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의 잔해가 나타나고 있다” 저명한 심리학자인 Daniel Kahneman는 작년 공개 편지에서 경고한다. 연구에 대한 불길한 예감은 이른바 ‘priming’ 이라고 하는 현상이다. Priming에 대한 연구는, 결정이 선택 끝의 명백히 무관한 동작이나 사건들로 인해 영향받는 현상을 말한다. 지난 10년간 심리학에서 가장 주목받는 위치를 차지했고 연구소를 나와 대중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Kahneman 박사를 비롯한 많은 동료들이 이런 발화 연구의 기초가 엉성한 점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다양한 연구자들이 널리 인용된 priming 실험을 재연하려는 시도를 해 왔다. 그러나 이들 시도들은 대부분 실패하였다. 4월 PLoS ONE 저널에는 9개의 독립된 실험이 시험을 보기 전에 교수를 떠올리는 것이 풋볼 훌리건들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보다 높은 점수를 받게 한다는 1998년의 유명한 이론이 재연되지 않는다고 보고하였다.

 

 동일한 실험은 누가 수행하건 항상 동일한 결과를 얻는다는 사상은 과학이 객관적 진실을 확보하는 시금석이다. 체계적 재연이 동일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원래 연구이나 재연 둘 중 하나가 결함이 있는 것이다. 어느 쪽이건 무언가는 엉망이 된다.

  


To err is all too common

 

 Priming 효과를 둘러싼 논쟁을 심리학 분야의 사소한 사건으로 무시해버리고픈 바램도 작은 것이 아니지만 이러한 재연불가성은 훨씬 넓게 퍼져 있다. 몇 년 전 미국의 제약 회사 Amgen 이 그간 암 연구의 랜드마크로 꼽았던 53개의 연구 결과를 최초 연구자와 협력하여 재연해보았다. 작년 그들이 Nature 지에 발표한 바에 따르면 그것들 중 단 6가지만이 원래 결과를 그대로 도출할 수 있었다. 한달 전 독일의 거대 제약회사 Bayer HealthCare 의 Florian Prinz와 그의 동료들은 67개의 중대한 연구 중 1/4만이 처음 보고된 대로의 결과를 내놓았다는 결과를 Nature Reviews Drug Discovery에 출간하였다.

 

 부유한 국가들의 모임인 OECD 정부는 2012년 590억 달러를 생의학 연구에 투자했는데 이는 2000년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정부 기반의 기초 과학 연구는 사기업의 신약 개발의 기초가 되는 것이 그 한 이유다. 만약 기업들이 학계의 연구에 의존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추론은 무너지게 된다. 국립건강원 America’s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NIH) 이 절망적으로 낸 통계에 따르면 연구자들은 적어도 3/4 가량의 출판된 생의학적 연구 결과를 재연하지 못하고 있다. 연구개발의 공공프로세스가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학계의 과학자들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선뜻 인정하곤 하지만, 그들도 이러한 문제들을 시간이 지나 다른 과학자들이 앞으로 밝혀줄 것이라는 사상을 고집한다. 수많은 의심스러운 결과들이, 나중에 교정되거나 철회되는 결과보다 훨씬 더 많이 출판되고 있다는 사실은 자정 능력이 지나치게 과시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다양한 요인들이 문제를 유발한다. 통계 실수는 흔하고, 저널이 출간되기 전에 논문을 검증하는 Peer 리뷰어는 생각보다 실수를 잘 잡아내지 못한다. 직업적 압력, 경쟁 및 현명해지기보다 신속하고 더 많이 출간하고자 하는 야망 등이다 많은 논문을 쏟아내야 하는 커리어 구조도 이러한 문제를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버지니아 대학교의 심리학자 Brian Nosek는 제자들의 끈질긴 오류들에 대해서 “이런 상황이 치루어야 하는 비용이 없다” 라고 말한다.

 

 첫번째는, 좋아하기 힘든, 통계다. Type I 오류는 참이 아닌 것을 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Type II 오류는 참인 것을 거짓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특정 가설을 검정할 때 과학자들은 통계적 체크를 거친다. 만약 이러한 false positive 결론이 나올 확률이 5% 미만이라면 가설이 ‘통계적으로 의미있는’ 사실임이 유력하다.

 

 

Understanding insignificance

 

 2005년 스탠포드대의 전염병학자 John Ioannidis는 통계적 로직을 통해 20회가 false positive 결과에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연구를 공개함으로써. 논란을 일으켰다. 대신 그는 ‘대부분의 출간된 연구 결과는 아마도 잘못되었을 것이다’ 라고 주장했다. 그가 말했던 대로 4년마다 열리는 국제 Peer Review 및 국제 생의학 학회에서 그 문제는 사라지지 않았다.

 

 Dr Ioannidis는 과학자들의 통계의 중요성에 대한 관례적인 접근이 세 가지 – 연구의 통계적 검증력 (2종 오류를 피할 가능성의 수단, 노이즈 속에서 진짜 신호를 놓치는 위음성), 가설이 검증되지 않을 가능성, 그리고 새로운 것을 발견해야 한다는 강박이 주는 편견 - 를 무시하곤 한다는 냉엄한 결론에 도달했다.

 

 통계적 검증력이 있는 연구는 데이터의 효과가 작을 때에도 무언가를 건져낼 수 있게 해 준다. 일반적으로 큰 연구 – 여러 차례 실험되고 많은 환자를 고용하는 등 – 에서는 더욱 강력해진다. 0.8 지수이란 10개의 참 가설이 검증되었을 때 단지 두 가지만 배제되곤 한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그 효과가 데이터에서 골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경험적으로 많은 연구에서 받아들여지는 현상인데 그러나 이 벤치마크는 비용이 많이 드는 큰 연구에서는 항상 맞지는 않다.  Ioannidis 박사가 4월에 동료들과 수행한 조사에 따르면 일반적인 신경과학 연구에서 통계적 검증력은 실패율 0.21인데, 암스테르담 대학교의 Marjan Bakker 연구진이 Perspectives on Psychological Science에 제출한 결과에서는 평균 지수가 0.35에 달했다.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 또한 결과가 얼마나 놀라울 수 있을지에 대한 지표이다. 대체로 과학자들은 놀라운 결과를 원하곤 하는데 때문에 그들은 일반적으로 있을 법하지 않을 가설들에 대해서 더 도전하는 경향이 있다. Ioannidis 박사는 그의 전공 분야인 역학(疫學)에서 연구자들은 가설 10개 중 1개 정도가 참이길 기대할 수 있다. 유전자와 단백질로부터 얻어진 광대한 데이터들을 연결하는 유전체학 같은 탐사 체계에서는 천 개의 가설 중 하나만 맞아도 다행이다.

 

 이로 인해, 1천 개의 가설이 시험되어 단 100 개가 참임이 밝혀진다면 0.8의 신뢰 지수에 따르면 진짜 참은 80개가 되고 20개는 위음성 (가짜 부정) 이 된다. 900개 가설이 거짓으로 나타났다면 이중 5%인 45개는 1종 오류에 의해 참이다. 통계 검증력 지수에 의해 참으로 나타난 125개의 결과를 얻는데, 1/3은 겉으로만 그럴싸한 것이다. 만약 통계적 검증력이 0.4로 떨어지게 된다면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연구에서 그러하곤 하지만) 45개의 위양성이 발생하고 결국 참 진실은 40개가 남게 된다. 참 결과의 절반 이상이 잘못된 것이다.

