유동성 문제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30여년 전 당시 중남미 국가를 중심으로 불었던 금융자본자유화는 금융시장의 내생적 불완전성과 정책딜레마로 의도하지 않았던 불안을 동반하였으며 많은 나라에 위기를 초래했다.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의 전면적 외환자유화 조치에서도 탈규제, 자유화의 부작용은 발생하였는데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막대한 해외자본의 유입과 갑작스런 중단 및 역류가 일어났고 막대한 외환보유액에도 불구하고 보유외환이 줄어드는 공포와 자유낙하하는 환율 공포 사이에서 외환당국으로서는 균형 정책을 수용하는 수밖에 없었으며 한미 통화스왑협정 발효시까지 외환불안은 계속되었다.

 

국제금융위기는 자본흐름이 동반하는 위험에 대한 자기보험으로서 적정보유외환수준에 대한 논란과 함께 자본통제의 당위성도 제기시켰다. 유입된 해외자본이 외환준비금으로 적립되지 않는 한 자본유출 시 외환불안은 불가피하다. 그리스펀 룰은 외환당국이 최종보험자로서 1년 만기 단기외채를 보유외환으로 적립할 것을 제안하나, 피보험자가 적정 보험프리미엄을 지불하지 않으면 모럴해저드 우려가 있다.

 

환위험을 회피하려는 기업의 환헤징은 거래상대 은행의 외화차입을 동반하고 이는 잠재적 통화, 만기불일치 위험을 동반하며 결국 최종보험자인 외환당국에 환위험이 전가되는 결과가 된다. Rodrik (2006) 은 보유외환을 유지하는 비용으로 통상적 준 재정비용이 아닌 외화자금 조달금리에서 보유외환으로부터의 수익률을 차감하는 사회적 비용으로 정의하며 이 때 단기외채를 은행의 선물환포지션 규제, 외화차입금에 대한 거시건전성부담금을 부과하면 이는 부정적 외부효과 차단을 위한 피구조세가 된다.

 

국제금융위기는 금융불안정이 경상수지적자가 아니라 외환에 대한 적자경제주체인 은행권의 대외자산과 부채의 불일치에서 비롯하였다. 즉 자본흐름의 경기순응성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외화차입을 억제하는 거시건전성규제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대외자산의 부채는 유출입 자본규모만이 아니라 환율 및 투자자산의 가격변동에도 영향을 받는다.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급속히 높아진 자본이동성에 대응하기 위해 신흥시장국가들이 보유외환을 확충하는 과정에서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고, 이를 공급하는 미국은 저렴한 자금조달비용으로 위험자산 투자하여 대외자산이 대외부채에 대해 높은 초과수익을 실현함으로서 지속가능한 불균형이 유지되고 있다.

 

경상수지흑자에도 불구하고 대외부채 증가율이 대외자산을 압도하는 현상은 자본유입을 적절히 관리하는 것만으로는 외환부문의 건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함의를 가진다. 외환부문에 대한 거시건전성정책은 은행권의 과다외화차입을 어느 정도 잘 억제했다. 그러나 비거래요인 즉 해외자본이 얼마나 들어왔는가가 아니라 유입된 자본이 얼마나 벌었는가가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 금융안정체계의 핵심은 외환부문 건전성이며 그 중심에 자기보험으로 일차적 위기관리하는 외환시스템이 있다. 그러나 대외자산 증가율이 대외부채에 크게 못미침으로 인해 경상수지흑자기조에도 대오자산과 부채 불균형이 심화되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 신흥시장국 특성상 대외부채 상당부문은 국제통화로 표시된다. 이로 인해 경제가 외환에 대한 매도포지션을 취하게 되며 환율변동에 따른 평가효과 또는 부(富)의 효과가 경기순응성을 가지게 된다. 대외충격으로 자국통화 환율 절하가 발생하면 대외부채의 실질가치가 증가하여 충격의 파급효과가 커지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3년~2012년 기간 대외부채 가운데 원화 표시비중은 평균 57% 달러화는 35%에 이르고 원화비중이 늘어나는 추세를 보인다. 한편 50년 이상 대규모 경상수지적자로 대외부채가 대외자산보다 훨씬 큰 오스트레일리아는 대외부채가 대부분 자국통화로 표시되거나 헤징됨으로써 자국통화에 대해 매도포지션을 보인다. 그 결과 환율과 평가효과는 해외통화로 표시한 순대외부채가 반대로 움직이는 경기역행성이 존재하고 있다. 이는 통화국제화의 진전으로 오스트레일리아의 통화에 대한 해외수요가 충분히 창출될 수 있으며 따라서 외환당국이 외환에 대한 최종보험자로서의 기능을 수행해야 할 여지는 별로 없는 것이다.

 

 

  • <비통념적 시각에서 본 금융안정체계의 구축>, 김경수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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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생계형 편견이라는 것을 접하게 될 때가 있다. 사업을 하다가 외국인 노동자나 파트너에게 사기를 당했다거나, 여행을 갔다가 폭행이나 강도를 당하게 된 경우 등이 그것이다. 누구나 신체와 재산의 안전에 대한 본능이 가장 강력하기 때문에, 그에 따라 방어적 인지의 프레임을 형성하게 되는 사고의 흐름에서 일반화의 논리라거나 통계적 확률 등은 무력해질 수 밖에 없다.

 

외국인 전용 (열등) 목욕탕의 기사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돌을 던졌다. 어떤 사람들은, 흑인이라는 이유로 버스에 탈 수 없었던 로자 파크스를 인용했고, 어떤 사람들은 한국인들 또한 외국에서 똑같은 차별을 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성을 높였다. 다른 민족을 조직적으로 학살한 적도 없고 특정 민족이나 인종을 격리 거주 구역에 몰아넣고 외출시 특별히 허가받은 낙인과 목걸이를 요구한 역사도 없는 한국이 가장 인종차별이 심한 나라라고 성토하는 글을 보기도 했다.

