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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권세와 교회 그리고 이단에 관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증언


1. 사도가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따르게 하실까 함이라" (딤후 2:24~26) 고 말씀하셨기에 만일 이단이 관용되지 못하고 죽음에 처해진다면 그들은 회개의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이므로 사도의 교훈과 상치된다.

2. 이단들은 교회 안에서 필요하다. 사도는 "너희 중에 파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 (고전 11:19) 고 말했기 때문이다.

3. 주님은 그의 종들에게 추수 때까지는, 즉 세상 끝날까지 가라지를 그냥 자라게 내버려두라고 명하셨다.

 

이단들은 파문에 의해 교회로부터 절연되고, 죽음에 의해 세상 바깥으로 내몰려질 만한 그러한 죄인들이다. 영혼의 생명을 좌우하는 믿음을 부패시키는 것은 일시적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인 돈을 속이는 생위보다 더 심각한 죄이다. 하물며 세속적인 군주들도 범죄자에게 죽음을 처방하는 터에, 이단자들을 파문할 뿐만 아니라 죽음에 처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교회의 측면에서 보면 실수한 자들이 회개할 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자비가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도가 말한 것처럼 즉시 정죄를 해서는 안된다. 시간이 지난 뒤에도 이단이 여전히 완고하다면, 그리고 교회가 이 사람의 회개를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면, 그 떄 교회는 다른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그를 파문의 벌로 교회와 절연시켜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서 교회는 그 사람을 세속의 재판에 보내어 죽음의 벌을 내리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제롬은 이렇게 말했다. "썩은 곳은 잘라버려야 한다. 전병병에 걸린 양은 우리로부터 격리시켜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우리 전부를 불태우거나, 부패되고, 완전히 망가지는 일이 발생할 것이다. 아리우스의 불 spark 은 처음에 알렉산드리아에서 발생했는데, 이 불을 신속히 진압하지 못했기 때문에 전세계가 이 불로 황폐화된 적이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온화함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첫 번째 주장과 관련해서는 먼저 이단들을 한 두 번은 훈계해야 한다는 것과 연관되는데, 만약 이렇게 훈계한 뒤에도 그가 돌이키지 않는다면 위에서 인용한 사도의 권위에서 나타난 것처럼 그를 잘못된 사람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단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있다고 하는 두 번째 주장과 관련해서는 그 이득이 이단들의 편에서는 의도적인 것이 아니다. 이단들이 있음으로 믿음의 일관성이 있어진다고 하였는데, 사도가 말하고 있는 것은 이단들의 우리에 대한 의도적인 혜택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실제 의도는 오히려 믿음을 부패시키는 가장 해로운 의도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들에게 관용을 베푸는 비의도적인 선을 행하기보다는 그들을 잘라내는 의도적 목적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한다.

세 번째 주장과 관련해서 우리는 Decretals, 24, qu, 3. 에 쓰여진 것처럼 응답할 수 있는데, 즉 파문은 근절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파문을 받은 사람에 대해서 사도는 다음과 같은 견해를 갖고 있다.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고전 5:5) 이단을 죽음으로 근절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과 결코 반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이단을 이교도와 동일선상에서 다룬다면, 곡식을 파괴함이 없이는 가라지를 박멸할 수 없다고 말씀하는 것으로 그 계명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 Summa Theol, la, 2ae, Q, XI, a, 3, trans. PTR, III. 6(8), 17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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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gislative verbosity



의회가 이민법 개혁에 실패한 수많은 이유 중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하원 의장 John Boehner는11월 13일 상원의 개정안이 1,300페이지에 달하기 때문에 아무도 읽은 사람이 없다고 설명했다. 당시 공화당은, 71%가 오바마를 지지한 히스패닉 계 유권자를 늘릴 수 있는 이민법 대신 오바마케어 이야기를 하길 원했고, 때문에 하원 의장은 이민법 투표를 그닥 반기지 않았던 근본적 이유가 있긴 하지만 그의 지적이 틀린 말만은 아니었다.

1948년 의회가 통과시킨 법안의 평균 길이는 2.5페이지였다. 지금은 20페이지이다. 물론 그건 그닥 많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는 지난 7월 통과된, 뉴햄프셔의 항공 교통 관제 건물 이름을 거기에서 오래 근무한 근무자의 이름을 따라 변경하는 내용의, 아무도 번대하지 않는 2페이지짜리 법안 같은 것들 때문에 평균이 낮추어진 결과이다.