 





 부정적인 결과들은 훨씬 더 신뢰할 만 하다. 신뢰 지수가 0.8인 1000 개의 가설 시험에서 875가 부정적인 결과들이고 이중 20개만 오류이다. 정확도는 97%가 넘는다. 그러나 연구자들과 저널은 부정적인 결과에는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긍정을 강조하기 좋아하기 때문에 실수를 저지르기 쉽게 된다. 부정적 결과는 출간된 과학 문헌 중 학제에 따라 10~30%에 불과하다. 이 편향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데, 에딘버러 대학의 Daniele Fanelli가 1990년부터 2007년의 기간에 걸쳐 조사한 바에 따르면 4600개의 논문 결과 중 부정적인 결과의 비율은 30%에서 14%로 하락했다. 영국 왕립 화학회장 Lesley Yellowlees는 100개 이상의 논문을 출판했는데 이중 부정적 결과를 내고 있는 건 1개뿐이었다.

 

 통계학자들은 이 문제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 지 알고 있지만,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통계학자가 아니다. 컬럼비아의 통계학자 Victoria Stodden은 여러 해 동안 강연과 교육을 해 왔지만 과학자들의 통계에 대한 이해도는 데이터를 다루기 위한 복잡한 수학 기술의 발전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어떤 과학자들은 편하다는 이유로 잘못된 기법을 사용하고 있고 다른 과학자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 신기술에만 매달리곤 한다.

 


Not even wrong

 

 증거의 다른 의미에 끼워 맞추기는 수많은 과학 연구를 잘못되게 하는 길이다. Nature와 같은 저널의 동료 평가자들은 편집자의 논문의 결점만큼이나 참신성과 중요함에 대한 의견을 제공한다. 그러나 비영리 Public Library of Science에 의해 운영되는 Plos One과 같은 최근의 어떤 저널들은 비교적 덜 까다롭게 지적한다. 이러한 온라인의 ‘최소 임계’ 저널들은 최고를 골라내기보다 가급적 많은 연구들을 확보하려 한다. 이러한 저널들에서 동료 평가자들은 논문이 방법론적으로 합당한지만 보게 된다. Plos One 저널에 제출된 논문 중 절반이 거절되는데 이것은 상당히 관대한 수준이다.

 

 Stodden 박사가 지적한, 연구들이 갈수록 데이터를 감별하고 말하지 않은 수의 데이터를 감추는 함정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아원자 물리학의 경우 raw data 는 페타바이트 분량으로 쏟아져 나오곤 한다. 까다롭기로 악명높은 기준들을 사용하는데 허용되는 허위양성 비율은 350만개 중 하나이다. (5sigma) 그러나 통계적 유의도와 같은 성능 지수를 극대화가 ‘펜타쿼크’ 전설을 목격하기엔 충분하지 않다. 쿼크는 일반적으로 한 번에 2~3개만 보인다. 2000년데 중반에 여러 연구실에서 특이한 다섯 번째 쿼크 입자 합성의 증거들을 발견해내기 시작했다. 그 분석은 5-sigma 분석을 만족했다. 그러나 데이터는 적절히 ‘블라인드’ 되지 않았다. 실험자들에게 그들이 ‘보아야’ 하는 것이 늘어날 것이었다. 이것이 사람들이 임상실험적 데이터가 ‘연구 그룹’ 으로부터 왔는지 아니면 통제 그룹으로부터 왔는지 블라인드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적절하게 블라인드되자, 어디에서나 발견되었다던 펜타쿼크는 사라졌다.

 

 다른 ‘데이터가 큰’ 학제들도 비슷한 도전을 맞곤 한다. 수많은 다양한 방향으로 ‘튜닝’ 될 수 있는 모델들은 연구자들에게 존재하지 않는 패턴에 대한 더 많은 인지를 던져주곤 한다. 어떤 추정에 따르면, 기계 학습에 대해 출판된 3/4가 무의미하거나 속임수에 불과한데, MIT 의 Sandy Pentland 의 설명에 따르면 이것들은 ‘과도하게 피팅된’ 때문이다.

 

 비슷한 문제들이 명망 높은 저널인 Science 지에 2010년 실린 논문에서 철회되었다. 이 논문은 장수와 높은 연관관계를 갖고 있는 유전자 변종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다른 유전학자들은 그 결과가 100세 이상의 장수 노인들로 이루어진 통제군과 더 젊은 대조군이 다르게 다루어졌다는 사실을 즉각 발견해냈다. 해당 논문은 1년 뒤 취소되었고, 저자는 ‘기술적 실수’와 ‘부적당한 퀄리티 컨트롤 프로토콜’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논문 취소의 숫자도 지난 10년간 10배 증가하였는데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연간 출간되는 140만 개의 논문의 0.2%에 불과하다. 근본적으로 결함을 갖고 있는 논문들도 종종 살아남곤 한다. 때로는 어떤 논문들은 그 방면의 동료들로부터 오명을 키우곤 한다. 그러나 아웃사이더들에게 이것은 과학적 계율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Blame the ref

 

 출판된 연구 결과들에 교정되지 않은 수많은 결함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그들 대부분이 동료평가를 거치기 때문에, 사실이 아닐 것처럼 보인다. 객관적인 전문가들에 의한 철저한 검증 – 돈이 아니라 전문가적 신념에 의한 – 은 종종 과학적 문헌들을 신뢰하게 만들지만, 현실 속에서 그것들은 오류 교정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하버드의 생물학자 John Bohannon은 최근에 암세포의 진균류로부터 파생된 화학물질의 효과에 대한 익명의 논문을, 동료 평가 과정을 내세우고 있는 304종류의 저널에 제출하였다. 완전히 날조되고 시험 설계와 분석 및 결과의 해석에 있어 어리석은 실수로 가득 찬 보기 드문 논문이었다. 가공의 대학교에서 가상의 연구자가 만든 이 엉터리 논문은 157군데에서 출판되었다.

 

 Bohannon 박사의 이 장난(?)은 비교적 낮은 수준의 저널들을 대상으로 행해진 것이었다. 그러나 British Medical Journal의 편집장인 Fiona Godlee의 고전적인 1998년 연구는 실험 설계 과정에서 8개의 의도적인 실수와 분석 그리고 해석이 포함되었지만 이 저널의 200여 리뷰어 중 어느 누구도 모든 실수를 잡아내지는 못했다. 일부가 2개 이하를 지적했을 뿐이었다.

 

 BMJ의 또다른 실험은 리뷰어들이 비교적 명쾌하게 정의된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더 잘 검증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경험있는 경우에도 나을 것은 없었다.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대학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의 Charles McCulloch 와 Michael Callaham 은 앞선 레벨의 저널에서 14년의 경력을 가진 편집 경력자 1,500명 중 92%가 이 부분에서 점진적으로 낮은 능력을 보여줬다.