 

나는 그 분노하는 사람들이 평소에 얼마나 자주 연 소득 1만 달러 이하의 흑인, 아랍인, 인도인, 캄보디아인 등 10명 이상과 알몸으로 공중목욕탕에서 마주하는지 잘 모른다. 인터넷에서 큰 인기를 끄는 외국 드라마는 백인 뿐이고, 백인들이 운영하는 기업의 핸드폰과 점퍼와 가구로 두른 가정을 끊임없이 전시해대며 한국의 유통망이 백인 국가 제품들을 들여오면서 얼마나 폭리를 취하는지에 대한 글을 공유해대며 사는 사람들이 평소에 차별 받는 유색인종들과 얼마나 자주 인사하며 돈을 거래하고 살을 부대끼는지도 의문이다.

 

재산권과 치안이 정교하게 보장된 현대 선진국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낯선 이에 대한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음이 자신의 노력과 교육과 교양 혹은 좋은 가정 환경 덕분인 척 으스대며 가난하며 배운 것이 없어 편견으로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 사람들을 멸시하고 조롱하곤 한다. 안전한 성채 속에서만 사는 부유한 귀족들만이 갖출 수 있었던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교양의 옷을 치렁치렁 두르고 방어적 혐오를 혐오로 되돌리며 가난함과 못 배움의 결과를 좀 더 세련되게 무시하고 조롱하면서 자신을 선진국 중산층의 교양 있는 백인들에게 감정이입하며 어떻게 유색인종인 한국인 따위가 다른 유색인종을 차별하느냐고 핏대를 세우기도 한다.

 

그렇지만 상대의 인종과 외모를 의식하는 티도 내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미국에서는 흑인이 백인보다 5배 이상 더 사형을 당하고 백인이 피해자인 경우는 흑인이 피해자인 경우보다 두 배 더 많이 해결되며 유럽은 부르카를 금지시키고 격리거주구역을 만들며 타 인종과는 살아도 무슬림과는 못살겠다는 응답이 9할을 가볍게 찍는 것이 현실이다. 유색 인종이나 동성애자와 함께 축구 경기를 관람할 수 있고, 그가 충분한 교육을 받았으면 함께 아이폰을 팔 수도 있지만, 그들을 내 아이의 보모로 맡기기는 께름직하고 아파트 위층 아래층으로 살기에는 꺼려져서 백인 마을에 프리미엄을 주고 이사하는 것이 '다양성을 존중하는 선진국 중산층 시민'들이 '실제로 취하는 삶의 모습' 아니던가.

 

외국인을 구별하여 열악한 시설로 보내는 것은 교과서적 차별이다. 그 행위를 옹호해줄 수는 없다. 다만 외국인을 흔쾌히 받아들였을 때 내국인들이 떠나고, 그 결과 목욕탕이 망하게 된다면 그 연쇄를 어떻게 사회적으로 제도적으로 문화적으로 다루어야 할지는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저 돈을 많이 벌어서, 차별과 편견 없이도 생계에 위협이 되지 않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개인적 다짐 뿐.


관련기사> 목욕탕마저 차별... "외국인들과 목욕탕을 같이 쓰는 것을 싫어하는 손님들이 있어 만들어진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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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구매는 흔히 사회적 허영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나폴리 속담에서는 "Chi ha danari compra feudied ebarone 돈 있는 자는 땅을 사서 귀족이 된다"는 말이 있다. 그것은 귀족으로 사회적 상승을 하는 길이다. 16세기 제노바 상인들은 나폴리 왕국의 영지를 사들였고 18세기 파리의 귀족들은 브르타뉴나 로렌의 영지를 사기도 했다. 아우크스부르크의 푸거 가는 그들의 최고 융성기에 슈바벤과 프랑켄의 영지와 공작령들을 구입하여 훌륭한 방식으로 관리했다. 리옹에 진출한 이탈리아 상인들, 나폴리의 제노바 사업가들은 영지를 사고 그것으로 귀족 작위를 얻기도 했다. 영지를 구입하고, 조림을 개조하여 자신의 성을 두르는 것은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들과 자신의 주거를 구분짓는 강력한 수단이었다. 나탄 로스차일드도 자신의 별장을 갖는 것이 꿈이라고 술회한 바가 있다.

 

그러나 토지는 단순히 허영과 계급의 상징에 머물지 않는다. 도시 근처의 땅을 사서 식량 공급을 확보해놓는 것은 신중한 방책이다. 상인들은 땅을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곤 한다. 1408년 4월 23일 피렌체의 상인 무카 델 세라는 프라토의 상인인 프란체스코 다티니에게 이런 편지를 보낸 바 있다. "당신에게 부동산을 사두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나 역시 요즘에는 전보다 더 열심히 그렇게 합니다. 적어도 땅은 바다에서의 사고, 정직하지 못한 고용인이나 파트너, 파산 등으로부터의 위험이 없습니다. 그런 만큼 나는 당신에게 충고하고 또 그렇게 하기를 요구합니다. Piuve ne conforto e pregho"

18세기 라 로셸 상인들은 포도밭 소유권의 지분을 구입하여 돈을 예비해놓고, 필요한 순간에 큰 어려움 없이 회수할 수 있었다. 16세기 앤트워프의 상인들은 주변 지역의 토지를 근거로 돈을 빌리고 신용을 증대시켰으며, 그 토지 자체로 소득을 얻기도 했다.

 

21세기 초엽의 대한민국은 흔히들 부동산 공화국이라고 부른다. 한국의 부동산 시가 총액은 약 9천조 가량으로 GDP 의 10배에 달한다. 부동산 경제에 편입되기 위해 혹은 탈락하지 않기 위해 모든 경제활동주체들이 투자하는 그들의 소득과 유무형의 자산에 대해서 굳이 다시 기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한국인들이 유달리 땅을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종특'적 분석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2014년 현재 한국의 부동산은 거대한 금융부채에 저당잡혀 있고, 건물 매매가는 상승을 멈추었으며, 마치 1584년 베네치아 티에폴로 피사니 은행이 담보용 토지자산을 껴안고 파산했을 때처럼 토지자산에 매몰된 자본을 융통하지 못할까 하는 거대한 공포가 투자자들을 짓누르고 있다.