반대로 논쟁적인 법안은 끝없이 늘어지곤 한다. The Affordable Care Act (오바마케어의 정확한 명칭) 은 2,400페이지에 달하고 해설 규제의 광대한 미로를 만들어내었다. 상원이 이 법안을 통과한 직후 한 직원은 크리스마스 이브 기념으로 사본 한 부를 받았는데, 그 출력물 때문에 과적 벌금을 내야 했다.

장황함은 당파를 가리지 않는다. 2001년의 No Child Left Behind법안은 천 페이지가 넘는다. 이러한 막대한 분량은 부분적으로는 끝없는 문서를 편집할 수 있게 만들어준 컴퓨팅 파워의 발전에 힘입은 점도 있지만, 사실은 그냥 의회에서의 정체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이는 깨끗한 정부 캠페인 성공의 일환이다. 2010년 의회가 모라토리움에 합의한 이후로 각 지역과 주를 위한 이권 사업들의 98%가 드랍되었다. 정부의 예산 낭비를 감시하는 시민 연합은, 표를 얻기 위한 지역 개발 사업의 남발 반대를 위해 의회 돼지의 책을 발간하곤 했는데, 그 필요도 많이 줄어들었다.

지역 개발 사업은 의원들로 하여금 좋아하지 않는 법안에 투표하게끔 하는 효과적인 수단이지만, 이제는 쓰기 힘들어졌다. 입법자들은 그들의 양심이 지시하는 바에 따라 투표하는 경향이 있고, 종종 상대 당이 무엇을 하던 차단하라고 말하곤 한다. Boehner의장은 의회 공화당 다수가 지지하는 법안에만 투표할 수 있게끔 하기 위해 시스템을 차단한 적이 있다.

새로운 법안의 수가 줄어들면서 평균 길이는 길어졌다. 소수의 법안이 통과될수록, 의회 의원들은 반드시 통과되어야 하는 법안에 편승하는 경향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500명의 입법자가 한 번에 덤벼들 경우 그 법안은 '전쟁과 평화'를 하이쿠처럼 보이게 만드는 길이가 되곤 한다.

상원의 이민법은 더구나 복잡한 주제들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요약하기도 어렵다. 그래도 그것이 글로벌 헬스케어 협조라든지 불법 체류자 체포에 있어서의 가족의 가치 보호라거나, 혹은 제 2차 세계대전에서의 필리핀 참전자 대우 같은 섹션을 포함해야 하는지는 상당히 의문이다.

만약 더 긴 법안이 단순히 깨끗한 정부의 부산물이라면 이는 축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이들은 사실은 부패로의 또 다른 열린 형식의 반영일 뿐이다. 복잡한 시스템은 그것을 어떻게 찾아다녀야 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게 마련이다. 지난 10년간 워싱턴은 상위 1% 소득 가구를 미국 어느 다른 도시보다 더 많이 추가시켰다. 이들 상당수는 2001.9.11. 이후 급증한 대 정부 안보 국방 분야 계약으로부터 소득을 얻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대부분의 돈은 너무나도 거대해서 사람들이 읽을 엄두도 못 내는 복잡한 법안 속으로 이권들을 끼워넣는 로비에 쓰였다. 긴 법안일수록 그 로비에 유리하게 마련이다.


http://www.economist.com/news/united-states/21590368-why-congress-writes-such-long-laws-outrageous-bi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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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INT