 

 찾아내야 할 문제점을 놓치는 것만이 아니라, 검토 자체를 하지 않는 리뷰어도 많다. 그들은 대체적으로 처음부터 데이터를 재분석하지도 않을뿐더러 저자의 분석이 적절히 구성되어 있기만 하면 만족하고 넘어가는 수준이다. 때문에 그들에게, 약간만 주의를 기울이면 되는 수준일지라도, 고의적인 실수를 잡아내길 기대하기는 어렵다.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능력 부족 다음으로 잘못된 결과를 만들어 내는 두 번째 요인은 사기이다. Fanelli 박사는 1987년부터 2008년까지 21개의 다른 서베이를 통해 (주로 생명과학 분야였지만 토목이나 화학 및 경제학도 포함되었다) 단지 2% 가량만이 그들의 데이터를 윤색 또는 조작한다는 답변을 받았지만, 28%의 응답자가 동료의 연구가 수상하다고 대답했다.

 

 동료 평가의 복합적인 실수는 과학의 자정 작용 – 재연 – 이 제대로 이루어지기만 한다면야 크게 문제되지 않을 수도 있다. 종종 재연은 다른 결과를 빚어내고 때로는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할 정도의 대박을 치기도 하는데, 메사추세츠 대학의 Thomas Herndon 의 경우가 그렇다. 그는 Carmen Reinhart 와 Kenneth Rogoff의 성장과 긴축에 대한 논문을 검토하다가 스프레드시트를 비롯한 다양한 오류가 있음을 밝혀내었다.

 

 

Harder to clone than you would wish

 

 이러한 헤드라인은 드문데, 재현하기도 어렵고 별로 생색도 안 나기 때문이다. 참신함에 목마른 저널들이 이런 데에 관심을 가질 리가 없으며, 최저 기준만으로도 많은 것을 바꿀 수 있지만, 여전히 이것을 지나치게 크게 보고 있다. 대부분의 학계 연구자들은 그들의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이것은 특히 주니어 연구자들에게 심한데 이들에게는 재연 연구가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도끼를 가는 열정과 활력을 지닌 사람 – 자신들의 연구가 재연될까봐 사람들을 경계하게 만드는 사태 – 를 감수할 사람들만이 재연 실험을 추구하곤 한다.

 

 재연을 어렵게 만드는 방법은 또 있다. 실험의 재구성은 종종 원본 방법과 데이터를 요구하게 마련이다. 오레곤 보건과학대학 Oregon Health and Science University의 Melissa Haendel이 PeerJ 에 발표한 논문의 경우 동료 연구자들의 확인 결과 84개 저널에 실린 238개의 의학 논문 중 절반 이상이 (시약 등의) 재구성을 위한 리소스를 파악할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Annals of Internal Medicine의 편집자 Christine Laine 은 시카고의 동료 리뷰 협회에 5년 전에는 60%의 연구자들의 동료와 raw 데이터를 나누겠다고 응답했지만 지금은 45%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저널들의 주장과는 다르게 Loannidis 박사가 50대 저널에서 무작위로 선정한 351개의 논문 중 데이터 공유 정책을 수립하고 있는 논문은 143개에 불과했다.

 

 출간되지 않은 연구에 대한 데이터도 있다. BMJ 의 조사에 따르면 NIH 가 지원한 임상 시험 중 종료 후 30개월 내로 학술 저널에 출간되는 것은 절반도 되지 않으며 1/3 가량은 NIH에 공개 규정이 있음에도 51개월이 지나도 미공개로 남는다.

 

 임상 시험은 특히 재연이 어렵다. 다른 사람들은 같은 문제에 대하여 관련 데이터를 필요로 한다 데이터의 부분집합을 통해 연구자들은 의도적으로든 우연으로든 답을 구해낼 수 있다. 영국의 의사이자 저자인 Ben Goldacre는 대형 제약회사로 하여금 그들의 임상시험자료를 공개 및 공유하고자 하는 캠페인을 이끌고 있으며, 올 1월 영국의 대형 제약회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이 시험데이터를 공개한 첫 기업이 되었다.

 

 소프트웨어도 재연 문제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데이터 분석이나 모델링을 위한 어떤 코드는 수년간의 작업의 결과물들이며 때로는 연구자들에게 미래의 발전을 위한 지적재산권이 연괸되었을 수도 있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데이터 공유에는 동의하지만, 소스코드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데이터 셰어링을 포함하는 저널들도 소프트웨어에 대해서는 비슷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Cardiff University의 사회학자 Harry Collins는 재연 연구자들에게 와 닿을 만한 좀 더 미묘한 포인트를 만들어냈다. 시험 방법을 묘사하는 데 사용된 논문의 일부가 기준에 도달하거나 미달할지라도 실험은 언제나 ‘암묵지 tacit knowledge’ 를 수반하게 마련이다. 만약 재연이 실패할 경우 재연자가 ‘이 좋은’ 프로토콜을 정확히 따르지 않았던 것으로 만들면 된다.

 

 극단적으로, 이는 Collins 박사가 지적했던 대로 ‘실험자의 후퇴’로 이어질 수 있다. 재연이 항상 원본과 같은 결과를 낼 때에만 재연이 제대로 된 것이라고 한다면, 재연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같은 절차’를 따르기만 하면 그 재연은 유효한 것이라는 합의가 암묵지와 시험의 판단 안에서 인식될 것을 요구한다. 과학자들은 상황이 가장 좋을 때에도 이러한 점에 논의하기를 꺼려왔으며 때로는 적대적으로 반응하기도 한다.

 

 일부 단체는 재연을 권장하려고 하고 있다. PLoS ONE 과 Science Exchange 는 연구자들과 실험실들 간 연결 서비스를 제공한다. Reproducibility Initiative라 불리는 이 프로그램은 생명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독립된 연구소들이 검증토록 하게 해 준다. 10월 16일 Laura and John Arnold 재단의 130만 달러 기부를 받아, 2010~2012년 간 가장 임팩트 있는 암 연구 결과 중 상위 50개를 검증해보는 프로젝트이다. 졸업생들이 운영하는 Blog Syn 이라는 웹사이트는 오로지 논문에 보고된 화학반응의 재구성만을 한다. 그들의 첫 재연은, 작동은 하였으나 효율은 원래 연구보다 매우 낮았다.

 

 

Making the paymasters care

  

 “출간된 결과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실패하고 있다”는 자각 하에, Nature 를 비롯한 자매지들은 18포인트의 체크리스트를 도입하였다. 그 목적은 모든 실험의 재연이나 혹은 바이어스를 교정하기 위해 중요한 기술적 통계적 정보를 확실하게 하기 위함이다. 논문의 방법 부분이 온라인에서 자세하게 추가되고, 예전에는 데이터의 일부 클래스들만 밝혀졌다면 지금은 모두 공개되어야 한다.

 

 변화는 심리학계에서 가장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3월에 Nosek 박사는 Arnold Foundation으로부터 530만 달러의 후원을 받아 독립 연구소인 Center for Open Science를 세웠는데, 이 연구소의 주 목표는 신뢰할 만한 재연 시험을 수행하여 기존 연구들을 검증하는 것이다. 미국 심리과학학회의 디렉터인 Alan Kraut 덕분에 협회의 대표 저널인 Perspectives on Psychological Science 는 재연 검증 전문 섹션을 만들게 되었다. 이는 Nosek 박사를 선봉으로 하여 2008년 첫 3개월 간 3개의 선도적인 심리학 저널에 실린 100개의 논문들을 교차검증하는 것으로 첫 테이프를 끊었다.