 

다른 수많은 사례들이 보여주듯, '땅 사랑'에 대해서도 한국인들은 별로 특별하지 않다. 다른 나라 사람들만큼 허영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만큼 신분상승을 원하며 다른 역사만큼 익숙하지 않은 자본 형태를 두려워한다. 때문에 한국의 경제규모와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과도한 비율이, 검증되지도 않고 검증할 수도 없는 한국인의 특성 어쩌고 보다는 금융과 인적자산 및 신용평가체제가 자리잡지 못한, 자본시장의 미성숙에 기인하는 점이 크다고 생각한다. 현대 금융자본 운용의 최대 주체이자 첨단에 서 있어야 할 '은행'이 신용자본 창출과 파산보증을 어디에 주로 담보잡는지만 봐도 명백하다. 아직 자본주의가 성숙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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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주권 원칙에 기초한 국제사회는 지속 가능한가? 둘째, 그러한 국제사회는 지속되어야 하는가? 헤들리 불 같은 영국학파의 이론가들은 국제사회는 일정 부분 합의된 사상과 가치 기반 위에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관점을 현 상황에 적용시켜 보면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진정한 의미의 국제사회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비서구적인 요소를 더 적극적으로 흡수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문명충돌론(Hungtinton, 1996) 은 서구와 비서구의 가치가 궁극적으로는 양립불가능하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이러한 견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중세 시대에 기독교권과 이슬람권이 상호작용했듯이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독자적인 국제사회들이 서로 경쟁하는 가운데 공존하는 미래를 그린다. 다른 사람들은 필요할 경우 서구적 가치를 강제함을 포함하는 좀 더 공세적인 서구주의Westernism를 주장하는데, 이러한 견해는 결국 19세기 국제사회로의 회귀를 옹호한다고 해석될 수 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규범과 규칙이 강대국에 의해서 단순히 강제되기보다는 대화와 합의를 통해 협상 대상이 되는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제도화된 정치적 과정' 이 필요함을 역설하기도 한다. (Hurrell, 2006).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주권은 국제사회의 초석으로 계속 남아 있되 더 포괄적이고,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더 효과적인 공동 의사 결정 과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주권은 다양한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입증해 왔다. 왕조 주권은 인민 주권에 길을 내주었고, 국가는 전쟁의 권리를 포함해서 행동의 자유에 대한 제약이 증가하는 것을 받아들였고, 국가는 전쟁의 권리를 포함해서 행동의 자유에 대한 제약이 증가하는 것을 받아들였고, 그 제약은 국가의 선택에 따른 것이었다. 20세기 들어서 주권은 민족자결 원칙과 긴밀하게 연결되었고, 그 결과 유럽 국가들은 자신들의 주권적 권한에 대한 존중을 요구하면서 그들이 통치하는 식민지들 역시 그러한 권한을 요구할 수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는 이율배반적인 과거의 관행을 포기해야 했다.

지난 수십 년 사이에 독립을 쟁취한 국가들이 세계시민주의적인 질서 수립을 위해 주권 존중 원칙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국제사회는 앞으로 상당기간 동안 주권 원칙에 기초할 것이다. 이 같은 국제사회가 새로운 종류의 도전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지 여부는 이 사회의 진화 능력에 달려 있다.

 

 

  • David Armstrong, [국제 사회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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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대법원은 지난 2013년 3월 21일 사법 사상 최초로 공개변론을 텔레비전과 인터넷으로 생중계하였다. 이는 재판의 생중계를 허용한 첫 번째 사례로서, 앞으로는 하급심 재판에 대한 재판방송을 허용하는 등 재판방송을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일부 판사들의 막말로 인한 사법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고,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통해 사법접근권을 강화할 필요성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미국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수정헌법 제 1조와 "모든 형사소송에서 피고인은 공정한 배심에 의해 신속하고 공개적인 재판을 받을 권리를 향유하고 있다" 고 규정한 수정헌법 6조를 조화시키려는 차원에서 재판방송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실험이 전개되어 왔다.

워싱턴 D.C. 를 제외한 거의 모든 주의 법원에서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재판과정에 대한 방송을 허용하고 있다. – 델라웨어, 일리노이, 인디애나, 루이지애나, 뉴욕, 사우스다코다, 유타 등 7개 주 항소심 법정에서만 카메라 설치 제한.

미국 연방대법원은 1980년대 초반까지 재판방송을 금지하는 경향을 보였으나, 1980년대 후반부터 재판방송을 위한 다양한 실험적 시도를 하고 있다. 1991년 7월부터 93년 6월까지 3년간 두 곳의 연방항소법원과 6곳의 연방지방법원에서 진해오딘 약 200개의 민사소송절차에 대해 녹음, 녹화, 방송이 가능하게 되었다. 당시 연방사법센터 FJC 의 평가에 따르면, 관여했던 판사나 변호사들은 법정 내의 카메라 인입이 당사자들이나 재판절차 및 판사나 배심원들의 주의력을 거의 흐트러뜨리지 않아 판사들의 태도가 호의적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실험은 캘리포니아에서 있었던 O.J. Simpson 사건의 변론준비에 대한 미디어의 지나친 방송으로 인한 악영향으로 1994년 12월 31일 종료되었다.

이후 미국 연방대법원은 2000년 Bush v. Palm Beach County Canvassing Board 사건과 Bush v. Gore 사건 당시 주요 방송사로부터 제기된 재판방송신청을 기각하고 대신 대법원이 구술변론 내용을 녹음해서 언론에 제공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후 중요 사건에 대해서는 재판 당일 변론에 대한 녹음파일을 언론에 공개했다.