카테고리 없음 2013. 11. 19.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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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정보 Humint 는 간첩활동 espionage 이고, 세상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직업이라 종종 일컬어진다. 여호수아는 유대민족이 요르단 강을 건너도록 이끌기 전에 가나안으로 두 명의 스파이를 보냈다는 성경 기록이 남을 만큼 간첩활동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미국에서 humint 는 주로 CIA 의 책임에 있으며, 특히 공작국 DO 이 임무를 맡고 있다. 또한 국방정보국 DIA 도 국방인간정보서비스 Defense Humint Service 를 통해 인간정보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또 다른 인간정보 전문용어로 첩보원의 개발 development 이라는 용어가 있는데, 이는 잠재적인 첩보원을 의미한다. 관계가 형성이 되면 요원은 그의 첩보원들과 주기적으로 만나서 첩보를 얻고, 노출될 위험이 적은 장소와 방식으로 회의를 개최하고, 첩보를 본국으로 송신해야 한다. 첩보원은 하위첩보원 sub-sources 이라고 알려진 자신의 첩보원에 의존할 수 있다. 이 경우, 첩보원은 하위 첩보원으로부터 받은 첩보를 요원에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정보는 개발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요원들은 다양한 기술(외국어, 회피, 모집, 통신기구, 무기 등)을 습득해야 한다. 인간정보 요원을 양성하는 데에는 대체로 7년이란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요원들은 자신들의 신분을 가장하고 있어야 한다. 특정 외국에 머무르는 그럴듯한 공개적인 이유가 있어야 한다. 첫째 공식 가장 official cover 요원은 또 다른 정부 직책을 갖고 있으며 대개 대사관 내 직책이 된다. 공식 가장은 요원이 그의 상관들과 계속해서 만나는 것을 쉽게 해주지만, 요원으로 의심받을 위험을 높인다.

비공식 가장 NOC: Nonofficial cover 은 요원과 본국 정부 사이의 그 어떤 공개적인 연결을 피하게 하기 때문에, 연락을 유지하는 것이 좀 더 어렵다. NOCs는 이들이 특정 외국에 체류하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상근직업을 가져야 한다. 이들은 상관들 혹은 동료들과 공개적으로 연락을 할 수 없다. 이들이 흔히 갖는 가장 직업들은 대개 정부직책보다 높은 임금을 받으므로 높은 세금이 부과되는 문제가 야기되기도 한다. 의회는 CIA가 NOCs 에게 이들의 가장직업과 일치하는 수준으로 임금을 지불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승인했다.

CIA의 NOCs가 성직자와 평화유지 자원봉사자의 직업으로 가장하는 것은 금지된다. 언론인이 가장 이상적이다. 언론인이라는 직업은 외국에 주재하고 관료들과 접촉하면서, 이들에게 질문을 던지기에 납득할 만한 이유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 언론인들은 언론인을 가장에 이용하는 것에 오랫동안 반대를 해왔다. 이들은 만약 언론인으로 가장한 스파이의 정체가 밝혀질 경우 모든 언론인들이 의심을 받을 것이고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언론인 가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언론인 역시 많은 직업들 중 하나일 뿐이라고 반박한다.

일부 Humint 첩보원들은 자발적이다 (walk-in). 소련의 펜코프스키 Oleg Penkovsky, CIA의 에임스 Aldrich Ames, FBI의 한센 Robert Hanssen이 자발적 첩보원들이었다. 왜 이들이 자발적으로 정보를 제공하려 하는가? 정말로 이들이 가치 있는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가? 진실로 자발적인 사람들인가 아니면 유인책 dangles으로 불리는 함정이 아닐까? 유인책은 적대적인 정보요원들을 식별하거나 또는 적대적인 정보기관의 정보요구나 방법을 파악하기 위한 것을 포함해 많은 목적에 사용된다. 소련은 한센이 유인책이라 의심했고, 이에 대해 미국에 항의를 했다고 한다. 미국은 이 같은 소련의 주장을 부인하였으며 이를 규명하지 않았다.

간첩활동은 수집되는 정보의 매우 작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신호정보처럼 인간정보 역시 언급, 계획, 구상되고 있는 것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 주요 장점이다. 더욱이, 비밀 요원을 통해 다른 정부에 접근함으로써 거짓 기만 정보를 흘릴 수 있고, 이를 통해 그 정부에 영향력을 미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또한 비교적 활동의 흔적이 적은 테러, 마약, 국제범죄 등 국제적 기반시설을 별로 찾을 수 없는 목표에 대해서는 인간정보가 유일하게 활용가능한 방법일 수 있다.

인간정보 요원들은 신중한 주의를 하면서도 지나친 주의로 인해 유능한 첩보원이 차단되거나 거부당할 수 있으므로 적절한 주의를 해야 한다. 미국이 펜코프스키의 첩보활동을 처음에 거절하였고, 이후 그는 영국과 접선하여 받아들여진 뒤에야 미국도 그를 스파이로 인정했다. 기만은 다루기가 매우 어려운데 사람들은 그들이 기만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사람들이 아무도 신뢰하지 않게 되면 가치있을지도 모르는 첩보원을 놓칠 수 있다.