 

 과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 분야에서 발전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European Research Council의 의장인 Helga Nowotny는 재연 연구가 십중팔구 곧 중단될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협회의 주 관심이 개척적인 연구에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국립과학재단 천문과학 분과장인 James Ulvestad는 이 독립 재단에 대해  ‘최고의 위치에 있거나 그들의 중요도 리스트에 올라 있는 선행 연구들을 복제하는 방법을 찾는 연구를 하지 않으려는” 결정에 대해 승인을 얻은 점에 대해 가치를 부여한다고 말했다. 영국의 공공 보조 연구를 감독하는 리서치 자문인 Douglas Kell은 현재의 프로시저가 적어도 긍정적인 결과에 대한 편견의 문제를 교정한다고 주장했다. “누군가 실험을 하고 무언가를 발견하지 못하면, 그럼에도 그가 출판을 한 점에 대해 재단은 높이 평가할 것이다.”

 

 Science 지의 편집자 Bruce Albert 는 의회 증언에서 3월 5일 무엇이 과학 기업과 사업의 신뢰성을 강화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개략적으로 서술하였다. 저널들은 기준을 강화해야 하고 Nature 지에 의해 도입된 체크리스트가 연구의 일반 보편 오류를 걸러내기 위해 보다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더 강화되어야 한다. 신예 과학자들은 통계학을 비롯한 테크니컬한 스킬을 더 배워야 하고, 그들과 동료들에 대한 회의주의를 익혀야 한다. 연구자들은 양이 아니라 질로 판단되어야 한다. 펀딩 에이전시는 재연과, 실패한 시험의 보고와 기록에 대해 더 인센티브를 주어야 한다. 이러한 실패들에 대한 정보도 출간에 첨부되어야 한다.

 

 과학자들 자신이, Albert 박사가 주장하듯이, “공연히 알려지지 않은 누군가의 실수가 과학적 명성에 치명타를 주는 것보다는 보호하는 가치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쉽지는 않은 일이지만, 이 기조를 유지해야만, 과학은 좀 더 신뢰할 만해질 것이고, 또한 그래야만 한다. 


Posted by 김구공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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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두세 community charge / poll tax 는 대처 시대의 가장 큰 정치적 실수로 역사에 기록되었고, 집권 말기 대처가 정치적 판단력을 상실했다는 증거로 남았다. 인두세는 주택과 재산을 보유한 사람에게만 부과하던 지방세를 없애고 모든 주민에게 똑같이 부과한 세금이었다. 인두세는 사실 대처가 처음 고안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자체의 과도한 재정지출을 막으려는 목적으로 보수당에서 오랫동안 논의되던 것이었다. , 더 많은 사람에게 세금을 내게 함으로써 지자체가 재정지출에 더 많은 책임금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처 정부 초기에는 감히 인두세 도입을 고려할 수 없었다. 부자들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고, 덜 잘사는 사람들에게서 더 무거운 부담을 주는 것은 선거 전략으로 용인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지자체들의 지출이 크게 늘고 재정을 개선해 보려는 여러 가지 노력이 실패로 돌아가자, 보수당에서도 용기를 내게 되었다. 지자체 예산의 70%이상을 부담하고 있던 중앙정부가 강구한 마지막 해결책이었던 것이다.

 

 인두세는 대처의 신념과도 부합했다. 그것은 지자체 사회주의에 대한 대안이었으며, ‘검약을 보상하고 낭비를 벌주는것이었다. 대처는 지방세가 원칙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 전체 가구 가운데 1/3만 지방세를 내는데도, 세금을 내지 않은 사람들이 그 돈을 사용하는 데 목소리를 내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대처가 제시한 대안은 극빈자 외 모든 사람이 세금을 내는 제도였다. “우리 아버지는 항상 모든 사람이 아무리 적더라도 조금씩이라도 함께 부담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각 소위원회는 일괄적으로 똑같은 액수를 내도록 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재앙이라는 견해를 제출했고, 재무장관 로슨도 새로운 세제에 반대했다. 그러나 대처를 막을 수 없었다. 대처는 인두세가 그렇게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자체 예산의 25%만이 지방세이고 나머지는 어차피 국세 부담이기에 상위원 납세자들에게 여전히 많은 부담이 돌아가는 형국이었던 것이다.

 

 인두세는 오랜 논의와 수정을 거쳐 1988 7월 여왕의 재가를 받아 법으로 확정되었다. 정부는 1인당 납세액이 연간 50~100파운드를 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막상 실행해 보니 1인당 평균 363파운드의 세금이 부과되었다. 인두세는 1989 4월 스코틀랜드에 먼저 도입되었고 1년 후에 잉글랜드와 웨일스에 도입되었는데, 생각보다 심한 저항이 나타났다. 인두세를 도입하는지 차라리 사직하겠다며 몇몇 지역의 보수당 시의원들이 사직했으며, 지방 도시에서 소요가 발생했고, 납세 거부가 50%에 이르는 곳도 있었다. 평등한 세금의 최대 장점은 세금을 낮추는 것인데 인두세는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국민들에게 인두세는 강제로 걷어 가는 BBC 시청료나 마찬가지였다. 사실 대처 자신도 BBC 시청료 납부를 싫어했다. 게다가 인두세는 세금이란 징수하기에 간단하고 비용도 적게 들어야 한다는 대처의 평소 원칙에도 어긋났다.

 

국민의 반응은 런던에서 가장 격렬했다. 트라팔가르 광장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 차를 뒤엎고 불을 지르는 폭력 사태가 확산되었다. 물론, 이 폭력사태는 작정한무정부주의자들과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소행이었지만, 중요한 점은 이 소동에 동조한 사람들이 대부분 대처가 지지자로 믿었던 중간계급이라는 사실이었다.

 

계산에 의하면 인두세 부과로 이득을 본 사람은 800만 명, 손해를 본 사람은 2,700만 명이었다. 가장 큰 손해를 보는 사람들은 하층 및 중층 중간계급으로 이들은 사실 대처의 가장 든든한 지지자들이었다. 이코노미스트 Economist 는 대처의 딜레마를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얻은 사람은 별로 고마워하지 않고 잃은 사람은 화를 냈다. 특히 젊은이들이 잃은 사람들인데 이들이야말로 표류하는 유권자들이다

이제 보수당 의원들은 자기네 의석을 염려하게 되었다. 인두세 사태는 대처의 정치적 성격의 가장 잘못된 면모, 즉 완고한 권위주의, 그리고 정치적 판단력의 결핍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 같았다. 결국, 인두세는 대처가 물러난 후 메이저 총리 때 폐지되고 가구당 재산세로 대체되었다.


 - 박지향 <대처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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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홉스의 법률관은 명령주의적 이론이다. 주권자를 국가 내의 모든 문제들에 대한 최종 결정권자로 파악하고, 법을 낳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주권자의 권위라고 말한다. 법의 핵심은 명령으로서 주권자가 권위를 행사한 산물이라고 보기는 하지만, 사실적 강제력을 독점한 권력자의 명령으로만 단순하게 축소되지 않는다. 작위/ 부작위만 아니라 어느 것을 해도 되고 (허용) 무엇이 정당/ 부당한지 무엇이 좋고 나쁜지를 정하는 것도 주권자의 명령에 포함시킨다는 점에서 조야한 명령주의와는 다르다고 평가된다.