2004년부터는 일부 변호사들에게 변호사 라운지에서 법정 내 구두변론을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도록 했는데, 이는 구두변론 내용이 실시간으로 연방대법원 법정 밖으로 전파되는 최초의 사례였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은 2009년과 2010년 사이 언론으로부터 신청접수된 7건의 녹음파일 제공요청을 모두 기각했다

2005년부터 2011년까지 연방대법원에 대한 카메라 접근을 허용하자는 취지를 담은 재판공개법안(Sunshine in the Courtroom Act)들이 여러 차례 제출되었으나31) 상원의 표결절차에는 이르지 못했고, 2013년 2월 28일 연방항소법원과 연방지방법원 내에 재판장 재량에 따라 카메라를 설치하여 재판절차를 방송할 수 있도록 하는 재판공개법안」(Sunshine in the Courtroom Act of 2013) 상원과 하원에서 각각 발의되어 사법위원회(Committee on the Judiciary)에 계류되어 있는 상태다. 이 두 법안은 모두 연방항소법원(U.S. appellate court) 또는 지방법원(U.S. district court)에서의 재판과정을 당사자들의 적법절차 권리가 침해되지 않는 범위에서 일반 대중에게 공개하기 위해 그 재판과정에 대한 촬영, 녹음, 방송 또는 TV 중계를 허용하고자 하는 것.

상원의 재판공개법안은 지방법원에서 재판방송을 할 때 증인의 음성과 얼굴을 숨기거나 명확히 볼 수 없도록 조치하여 줄 것을 증인이 신청하는 경우 재판장은 그러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그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 재판장은 재판과정에서 권리의 당사자가 아닌 각각의 증인들에게 이러한 요청을 할 수 있음을 고지함

○ 사진촬영녹음방송 또는 TV 중계가 개인의 안전, 재판의 보안, 미래 또는 진행되고 있는 법 집행의 통합이나 사법적 이익을 위협한다고 간주할 만한 정당한 사유가 있을 경우에 재판장은 개인의 음성과 얼굴을 명확히 볼 수 없도록 조치할 수 있음

○ 그러나 재판장은 재판과정이나 배심원 선정과정에서 배심원에 대한 사진촬영녹음방송 또는 TV 중계를 허용할 수 없음

○ 사법협의회(Judicial Conference of the United States)로 하여금 재판장이 취약한 증인을 차폐(obscuring)하는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의무적인 가이드라인(mandatory guideline)을 제정하도록 함

○ 만약 재판 중 회의가 재판과정의 공식적 녹음의 일부가 아니라 변호사와 사건당사자, 사건당사자의 공동변호인, 상대방의 변호인과의 대화 또는 변호인과 재판장 사이에 법정에서 발생하는 회의인 경우에는 이에 대한 방송 또는 음성녹취를 금지함

한편, 하원의 재판공개법안34)도 상원의 법안과 마찬가지로 증인의 신청에 의해 음성과 얼굴을 숨기거나 명확히 볼 수 없도록 조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영국

 

국의 잉글랜드 법정과 웨일즈 법정에서는 재판과정의 이미지를 방송하거나 음성을 녹음하는 것이 형사정책법(Criminal Justice Act 1925) 41조와 법정모독법(Contempt of Court Act 1981) 제9조에 의해 금지되어 있다. 이 조항에서의 '법정'에는 모든 법정이 포함되었으나 후술하는 바와 같이 2005년 대법원 설치에 관한 법률(Constitutional Reform Act 2005)의 개정을 통해 '대법원'은 제외되게 되었다.

영국 형사정책법 제41조는 법정 안 또는 주변에서 사진촬영이나 스케치를 하거나 이러한 사진이나 스케치를 출판게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영국의 법정모독법 제9조는 법정을 나설 때를 제외하고 재판과정에서의 모든 음성녹취를 금지하고 있으며, 제9조 제(2)항은 대중에게 재판 진행과정의 녹음을 방송하는 것을 법정모독죄로 규정하고 있다.

북아일랜드의 북아일랜드 형사정책법(Criminal Justice Act (Northern Ireland) 1945) 제29조도 잉글랜드와 웨일즈 법정과 거의 유사한 제한을 두고 있다. 

한편, 2009년 10월 1일 창설되어 같은 해 10월 5일 첫 재판을 시작한 영국대법원(Supreme Court of the United Kingdom)은 처음부터 재판방송을 허용하기로 하여 법정 내에 고정된 카메라를 설치해두고 있다. 영국대법원은 대법원 설치에 관한 법률(Constitutional Reform Act 2005) 제47조에 근거하여 재판과정에 대한 방송을 허용하고 있다. 이 조항은 형사소송법의 '법원'(court)이라는 표현이 대법원을 제외한 사법부를 의미한다고 명시하여 대법원이 촬영에 대한 금지조항의 적용을 받지 않도록 하고 있다.

대법원은 설립 당시부터 재판과정을 대중이 접근 가능하도록 하는 것을 핵심목표로 하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재판이 촬영되고 방송되고 있다. 영국대법원은 재판방송을 위하여 대법원 업무수행지침(Supreme Court Practice Direction)에서 심리는 TV로 촬영되고 방송될 수 있고, 대부분의 심리는 Sky News의 웹사이트에서 생중계되도록 허용하고 있다. 대법원에서의 모든 심리는 온라인으로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으며, 2012년 2월 열린 '줄리안 어센지'(Julian Assange)의 범인인도재판의 경우 14,500명이 심리 첫 날 실시간 방송을 통해 방청하기도 했다. 2012년 3월에는 35,000명이 스카이 뉴스 웹사이트에서 대법원 실시간 전송을 통해 방청하였으며, 22,000명이 매달 방문하고 있다. 