헬름즈 Richard Helms 전 CIA 국장이 관찰했듯, 대부분 인간정보 첩보원들은 이들이 원하는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 기반하여 특정 임무 또는 요구를 위해 모집된다. 첩보원들이 다른 정보에 접근할 수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에 여러 사안들을 위해 활용될 수 없다. 또한 헬름즈는 공작 운영본부는 "이미 활용한 스파이에 집착해선 안 된다" 고 말했다. 성공적인 인간정보가 가치 있는 것일지라도 이 정보가 갖고 있는 초점은 한정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정보는 또한 테러리스트들과 마약 거래상들과 같은 개인들과 접촉하거나 관계를 가질 것을 요구할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이들에 침투하려고 한다면 이 사람은 금전 혹은 다른 형태의 거래를 주고 받거나 전달해야 할 수도 있으며, 이는 일부 사람들에게 도덕적 윤리적 이슈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2001년 9.11 테러사건의 여파로 인간정보를 위한 도이치 규칙 Deutch Rules 에 특별한 관심이 집중되었다. 1995년 도이치 John M.Deutch CIA 국장은 과거 심각한 범죄활동 혹은 인권 위반에 관련된 사람을 고용하지 말 것을 명령했다. 과거 과테말라의 일부 CIA 첩보원들이 현지인 및 거주 미국인들의 인권을 침해했다는 점이 밝혀진 때문이었다.

새로운 규정들이 공표되었고, 향후 어떤 인력 모집에 있어서도 본부의 승인이 필요하게 되었다. 하지만 9.11 테러 이후 이 규정들은 광범위하게 비판받았고, 많은 사람들은 이 규정들로 인해 테러리스트 단체에 침투하는 CIA 능력이 제한받았다고 주장했다. 2001년 말경 도이치 규정은 현장지부에 이 규정들이 무시될 수 있다고 전해졌고 2002년 7월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인간정보는 어떠한 국가 또는 단체도 수행할 수 있으므로 공개출처정보OSINT와 더불어 가장 민주적인 수집방법 중 하나이다. 명백히 여러 중요 사안들에 근접할 수 있는 양질의 인간정보가 선호된다. 그러나 에임즈 Ames 나 한센 Hanssen 과 같은 사건들은 인간정보의 가치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두 스파이들은 주로 미국의 스파이 침투에 대한 가치있는 첩보를 소련과 러시아에 제공했는데, 특히 한센의 경우 미국의 기술적 수집활동과 역량에 대한 첩보를 제공했다. 영상정보를 제공한 캠파일즈 (미국 CIA의 하급요원이었단 William Kampiles는 미국의 KH-11 사진정찰위성의 운영지침서를 소련에 단돈 3,000달러에 팔아넘겼다), 신호정보를 제공한 워커 가족과 펠톤 Pelton 등 지난 간첩사건들에 에임즈와 한센의 활도이 추가되면서 소련과 러시아는 미국의 수집역량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얻었을 것이다.

인간정보에 있어서 주요 관심사 중 하나는 스파이가 체포되어 신분이 밝혀질 가능성이다. 이는 스파이의 개인적 위험과 더불어 본국이 정치적으로 곤란해질 수 있다. 성공적으로 수행된 장기적 간첩활동조차도 큰 비용을 수반할 수 있다. 기욤 Gunter Guillaume의 경우, 그는 서독정부에 침투한 동독의 스파이로서 브란트Willy Brandt 총리 사무실 내 고위 직책까지 올랐다. 기욤의 간첩활동이 1974년 밝혀졌고, 브란트는 사임을 강요받았다. 많은 사람들은 간첩활동의 정치적 비용이 이득보다 크다고 생각했고, 동독에 대한 우호정책인 브란트의 동방정책 Ostpolitik은 그의 계승자들에 의해 폐기되었다.

이와 유사하게 기밀정보를 이스라엘에 제공한 폴라드 Jonathan Pollard 사건은 미국과 이스라엘 관계를 계속 불편하게 하였다. 이는 분명 폴라드가 제공했던 정보의 가치를 뛰어넘는 비용을 수반했다.