 

    조야한 명령주의19세기 영국의 법학자 J. Austin의 법이론이다. 법은 명령의 특수한 유형’ a species of command’이다. 명령은 힘을 가진 자가 의욕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 의사에 따르지 않는 경우 해악을 가할 목적을 가진 강제력으로 뒷받침되는, 힘 가진 자의 의지의 표현이다. 이처럼 조야한 명령주의는 법을 해악을 가하겠다고 강력하게 위협함으로써 뒷받침되는 명령으로만 보기 때문에 깡패의 법이론 gunman theory of law’ 이라고 희화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법률관과 주권론에 따르면, 복종의 습관을 가진 신민과 누구에게도 복종하지 않는 주권자 사이에는 단순한 수직관계만이 존재한다. 등뼈가 인간 신체에 중요한 부분이듯이 이 신민과 주권자 사이의 수직적 구조는 법을 가지고 있는 사회의 본질적 부분을 이룬다. 이러한 관점에서 주권자란 위협에 의해서 지탱되는 명령을 발할 지위에 있는 자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조직폭력배 집단의 일반명령과 법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법의 본질을 [바로 앞에서 풀이된 속성을 가지는] 주권자에 의해서 제정되고 처벌의 위협에 의해서 유지되는 규칙으로만 보는 [조야한]명령주의적 이론에 따르면, 법과 조직폭력집단의 명령 사이에는 어떤 구별도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 이론에서 의무는 처벌의 위협에 대한 복속에, 법의 권위는 전적으로 불복종하는 자에게 해악을 가할 능력과 의지에만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은 바로 그 규범적 성격으로 인해서, 즉 단순한 처벌의 위협을 넘어서서 수범자에게 요구되는 행위의 기준 설정한다는 점에서 폭력집단의 일반명령과는 다르다. 법규범은 물리력을 가진 누군가가 그 규범을 원하기 때문에 구속력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 법규범을 발할 권위를 가진 자가 제정하였기 때문에 법규범으로서의 구속력을 가지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법규범을 제정할 권위는, 법 제정자가 규율하려고 하는 수범자들에게 이미 구속력을 행사하고 있는 또 다른 법규범으로부터 나온다. 이러한 특징이 타당한 법과 조직폭력집단의 일반명령과 결정적으로 차이가 나는 점이다.

 

 홉스는 법을 최고통치자 (주권자) 가 자신에게 복종하는 사람들에게 명령하고 공포한 규칙으로 파악하면서도, 법을 한편으로는 신민에게 직접 작위 부작위 허용을 명하는 차원의 규칙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재판관과 법공무원이 어떻게 집행할 것인지를 명하는 차원의 규칙으로도 이해한다. 법은 단지 행위 명령 / 금지의 규칙이 아니라 법공무원(법원/행정청 등) 에게 권능을 부여하는 규칙이기도 한 것이다.

 

 홉스에게서 주권은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하나는 통치권 governmental power 의 요소이며, 다른 하나는 통치권위 governmental authority 의 요소이다. 전자는 사회구성원 간의 평화로운 협동관계를 실현하고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사회 자체를 수호하기 위하여 행사되는 사실상의 권력이다.

 반면 통치의 권위 요소는 통치할 권리 the right to rule’을 핵심으로 한다. 주권을 이루는 통치권의 골자는 주권자가 통치권력을 행사하여 구성원에게 강제를 부과하는 것이 일단 (prima facte: 그에 반대되는 강력한 사유가 없다면) 도덕적으로 정당하고 피치자들은 그에 복종할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라는 데에 있다.

 

 홉스의 주권자가 통치할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은 그럼으로써 안정과 평화를 확보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주권이란 통치할 권리를 의미하며, 법은 신민이 마땅히 복종할 의무가 있는, 주권자의 통치권 the right to rule and to be obeyed 의 표현이라고 보면 정확할 것이다.






Th. Hobbes - Leviathan.
HLA Hart - The Concept of Law
R. Ladenson - In defense of a Hobbesian Conception of Law.
김도균, 최병조, 최종고 - 법치주의의 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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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아이디어를 근거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신뢰하라. 그러나 검증하라” : 결과는 실험을 통해 항상 도전받아야 한다. 그 간단하나 강력한 구조가 수많은 지식의 풀을 만들어냈다. 17세기로부터 현대 과학은 상상을 초월한 수준을 세상을 발전시켜왔다.

 

 그러나 성공은 자만을 부르게 마련이다. 현대 과학자들은 이제 지나치게 신뢰하고 덜 검증하기 시작했다. 과학 일반과 그리고 인간성 측면에서.

 

 학계의 마취를 채운 지나치게 많은 발견들이 조잡한 시험과 빈약한 분석만을 거치고 있다. 바이오 기술 벤처 캐피탈리스트들 간의 연구 결과들은 절반이 너무나도 주먹구구식이어서 재연이 불가능하다. 이것도 지나치게 낙관적인 평가인데, 지난해 한 바이오테크 회사의 Amgen 이라는 연구원은 암 연구에서 랜드마크 급으로 평가된 53개의 결과 중 단지 6개만이 재연 가능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 이전에 제약회사 Bayer 그룹은 67 개의 중요한 페이퍼들이 서로 유사했으며 그들 중 1/4만을 단지 반복하도록 애썼을 뿐이었다. 선도적인 컴퓨터 과학자들은 그들의 세부분야 페이퍼 3/4가 별 쓸모 없는 것들이라는 점에 대해 안절부절하고 있다. 2000년에서 2010년 사이에 대략 8만 명의 환자들이, 실수나 부적절함으로 인하여 이후에 취소된 연구 결과에 따른 임상 시험을 겪었다.


 


What a load of rubbish

 

 결함 있는 연구 결과가 사람의 생명을 위협할 때조차도 그것은 돈과 세계적인 두뇌를 낭비하고 있다. 진전을 좌절시킨 기회비용은 산정하기조차도 어렵지만, 그것들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한 이유는 과학의 경쟁이다. 1950년대, 2차대전 종전 후 현대 학계 과학이 모습을 갖추기 시작할 때에도 과학은 어느 정도는 여유와 취미의 영역에 있었다. 과학자의 전체 집단은 수십만에 불과했다. 과학자 집단이 6~7백만까지 부풀어 오르면서 “publish or perish” 원칙에 따른 생존 경쟁의 풍토가 학계를 지배하게 되면서 과학자들은 자체 감시와 품질 통제에 대한 신념을 상실해가고 있다. 2012년 미국의 Full Professor (판사보다 높은 수준인) 연평균 13 5천 달러를 버는데 매년 6명의 신규 phD와 포스트를 두고 경쟁해야 한다. 오늘날 검증과 재연은 연구자의 커리어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검증이 덜 된 의문스러운 연구 결과들이 진실을 오도하곤 한다.

 

 커리어주의도 결과를 과장하거나 체리피킹하게 되는 원인이다. 선도적인 저널들은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높은 리젝율을 유지하곤 하는데, 충격적인 혹은 놀라운 결과일수록 페이지에 실릴 가능성이 높다. 연구자 세 명 중 한 명 꼴로 데이터를 직관에 의해윤색하거나 걸러내곤 한다는 사실은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닌 수준이다. 더 많은 연구자들이 문제에 대처할수록 적어도 한 연구자가 진정한 발견의 달콤한 신호와 통계적 노이즈의 얼룩 사이의 사냥감에 빠질 가능성은 줄어들게 마련이다.