대법원 재판과정에 대한 촬영 및 방송을 위해 승인된 사항과 관련하여 세부적 운영체제와 규칙은 주요 국내 방송국인 BBC, ITN, Sky News 들에 의해 서명된 동의를 바탕으로 설정되었다. 특정 장면을 담은 화면은 뉴스, 시사 그리고 교육용, 법률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위해서 사용이 가능하며,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 풍자 프로그램, 정당의 정치방송, 그리고 광고나 홍보 등에서는 사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필름으로부터 생산된 이미지의 경우 법원의 위엄과 기능을 고려하여 사용되어야 한다.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은 카메라나 녹음장비가 재판진행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녹화와 방송이 관련 방송사 대표들과 동의한 규약(protocol)에 따라 수행되는 법정에서 재판과정을 녹음, 촬영, 방송하게 해 달라는 요청을 수용할 것이며, 이 수용에 대한 빠른 승인을 요청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영국대법원의 재판방송에서 주요 규칙으로는 다음과 같은 사항이 있다.

○ 변호인 또는 재판정 내 어떤 사람의 사적 대화도 녹음하거나 촬영해서는 안 됨

○ 판사들 간의 사적 대화를 녹음하거나 촬영해서는 안 됨

○ 아직 공개되지 않은 재판관 자리의 어떤 서류도 클로즈업해서는 안 됨

○ 카메라는 법원의 재판과 대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며, 방청석에 앉아 있는 방청객을 클로즈업해서는 안 됨

○ 비어있는 재판정 내부를 방송사가 개별적으로 촬영하겠다는 요구는 고려할 수 있지만, 휴정시가 아니라 일과가 끝난 후에만 가능함

○ 법원에서 혼란이나 시위가 발생하여 재판이 중단되거나 휴정을 초래할 경우 촬영은 중단될 수 있다.

○ 방송사가 과거의 한 주 이상의 재판자료를 원할 경우에는 조사비용에 해당하는 소액의 비용을 요청받을 수 있다. 

한편, 영국대법원의 방송 엔지니어를 위한 방송지침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 카메라는 항상 법원의 재판과 대화내용에 초점을 맞추어야 함

○ 방청석에 앉아있는 방청객을 클로즈업하거나 법원 구성원들의 반응을 촬영해서는 안됨

○ 법관들간의 사적 대화를 고의적으로 녹음하거나 녹화해서는 안됨

○ 변호인이나 재판정의 어떠한 사적인 대화도 고의적으로 녹음하거나 녹화해서는 안됨

○ 아직 공개되지 않은 판사석의 어떠한 서류도 클로즈업해서는 안됨

○ 법원에서 혼란이나 시위가 발생하여 재판이 중단되거나 휴정하게 될 경우 촬영을 즉각 중단해야 함

○ 시위가 발생할 경우 카메라는 그로 인해 중단된 재판의 촬영을 지워야 함

 

 

독일

 

독일 기본법 제5조 제1항에서는 "언론의 자유와 방송 및 영화에 의한 보도의 자유는 보장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원칙적으로 TV 방송사와 그 대표자에 대해서는 일반 국민과는 달리 공개주의의 범위 내에서 범정심리에 참여할 기회를 요구할 어떠한 권리도 인정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된다.

독일은 법원조직법(Gerichtsverfassungsgesetz: GVG) 제169조 제1문에서 재판공개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지만, 제2문에서는 라디오텔레비전 등으로 방송하는 것과 일반인에게 공개하거나 보도를 목적으로 한 녹음이나 영화촬영은 허용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법원조직법 적용을 받는 각 주 법원에서는 공개 및 보도를 목적으로 한 녹음이나 촬영을 할 수 없다. 공개를 목적으로 한 녹음이나 녹화를 금지하는 이유는 법정에서 라디오나 TV 방송으로 인해 증인 및 감정인의 진술을 방해하거나 이들의 진술태도에 영향을 미치게 하는 것을 피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의 녹음과 녹화의 금지는 절대적인 금지가 아니라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것을 금지하기 위한 목적에서만 인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재판내용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 녹음기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녹음이나 녹화의 금지가 적용되지 않는다. 법원이 증거조사시 재판절차에서의 인용 목적이나 전문가 진술 참조 또는 판결문 작성시 참고하기 위한 녹음이나 녹화는 인정된다. 또한, 학문적 목적이나 교육의 목적을 위한 녹음이나 녹화 역시 금지되지 않으며, 이러한 경우에는 재판당사자의 동의도 필요하지 않다.

독일의 법원조직법 제169조 제2문과 관련하여 독일의 뉴스전문 텔레비전방송국 'n-tv'는 법정심리 및 판결의 선고시에 텔레비전 촬영이 허용되는지의 여부에 관한 헌법소원을 제기한 바 있으며, 연방헌법재판소는 2001년 1월 24일 5:3의 다수견해로 법원조직법 제169조 제2문이 헌법에 합치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5인의 다수 재판관은 소송관계인의 인격권 보호, 공정한 절차의 보장과 방해 받지 않는 법과 진실 발견 등을 근거로 하여 텔레비전 촬영에 대한 절대적인 금지를 헌법에 합치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나머지 3인의 재판관은 행정법원의 소송절차는 특별한 인격권 보호의 이익도 없으며, 텔레비전 공개주의로 인해 법과 진실 발견의 과정이 언제나 위태롭게 되는 것은 아니라면서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왜냐하면 행정법원의 소송절차에서는 소송당사자가 개인적으로 직접 심리에 참석하기보다는 변호사가 참석하는 경우가 많으며, 심리대상도 사실문제가 아닌 법률문제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라는 것.