 

 반대로 가설 증명의 실패는 거의 출간되지 않는다. “부정적인 결과는 는 출간된 저널의 14%에 불과한데, 1990년의 30% 대비 낮아진 수준이다. 과학에서는 무엇이 참인지를 아는 것만큼이나 무엇이 참이 아닌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실패의 보고 실패는 다른 과학자들이 이미 가 보고 이 길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곳을 중복 탐사하는 낭비를 초래하게 된다.

 

 Peer review (동료 평가) 또한 신성시되는 것만큼의 몫을 못 해주고 있다. 한 유명 의학 저널이, 이미 다른 연구자가 선행 연구한 연구 결과를 의도적으로 페이퍼에 실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리뷰어들은 그것을 잡아내지 못했다.

 


If it’s broke, fix it

 

 이 모든 것들은 세상의 진리를 알아내고자 하는 도전의 기초를 부실하게 만든다. 이에 대해서 우선적으로 모든 학문 체계를 강화된 기준의 예를 따르도록 하여야 한다. 특히 엄청나게 많은 데이터 속에서 체로 걸러내고 패턴을 찾아내는, 성장하는 분야들에 있어서는 통계가 익숙하게 될 것이다. 유전학자들은 게놈 시퀀싱으로부터 뿜어져 나온 초기의 그럴 듯한 결과들의 급류를 진정으로 의미있는 흐름으로 돌려내는 데 성공했다.

 

 이상적으로는, 앞으로 연구 프로토콜은 가상의 노트에 등록되고 관찰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실험의 설계 흐름을 손대려는 욕구를 억제하여 좀 더 근본적인 방향으로 유도할 것이다. (이것은 이미 신약의 임상 시험 절차에서 추구하는 바이기도 하다) 가능하면 시험 데이터 또한 다른 연구자에게 공개되고 검증되어야 한다.

 

 가장 앞선 저널들은 이미 단조로움을 거부하는 풍조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America’s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를 비롯한 일부 정부 보조 기관에서는 매년 300억 달러를 투자하면서 재연 시험에도 가중치를 주고 있다. 그리고 젊은 신진 연구자들은 특히 통계를 잘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이 흐름으로는 아직 부족하고, 저널들은 재미없는연구들에 더 많은 공간과 예산을 할애해야 한다. Peer review 도 엄격해지거나, 최소한 출간 이후의 평가가 보론으로 첨부되기 용이하도록 분리되어야 한다. 그 시스템은 최근의 물리학과 수학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정착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정책담당자는 기관이 공공의 자금을 규칙을 준수하는 데 쓰이도록 해야 한다.

 

 과학은 여전히 수많은, 때로는 놀라울 정도의 지지와 존경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 특별한 권위는, 과학이 대부분의 경우 옳거나, 틀리더라도 그것을 교정할 수 있는 능력과 기반에서 얻어진 것이다. 과학자들이 대대손손 탐구해야 할 우주의 진리가 바닥날 것도 아니다. 조잡한 연구에 의해 잘못 놓여진 길은 이해할 수 없는 용서 못할 장벽인 것이다.



http://www.economist.com/news/leaders/21588069-scientific-research-has-changed-world-now-it-needs-change-itself-how-science-goes-wr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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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와 같은 건축의 아성을 구축한 밀라노에서 정부의 중앙 권력은 여러 계층, 산업, 신문, 기독교 민주당의 봉건 영주들이 적대 관계의 요새를 파괴하려고 할 때 비로소 개입했다. 중앙 권력은 이러한 상황에 이르러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감지하거나 상황이 수년 전부터 불법이었다고 믿는 듯한 태도를 견지하고 관련 책임자를 문책했다. 대봉건 영주들의 거센 압력에 저항할 수 있는 한, 가련한 교회 기사단들과 타락한 수도승들은 자체의 내규와 금식을 지키고 방탕함을 금지하여 자신들의 보잘것없는 영지나 수도원을 자치적으로 운영한다.

 

 학생들은 강의실이 많은 수강자들로 북적이고 강의가 지나치게 권위적이라고 불평했다. 교수들은 제자들과 더불어 세미나를 열려고 했으나 그 순간 경찰이 개입했다. 경찰과의 충돌에서 다섯 명의 학생이 사망했다. (1200) 그 결과 개혁이 추진되어 교수와 학생들은 자치권을 획득했다. 추기경은 여섯 명의 교수가 추천한 후보에게 강의를 제한할 수 없었다 (1213) 노트르담 사원의 추기경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들을 금서로 규정했다.

 

 학생들은 책값이 지나치게 비싸다고 항의하면서 서점을 급습하여 집기들을 닥치는 대로 훼손했다. 이에 경찰은 궁사들을 동원하여 행인들에게 부상을 입혔다. 그러나 학생들은 인접한 거리에서 돌을 던지며 공권력을 공격했다. 경찰은 반격을 했고 이 과정에서 학생 세 명이 사망했다. 이에 대학은 총파업을 선언하고 모든 건물들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했으며 정부에 대표단을 파견했다. 학생과 교수들은 대학가 주변 지역으로 철수했다.

 

 오랜 협상 끝에 왕은 학생들을 위한 숙소를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고 대학 기숙사와 학생 식당을 설치하는 것을 내용으로 법령을 선포했다. (1229) 탁발 수도회가 열두 개의 강좌들 중에 세 개를 차지했다. 이번에는 세속 신분의 선생들이 들고일어나 탁발 수도회의 마피아적인 행위를 규탄했다. (1252) 1년이 지나 학생과 경찰 사이에 격렬한 폭력 사태가 발생했다. 세속 신분의 선생들은 자신들의 연대감을 표시하는 의미에서 학생들의 행동에 동참했다. 반면 교단 소속의 교수들은 자신들의 강좌를 계속했다. (1253) 대학은 교황과 분쟁 관계에 돌입했다.

 

 결국 교황 알렉산데르 4세는 학부 위원회의 과반수가 찬성하는 경우, 파업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인정했다. 몇몇 선생들이 이에 반대하다가 파면을 당했고 기욤 드 생타무르, 외드 드 두아이, 크레티앙 드 보베, 그리고 니콜라 드 바르쉬로브는 재판에 회부되었다. 파면된 교수들은 [최근 사태의 위험]이라는 백서를 출판했으나 이 책은 1256년에 선포된 인장 교서에 의해 <유해하고 범죄적이며 극악무도한> 것으로 비난받았다.

 

 

-       질레트 지글러 Giliette Ziegler, [Le Défi De La Sorbon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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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푸드 판매대 등에서 일하는 절반 이상의 (52%) 가정이 하나 이상의 공공 보조 프로그램에 가입되어 있다. 이는 전체 노동자의 경우 (25%) 대비 두 배 이상인 것.




이들 저임금 노동자에 대한 공공 보조 비용은 연간 70억 달러에 달한다.


이중 39억 달러가 메디케이드와 아이들의 건강보험에 쓰인다.


저임금 때문에 패스트푸드 노동자 가족은 연평균 10.4억 달러 어치의 푸드스탬프와 19.1억 달러 어치의 소득세 크레딧 환급을 받는다.


패스트푸드 직종 노동자는 빈곤할 가능성이 높다. 1/5 가 빈곤선 이하의 소득 수준이며 43%의 소득 수준이 연방 빈곤선의 두 배 이하이다.




풀타임 근무를 하더라도 저임금을 보상할 수준이 되지 못한다. 절반 이상이 주 40시간 이상 근무를 하면서도 공공 보조 프로그램에 가입되어 있다.


요식업게는 대체적으로 임금 수준이 매우 낮기 때문에 공공 보조에 의지하는 면이 크다. 




이 분석에서 제시하는 궁극적인 바는, 특히 패스트푸드 업계를 중심으로, 임금을 올리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공공 보조 프로그램으로 인한 재정 적자를 해소하고, 궁극적으로 빈곤을 해소하는 강력한 탈출구가 된다는 것이다.


http://laborcenter.berkeley.edu/publiccosts/fastfoodpovertywages.shtml


 - UC Berkeley 노동연구소 Sylvia Allegretto, Marc Doussard, Dave Graham-Squire, Ken Jacobs,

Dan Thompson, Jeremy Thompson 의 연구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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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facebook.com/bonne.jason.5/posts/604357056295819



"결혼하고 자식이 없는채로 살면 부부사이에 대화의 컨텐츠가 고갈되기 쉽다. (그는 컨텐츠 업계인이 아니므로 정확히 이런 표현은 아니었으나 대체로 이런 얘기였다) 둘 사이의 대화의 컨텐츠를 서로가 적극적으로 만들어내는 부부라면야 물론 자식이 없는 부부생활도 멋지게 이어갈 수 있겠지만, 그리고 그 난이도가 대단히 높은건 아니므로 어떻게든 해결이 되지만, 보통은 그런데까지 신경쓰면서 부부생활을 하지는 않기 때문에 그게 장기간 누적되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여기에 활력소가 되어주는 것이 육아일 수가 있다. 자식을 함께 기르면 자식 얘기를 나누면서 대화를 하게되고, 자식은 계속해서 변화하며 성장하므로 대화거리가 끊길 일은 없다. 따라서 부부의 관계가 자식을 중심으로 윤택해지는 것이다. "



예전에 '육아의 기회 비용' 관련한 작은 논쟁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아이 한 명을 키우는 값이 총 2억이라 하면 그 돈을 자신에게 투자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물론 두 안의 효용 자체가 객관적으로 정량화되기 어렵기 때문에 명쾌하게 결론지어질 논제는 아니겠으나  내가 기억하는 인상적인, 그리고 동의할 수 밖에 없었던  코멘트는, '아이는 조금만 투자해도 쑥쑥 자라며 많은 것을 배우지만 (이미 성장이 끝난) 어른들은 그 만큼의 효과가 나타나질 않는다' 라는 것. 이른바 투자수익 한계효용체감의 생애 사이클에서 구현되는 양상.

실제로 부모가 되는 나이대의 어른은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지성적으로든 대체적으로 더 이상 성장하거나 변화하지 않는다. '새로운 컨텐츠'도 더 이상 거의 없다. 이것이 '출산과 육아' 라는, 개채 생태학 측면에서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또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 많은 사람들이 육아를 기회 비용으로 저울질할 여유조차 없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고, 비혼과 무출산은 선택이 아닌 반강제가 되어가는 '부활한 저성장의 시대'의 현실 앞에서 개개인의 끊임없는 '컨텐츠 보강' 이야말로 독거시대의 새로운 중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테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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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사람들에게 있어서 과학은 여전히 근사한 납땜질, 근사한 기구 생산 - <기술학> - 에 불과할 뿐이다. 그것은 매우 유용하긴 하지만, 우리를 거의 무식한 자들 (셰익스피어의 표현을 빌면, <기계와 같은 인간들>) 의 지배하에 놓이게 할 우려가 있는, 참된 문화에 대한 일종의 위험물이다. 과학은 결코 문학이나 예술 또는 철학과 동등하게 말해져서는 안 된다. 그것의 외견상의 발견들은 단순한 기계적 발명들이며, 그 이론들은 도구들 간단한 장치들이나 거대한 장치들 이다. 과학은 우리의 일상적 현상 세계의 배후에 있는 새로운 세계를 드러낼 수 없고, 드러내지도 않는다. 물리적 세계는 단지 외양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깊이를 갖지 않는다. 세계는 바로 보이는 그대로의 세계이다. 오직 과학적 이론들만이 그들이 보여주는 그대로가 아니다. 과학적 이론은 세계를 설명하지도 않고 기술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단지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 나는 많은 것들이 우리 앞에 감춰져 있으며, 그 중 많은 것들이 발견될 수 있다는 본질주의에 기꺼이 동의한다. 그리고 나는 <세계의 본질>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비판할 의도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단지 내가 이의를 제기하는 본질주의의 교설은, 과학은 오로지 궁극적인 설명을 목표로 한다는 교설이다. 다시 말해 더 이상 설명될 수 없으며, 더 이상의 어떠한 설명도 필요로 하지 않는 설명을 목표로 한다는 교설이다.


 따라서 본질주의에 대한 나의 비판의 목적은 본질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입증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갈릴레오의 과학 철학에서 (본질을 믿고 싶어했으나 자신의 작업이 그 믿음을 파괴해 버린 맥스웰에 이르기까지) 본질 관념에 의해 수행된 역할의 반계몽적 성격을 밝히는 데에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나의 비판은, 본질이 있든 없든, 본질에 대한 믿음은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방해만 되기 쉬우며, 따라서 과학자들이 본질의 존재를 가정해야 할 어떠한 이유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뉴턴 이론에 대한 본질주의적 해석은 로저 코티스 Roger Cotes 에서 시작한다. 그에 따르면 뉴턴은 물질의 모든 입자는 중력, 즉 다은 물질을 끌어당기는 고유한 힘을 부여받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각 입자는 관성 즉 자신의 운동 상태를 변화시키는 것에 저항하는 고유한 힘을 부여받았다. 중력과 관성은 둘 다 물질의 각 입자에 고유하게 내재해 있기 때문에 그 둘은 물체 내의 물질의 양에 엄격히 비례해야만 하며, 따라서 중력과 관성도 서로 엄격히 비례해야만 한다. 따라서 여기서 관성 질량과 중력 질량 비례의 법칙이 도출된다. 중력은 각각의 입자로부터 방사되기 때문에 인력은 제곱으로 비례한다는 법칙을 얻는다. 다시 말해 뉴턴의 운동 법칙들은 물질의 고유 속성에 기인하는 사태를 수학적 언어로 단순하게 기술한다. 그것은 물질의 본질적 성질을 기술한다. 그러나 코티스에 따르면 뉴턴의 이론은 적어도 물리학 내에서는 - 더 이상의 설명은 불가능하며 그것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유일하게 가능한 그 이상의 설명은 신이 이러한 본질적 속성들을 물질에 부여했다는 것이었다)


 뉴턴의 이론에 대한 이러한 본질주의적 견해는 19세기 말까지 널리 받아들여진 견해였다. 그러한 견해가 반계몽적이었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것은 가령 다음과 같은 유용한 물음들이 제기되는 것을 막았다. <중력의 원인은 무엇인가?> 혹은 (독립적으로 시험 가능한) 보다 일반적 이론으로부터 뉴턴의 이론 비슷한 것을 연역함으로써 중력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런데 뉴턴 자신은 중력을 물질의 본질적 속성으로 간주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데카르트로부터 사물의 본질은, 예컨대 중력처럼 한 물체와 다른 물체들 사이의 관계 (공간 중에서의 상호작용)를 결정하는 관계적 속성이 아니라 연장이나 운동 상태에서의 변화에 저항하는 힘과 같은 사물의 참된 속성이나 절대적 속성 (다른 사물들의 존재에 의존하지 않는 속성) 이어야만 한다는 견해를 이어받은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그는 이 이론의 불완전성과 중력을 설명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중력은 물질에 대해 본유적이고 고유하며 본질적이어서 한 물체가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다른 물체에 작용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내가 보기에 매우 불합리하다. 따라서 철학적 문제에 대하 충분한 사유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그런 불합리함에 빠질 수는 없으리라 믿는다> - 1693 2 25일 리처드 벤틀리에게 보낸 편지 중.