한편, 연방헌법재판소는 연방헌법재판소법(Bundesverfassungsgerichtsgesetz: BVerfGG) 제17a조에 따라 제한적이나마 재판에 대한 방송을 허용하고 있다. 연방헌법재판소법 제17조에서 법원조직법 제14절 내지 제16절의 규정을 준용하도록 하고 있지만, 녹음이나 촬영을 통한 재판공개와 관련하여서는 법원조직법 다른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연방헌법재판소법 공개방송이나 공개방송 내용의 공표를 위한 목적으로 '구두변론시, 법원이 재판관련자의 출석을 확인할 때까지'와 '결정의 공개선고시'에는 라디오 또는 TV 방송의 음향녹음 및 영상녹화를 허용하고 있다. 또한 소송관계인 또는 제3자, 그리고 재판의 질서정연한 진행을 위하여 보호할 만한 이익을 보장하기 위하여 녹음이나 녹화 또는 그 내용의 전송을 전부 내지 일부 금지시키거나, 일정한 조건을 붙여 촬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연방헌법재판소는 다른 법원들과는 달리 소송관계인 구두변론시 법정에 참석을 확인받을 때까지 또는 선고결정시 TV와 라디오 방송이 가능하도록 간접공개를 허용하고 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법 제17a조의 규정이 신설된 이유는 연방헌법재판소의 절차의 특수성에서 연유한다. 일반적으로 연방헌법재판소의 절차에서 소송관계인은 일반인이 아닌 기관의 대표 또는 소송대표자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법원조직법 제169조 제2문에서 목적하는 일반적인 인격권의 침해는 발생하기 어렵다. 또한, 연방헌법재판소 절차에서 다루어지는 문제는 대부분 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에 이미 공개적으로 상당하게 토론된 경우가 많다.

 

 

프랑스

 

프랑스는 형사소송법에서 공개재판주의를 선언하고 있다. 심급별로 중죄법원(Cours d'assises)에 대해서는 형사소송법(Code de procédure pénal) 제306조, 일반형사법원(Tribunal correctionnel)에 대해서는 같은 법 제400조, 즉심법원(Tribunal de police)에 대해서는 제535조에서 공개재판주의를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 형사소송법 제308조에서는 "재판의 개시와 함께 모든 음성저장기구, 소리발산장치, TV카메라, 영화카메라, 사진장치는 금지되고 이를 위반시에는 18,000 유로의 벌금에 처한다"고 하여 재판방송을 금지하고 있다.

이는 재판정에서의 심리 중에 TV에 의한 방송은 일반적인 경우에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같은 조에서는 "중죄법원장은 자신의 통제 하에 심리의 일부 혹은 전부를 녹음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또한 피해자 또는 사건당사자의 요청에 의해서 그들의 증언이나 변론이 같은 조건 하에서 영상저장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공판과정에 대한 녹음 및 녹화는 허용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 민사소송법 제22조는 "공판은 다른 법률이 조정화해법정을 요구하거나 허용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공개한다"49)고 규정하고 있다. 같은 법 제174조는 "판사는 그가 진행하는 심리의 모두 또는 부분의 음향, 영상, 동영상의 기록을 하도록 할 수 있다. 이 기록물은 법원행정처장이 보관한다. 소송의 당사자는 자신의 비용으로 기록물의 견본, 복사, 복제를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프랑스의 경우 형사재판이나 민사재판에 대해서 음성이나 영상기록을 남길 수는 있지만 이에 대한 공개는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반면, 프랑스는 헌법재판에 대해서는 재판방송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프랑스 헌법재판소 내부규칙 제8조는 "재판장은 공판 내에서 경찰권을 행사한다. 재판장은 심리의 원활한 진행을 수행하고 심리를 진행한다. 공판은 헌법위원회 내에서 공중에게 공개된 공간에서 직접 영상으로 중개할 수 있다. 재판장은 소송당사자의 요구나 직권으로 공판의 공개를 제한할 수 있는데, 이는 공공질서를 위해서 혹은 미성년자나 개인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서만 제한된다. 재판장은 예외적인 경우와 상기의 제한된 동기 하에서만 비공개 공판을 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같은 규칙 제9조는 "공판의 개시 이후에 제8조에서 열거한 재판방송에 필요한 것과 다른 음성이나 영상을 저장하고 송출하는 모든 기계의 사용은 공판정 및 이를 시청할 수 있도록 한 공간 내에서 모두 금지된다.

그러나 재판장은 소송당사자의 의견을 수렴한 후, 헌법위원회의 인터넷사이트에 공판 영상을 송출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또한 재판장은 공판의 보존이 헌법위원회의 문서보관소에 이를 보관할 이익이 있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는 그 보관을 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 국회입법조사처, 조규범 법제사법팀 입법조사관.


Posted by 김구공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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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4세의 침실에서 이루어지는 의식(儀式)은 박물관의 전시물처럼 현대 관객을 위한 호기심의 대상보다는, 궁정조직의 구조와 기능방식의 일부였으며 동시에 궁정을 같이 형성하고 그것에 의하여 각인된 인간들의 특성과 태도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왕은 자신이 정한 8시 정각에 깨워지는데, 그 일은 왕의 침대 아래쪽에서 자던 제 1(침실)시종Kammerdiener 이 맡았다. 침실 문은 시동 Kammerpagen 이 열었다. 그러는 사이 두 시종 가운데 하나가 이미 시종의 우두머리인 대시종장 grand chambellan 에게 보고한다. 그러면 제 2시종이 아침식사를 준비하러 궁정주방으로 갔고, 문 앞에 서 있는 제 3시종은 입자잉 허락된 신사들만 들여보냈다.

이러한 우선권은 아주 엄격하게 등급화되었다. 이에 따라 차례로 입장이 허용된 여섯 부류의 상이한 집단이 있었다. 이것을 '앙트레' entrée 입장순위) 라고 한다. 일단 '가족의 입장 entrée familiere' 이 시작된다. 이 순서에는 누구보다도 왕의 적자(嫡子)와 손자(Enfants de France), 황실의 왕자와 공주들, 제 1주치의, 제1외과의 그리고 제1시종과 시동이 들어온다.

그런 다음 내각의 대신(大臣, grands officiers de la chambre)과 의상실 요원(officiers de la garderobe) 및 왕이 명예를 인정해준 남자 귀족 등의 '대공 입장' (grand entrée) 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왕에게 공문서를 읽어주는 '제 1순위 입장객 premiere entrée' 이 뒤따르고, 그 다음으로 여흥이나 축하연을 관장하는 나머지 사람들이 들어간다. 네 번째는 그 밖의 모든 '의전실 요원 officiers de la chambre'을 포함하는 '각료 입장 entrée de la chambre' 으로 특히 '구호물자 담당관 grand-aumonier' 각 부서의 장관과 비서관, '국화의원 conseillers d'Etat' 왕실수비대, 프랑스의 장군(제독) 등이 입장한다. 제 5순위 입장객은 어느 정도 제1시종의 취향에 좌우되는데, 물론 왕의 총애를 감안하였다. 이러한 입장객으로는 시종이 입장을 허락하는 귀족 남녀들이 해당한다. 따라서 그들은 누구보다도 왕의 근처에 갈 수 있는 우선권을 누렸다.