 뉴턴이 여기에서 자신의 추종자들 대부분을 미리 비난했다는 것은 흥미롭다. 이런 사실 때문에 데카르트 철학의 배경을 갖고 있던 뉴턴에게는 설명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보였던 그러한 속성들이, 학교에서 그것들을 배운 그의 추종자들에게는 본질적으로 (그리고 심지어 자명한 것으로) 보였을 것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뉴턴 자신은 본질주의자였다. 그는 직접 접촉에 의한 기계적 밀치기 mechanical push 의 가정 오직 이 밀치기만이 모든 물체의 본질적 속성인 연장에 의해 설명될 수 있었기 때문에, 데카르트가 허용할 수 있었던 유일한 종류의 인과 작용 에서 인력의 법칙을 연역해 내고자 시도함으로써, 중력에 관해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궁극적인 설명을 찾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만일 그가 성공했다면 그는 자신의 문제가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고, 즉 중력에 대한 궁극적인 설명을 찾아냈다고 생각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예들은 본질에 대한 믿음이 (참이든 거짓이든) 사고하는 데에 새롭고 유익한 문제를 제기하는 데에 장애가 되기 쉽다는 사실을 명백히 해준다. 더욱이 그것은 과학의 일부일 수 없다. 왜냐면, 설혹 우리가 운 좋게도 본질을 기술하는 이론을 우연히 찾아냈다 할지라도, 그것을 확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계몽으로 이끌기 쉬운 신조는 분명 과학자들이 받아들일 필요가 있는 과학 외적인 믿음들 (가령, 비판적 토론의 힘에 대한 신념과 같은 것) 가운데 하나일 수는 없다.

 

 -  Contemporary British philosophy : personal statements / edited by H.D. Lewis. Vol.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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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y Layoff

카테고리 없음 2013. 10. 15. 19:40



Sati (혹은 suttee, सती) 는 힌두교의 Sahamarana (따라 죽기) 에 대한 영어 음차로써 힌두교의 미망인이 남편의 장례식에서 산 채로 화장되는 풍습이다. 1813년에서 1825년 사이에 벵골에서만 총 7941명의 여성이 이로 인해 희생되었다. 1823년 9월 27일에 라다비라는 이름의 미망인이 남편의 시체가 놓인 화장용 장작더미에서 두 차례나 달아났다. 그녀가 첫 번째로 불에서 뛰쳐나왔을 때 이미 그녀의 다리는 불에 탄 상태였다. 어쨌든 살 수는 있는 상태였는데, 세 명의 남자에 붙들려 장작더미로 도로 끌려갔고, 그 남자들은 여자가 뛰쳐나오지 못하도록 그녀 위에 장작을 더 던져올렸다. 두 번째에는 ‘피부가 거의 다 탄 채로’ 다시 뛰쳐나와 강에 뛰어들자, 사람들이 그녀를 쫓아와 익사시키기 위해 그녀를 물 속에 밀어넣었다. 


 심지어 음리튠자이 비댤란카르나 람모훈 로이 같은 인도의 힌두교 권위자들마저도 비난했던 이 잔인한 풍습에 대하여 영국인 지배자들은 경악했다. 신드 지방 총독 찰스 네이피어 Sir. Charles Napier. 같은 사람들은 이 ‘종교적 관습’을 금지하면서 인도인들이 이 관습을 고집한다면 영국도 영국의 ‘관습’에 따라 여자를 살해한 남자들을 교수대에 매달 것이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입장을 취한 것은 주로 영국 복음주의 지도자나 선교사들이었고 영국 내부에서도 ‘인도 고유의 관습’에 간섭하는 것을 꺼리는 초기의 식민 건설자들과의 격렬한 내부 갈등이 있었다)


 문제는 이 ‘관습’의 ‘보편성’ 이다. 처음에는 상위 카스트 힌두교도들의 여성의 경건함과 희생의 상징이었던 사티는 점차 하위 카스트에게도 퍼져나갔다. 이는 특히 가족들이 ‘가난한 미망인을 보살펴야 하는’ 문제를 깨끗하게 해결해 주었기 때문이다. 즉 사티는 종교적 경건의 이념을 쓴 구조조정행위였던 것.


19세기 인도라는 시대적 배경과 영국의 지배 그리고 여성 학살이라는 측면들 이전에 사티에는 경제적 자립 능력이 없는 구성원들에 대한 살처분 행위라는 보편성이 있었다. 이는 2백여년 전 서구들 자신에게도 씌여진 구빈법과 마녀사냥과 방랑자 강제노역 혹은 처분이라는 업보였고 현대 사회에서도 가난한 가정의 영아 살해 등의 형태로 변주되고 있다. 경제적 자립가능성이 기본 인권을 형성할 수 밖에 없는 원리는 21세기 선진국조차도 극복하지 못한 부분인데,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마지막 사례는 바로 낙태일 것이다. 이쯤 되면, 경제권이 곧 인권이자 생명권이라고 보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Posted by 김구공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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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hn Stuart Mill 의 가설 검증 방법론 (1862) 에 따른 질병 요인 추정

 

(1)   Method of difference: 관찰하고자 하는 사건이 일어난 집단과 일어나지 않은 집단 사이의 차이점. 같은 지역 여성 자궁경부암 발생율이 높은 군과 낮은 군의 차이가 성생활인 경우 이것이 자궁경부암의 발생과 관계 있을 것이라는 가설

(2)   Method of agreement: 사건이 일어난 집단은 동일한 특성. 후천성 면역결핍증 발생 초기에는 마약을 정맥주사한 사람, 수혈자, 혈우병 환자에서 높게 나타났으므로 이 증상이 혈액을 통하여 전파되는 것이라는 가설 수립됨

(3)   Method of concomitant variation: 연구하고자 하는 사건이 어떤 다른 사건의 변화에 따라 변화한다면 후자는 전자의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흡연량이 많을수록 흡연기간이 길수록 폐암 발생률이 높아진다면 흡연은 폐암의 주요 원인일 것이라는 가설 수립.

(4)   Method of analogy: 어떤 감염성 질환의 호발연령, 호발계절, 전파방법, 증상 등이 이미 알려져 있는 병과 비슷하다면 이 병의 원인균도 동류(同類)의 것으로 유추 가능.

 

 

 미국에서 백인은 흑인보다 심근경색증의 발생률이 높게 나타나는데, 그 후의 연구에서 백인은 앉아서 일하는 직종에 흑인은 육체운동 직종에 주로 근무하기 때문에 운동부족이 심근경색의 주 위험요인임을 알게 되었다.

 



Posted by 김구공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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