끝으로 모든 이들이 가장 원하는 제 6순위 입장객이 있다. 이들은 침실 정문이 아니라 뒷문으로 들어간다. 여기에는 왕의 적자는 물론 서자(庶子)와 왕의 모든 가족, 사위까지도 들어간다. 특히 막강한 '건축 시공업자 surintendant des batiments' 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집단에 속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총애의 표현이었다. 왜냐하면 거기에 속하는 사람들은 왕이 각료회의에 들어가거나 각료들과 특별한 업무를 시작하지 않은 경우라면 왕의 골방 (집무실) 에 언제나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왕이 미사에 갈 때까지 또는 심지어 왕이 아플 경우에도 그 방에 머무를 수 있었다.

  제 1순위와 제 2순위 입장객은 왕이 아직 침상에 있을 경우에도 입장을 허용받았다. 이 때 왕은 작은 가발을 쓰고 있었는데, 침대에 누워 있을 때조차도 그것을 벗은 경우는 결코 없었다. 왕이 기상하고 제1시종과 함께 시종장이 왕에게 집무복을 대령하면, 그제야 입장할 집단인 '제1순위 입장객'이 호명된다. 왕이 신발을 신으면 의전실 요원에게 입장을 청한다. 그러면 다음 순위 입장객에게 문이 열린다. 왕이 집무복을 입을 때 의상실장(maitre de la garderobe)은 오른쪽 소매로 잠옷을 빼내고, 제1의상시종은 왼쪽으로 잠옷을 벗긴다. 주간용 상의는 침실시종장 또는 곁에 있던 왕의 아들 중 하나가 가져왔다. 제 1시종이 오른쪽 소매를 잡고, 제1의상시종이 왼쪽 소매를 잡는다. 왕은 이런 식으로 상의를 입었다. 왕이 팔걸이 의자에서 일어나면 의상실장은 왕이 신발을 신고 허리춤에 군도(軍刀) 차는 일을 도왔다. 그리고는 치마 입는 것을 도와주는 등등. 제 1구호물자 담당관이나 다른 성직자는 왕이 없는 사이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기도하는 반면, 왕은 옷을 다 입고 나서 잠시 기도한다. 그 사이에 이미 사람들이 궁정 안의 커다란 회랑부터, 즉 정원으로 통하여 왕의 침실 뒤로 성의 2층 중앙부를 꽉 메운 채 기다렸다. 이것이 바로 왕의 '기상의식'이었다. 

이 경우 가장 눈에 잘 띄는 것은 일단 그 조직의 고통스러울 정도의 정확성이다. 그러나 보았다시피 모든 개별 '과정'이 미리 규정된 근대적인 의미의 합리적 조직이 아니라, 해당하는 권력 분배의 상징으로서 모든 행동에서 보이는 특권적인 성격과 연관되었던 조직유형이었다. 현재 사회구조의 틀 안에서 이차적 기능의 성격이었던 것이 여기에서는 아마 대부분 전반적으로 일차적인 기능을 담당하였다. 

왕은 서열의 차이를 만들고, 표창과 사면 그리고 그에 준하여 불신임을 행사하기 위하여 자신의 가장 사적인 업무를 활용하였다. 이를 통하여 이미 궁정예법 Etiquette 은 이 사회와 이 지배형식을 구축할 때 매우 중요한 상징적 기능을 했다는 점이 암시된다. 국가사회의 결정적인 권력요인 및 왕과 관련되는 곳에서는 그러한 입장을 조장했고 필요하게 만들었던 사회적 억압이 적어도 개괄적 형태로 여지없이 드러난다. 왕이 잠옷을 벗고 집무복 상의를 입는다는 것은 당연히 필수적인 업무였다. 

그러나 보았다시피 그것은 사회적 맥락에서는 즉시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이를 통하여 왕은 다른 사람들보다 기상의식에 참여한 귀족들에게 우선적으로 할애하는 특권을 만들었다. 이 때 시종장에게 그것을 도울 수 있는 우선권이 있었으며, 왕자를 제외한 어느 누구에게도 이러한 우선권을 양보할 수 없도록 임무가 명확하게 지정되었다. 그것은 입장객의 참여에 대한 허락이나 인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의 모든 행위는 의식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할당된 등급화된 특권가치, 즉 상의 입히기, 제 1 2 3 순위 입장객의 배정 등을 어느 정도 자명한 일로 만든 특권가치를 통보하였다. 

궁정의 성이나 귀족저택의 외양 치장을 통해 암시되었던 것과 유사하게 모든 행동은 물신적(物神的) 특권 (Prestigefetisch) 이었다. 그것은 왕에 의하여 조절되고 극도로 불안정했던 많은 궁정인들 사이의 권력균형 내부에서 각 개인의 지위를 암시하는 지표(指標)로 기능하였다. 이 모든 행동에 배태된 직접적인 실용성은 다소 줄어들었거나 어쨌든 매우 보잘것없게 되었다. 이 행동들에 크고 진정한 그리고 묵직한 의미를 부여한 것은 전적으로 궁정사회 내부에서 참여자들에게 하달되었던 상대적인 권력지위, 서열 및 그것을 표출시킨 명예였다.

일단 궁정예법의 내부에서 우선권의 위계질서가 창출되면, 그 질서는 이미 그 권력장치에 결부되었고 당연히 그것을 통해 우선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자기 안에 배태된 권력기회를 염두에 두는 사람들 사이의 경쟁만으로도 유지되었으며, 마치 그것을 보호하려는 목적에서 해방된 경제에서와 똑같이 허공을 맴도는 공전 방식으로 확산되었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당시의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루이 14세 시대와 동일한 궁정예법 아래에서 살았다. 왕과 왕비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등급의 여러 귀족에 이르기까지 모든 참여자는 오래 전부터 강요된 에법을 지켜야 했다. 이 에법을 포기한다는 것은 우선권의 포기요 권력기회와 특권가치의 상실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점점 더 동력이 끊기지 않는 영구기관(永久機關 Perpetuum mobile) 처럼 그 안에 연루된 사람들의 지위와 권력의 기회를 위한 경쟁에 따라 서로간에는 물론이고 배제된 집단들에 대해서도 명백하게 등급화된 특권에 따라 계속 추진되었기 때문에, 모든 직접적인 실용성과는 전혀 무관하게 유지되고 작동되었다. 

물론 모든 참여자를 위한 의전행사는 어느 정도 큰 부담이었다. 18세기 말 장리스 Genlis 백작부인은 '사람들은 궁정에 가는 것이 의무였기 때문에 억지로 갔다'고 불평하였다. 하지만 결국 갈 수 밖에 없었다. 루이 15세의 딸들도 왕이 장화를 벗을 때 왕의 긴 의자로 가야 했다. 그래서 집에서 입고 온 옷 위에 황금자수가 놓인 커다란 스커트를 재빨리 입고는, 정해진 규격의 길다란 질질 끌리는 궁정용 예복을 호박단으로 짠 커다란 외투 밑으로 감추고, 왕에게 가는 데 늦지 않도록 궁정 시녀와 시종 및 촛불을 든 하인들과 함께 성의 통로를 가로질러 뛰어갔다. 그러고는 거친 사냥터의 정경처럼 15분쯤 뒤에는 그 길을 되돌아오곤 했다. 

사람들은 억지로 예법을 지켰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떨쳐버릴 수도 없었다. 왕이 요구했을 뿐만 아니라, 그 안에 연루된 사람들의 사회적 실존 자체가 궁정예법과 결부되었기 때문이다. 전승된 궁정예법의 규칙을 마리 앙투아네트가 뒤흔들기 시작하자, 거기에 반대한 것은 다름아닌 고위 귀족층 자신이었다. 그래서 자신들보다 신분이 낮은 여인들이 왕비 앞에 앉는 것을 보았을 때, 공작부인들이 깊은 시름에 빠졌을 법도 하다. 사실 그때까지 왕비의 현전에 앉는 것은 공작부인의 특권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의식에의 참여를 포기하는 것은 특권의 포기, 권력기회의 상실 및 다른 사람들에 대한 신분 강등을 의미했으며, 당사자가 자신의 가치와 자존심, 자기주장과 차별적인 정체성의 합리화의 다른 근원을 가지고 있었거나 다른 사람들에게서 찾았던 경우가 아니라면, 이를테면 자신감 상실 또는 어느 정도는 자포자기를 의미하였다.

  이처럼 궁정에서 정립된 권력장치의 내부에서는 한 사람의 지위 요구가 다른 사람의 지위 요구를 견제하였다. 또한 우선권의 일정한 균형잡힌 체제가 일단 안정되고 나면, 특권층의 어느 누구도 특권 자체를 건드리지 않고서는 자신의 모든 개인적 사회적 실존의 토대를 파괴할 수 없었다. 서로 연루된 특권층들은 어느 정도는 상호간에 상대방을 이 위치에 고착시켰으며, 다만 그 상황을 억지로 참을 뿐이었다. 각각 더 낮은 계층이나 덜 우선적인 특권층의 압력은 각각 해당하는 상위 특권층이 그들의 특권을 유지하도록 압력을 행사하였다. 즉 그들을 지위경쟁의 순환고리 속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 Norbert Elias, <궁정사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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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의 절대 권력자가 자신의 부하들에게 꾸준히 충성을 구매하면서 배신하지 않도록 효율적으로 통제하려면 무엇을 주어야 했을까? 돈? 토지? 처형 위협으로부터의 안전? 

절대왕조의 상징인 '태양왕' 루이 14세는 신발을 신고 속옷을 갈아입는 동작을 직접 하면서 프라이버시와 안전과 자유로움을 확보하고 봉신들에게는 토지나 경화를 나누어주는 대신에, 스스로를 물신화하고 신격화하면서 봉신들을 각자의 영지에서 떠나 베르사유 궁전으로 불러들여 직접 통제하는 거대한 에티켓의 기계를 구축해냈다.

  어떻게 보면 결국 절대 왕조의 권력자는, 자신의 신체와 사생활을 봉신들의 총 머릿수에 맞추어 잘게 쪼갠 후 이를 상징자본화하여 봉신들에게 인센티브처럼 하사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것이 이미 토지는 봉건적으로 분배가 완료되었으며 화폐신용경제체제는 충분히 정착되지 않았고 경화는 여전히 그 지속산출전망이 아쉬웠던, 프롱드의 난 직후의 프랑스의 제약조건 하에서 타협해낸 결과물이었든, 아니면 경제적인 풍족함은 어느 이상 충족되면 다른 양식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이 만들어낸 카르텔이었든 그러한 양상은 군주가 노예의 등을 밟고 다니던 고대 이집트로부터 회장님의 목소리가 직접 들리는 자리에서 식사를 하게 되는 기회를 1억의 수입에 맞먹는 만족으로 느끼는 현대에까지 끊임없이 효과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다.

  물론 이 '왕의 사생활'에 접근하는 특권들이 진짜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 환금성과 영속성이 보장되어야 했고, 권력자는 자신과 가까이 하는 것을 언젠가는 실제 혜택으로 돌려줄 수 있어야 했다. 루이 14세 이후 왕의 권위가 예전같지 않아지면서 베르사유 궁전을 떠나 자기 영지들로 들어가는 대귀족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치 증권의 가치는 대중들의 그것에 대한 믿음으로 유지되듯, 사람들의 기대가 사라지기 시작하자 그 가격은 내려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Posted by 김구공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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