 

  - Mark M Lowenthal: Intelligence: From Secrets to Poli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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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상: (천천히 등장) 오래 산 덕택에 기꺼운 일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럼 이 중대한 문서를, 먼저 들으신 다음 보아 주십시오.

  이것이 모든 화를 복으로 바꾼 것입니다.

  (낭독한다) "알고자 하는 자에게 널리 알리노라.

  이 종이조각은 천 크로네로서 통용된다.

  그 확실한 담보로 충당되는 것은 제국 안에 수없이 매장되어 있는 보물이다.

  그 풍부한 보물은 곧 발굴되어 그 태환에 쓸 준비가 갖추어졌다"

황 제: 고얀 짓거리, 어이없는 사기구나!

  여기에 황제의 친서를 위조하여 서명한 자가 누구냐?

  이런 범죄가 벌도 받지 않고 있단 말이냐?

  재무 대신: 기억이 안 나십니까? 폐하께서 친히 서명하셨습니다.

  바로 어젯밤의 일입니다. 폐하께서 위대한 신 판으로 가장하셨을 때 재상께서 저희들과 함께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성대한 잔치의 기쁨이 백성의 행복이 되도록 한 줄 적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하고 말이죠.

  폐하께서 흔쾌히 적어 주셔서, 어젯밤 안으로 요술사를 시켜 몇천 장을 만들게 했습니다.

  폐하의 자비가 만인에게 골고루 베풀어지도록 갖가지 지폐에 다같이 폐하의 관인을 찍게 하여 10, 30, 50, 100 크로네짜리 지폐가 만들어졌습니다.

  백성들이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폐하는 모르실 것입니다.

  도시를 보십시오. 조금 전까지는 반죽음으로 곰팡이가 슬어 있더니 모두 활기를 되찾아 즐거움에 들끓고 있습니다!

  폐하의 어명은 예로부터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만 이번처럼 백성들이 우러러 받든 적은 없습니다.

  서명하신 문자만으로 모든 사람이 행복해졌습니다.

황 제: 그러면 백성들 사이에는 이 종이조각이 금화 대신 통용된단 말이냐?

  지난 일이지만, 이젠 할 수 없구나.

궁내 대신:날아가듯 흩어진 것을 회수할 수는 없습니다.

  눈 깜빡할 사이 세상에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환전상은 문을 활짝 열어 놓고, 물론 할 일은 하지만, 지폐마다 금화나 은화로 바꾸어 주고 있습니다.

  거기서 곧장 푸줏간이나 빵집, 술집으로 달려갑니다.

  세상 사람 반은 먹는 것만 생각하고, 나머지 반은 새 옷을 사 입고는 뽐내고 있습니다.

  피륙상에서는 천을 끊고, 재단사는 옷감을 마릅니다.

  황제 폐하 만세! 소리가 술집마다 쏟아져나오고, 쟁반 소리도 요란하게 음식이 나오고 있습니다.

메피스토펠리스: 공원에서 혼자 산책하고 있으면, 화려하게 차려입은 아름다운 여자가 의젓한 공작 날개 부채로 한쪽 눈을 가리고 방싯 웃음을 머금은 채 지폐를 곁눈질합니다.

  그러면 애교를 부리거나 아첨하는 것보다 쉽게 색정을 맛볼 수 있지요.

  지갑마다 주머니를 안 가지고 다녀도 지전 한 장쯤 품속에 수월하게 들어갑니다.

  연애 편지와 함께 넣어 두기도 편리하지요.

  신부는 점잖게 기도서에 끼워 두고 병사들은 '뒤로 돌아'를 재빨리 할 수 있게 전대가 훨씬 가벼워졌습니다.

  시시한 이야기로 이 위대한 사업의 품위가 깎였다면 용서해 주십시오.

파우스트: 무진장한 보물이 폐하 나라의 땅 속 깊숙히 묻혀서 이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리 큰 생각으로 그 양을 짐작하더라도 그것은 하찮은 척도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공상을 아무리 멋대로 해 보아야 공연히 힘만 들 뿐 미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깊은 통찰력을 가진 사람은 무한한 것에 무한한 신뢰감을 갖는 법입니다.

메피스토펠리스: 금이나 진주를 대신하는 지폐는 아주 편리해서 주머니 속을 환히 알 수 있지요.

  우선 값을 매기거나 돈으로 바꿀 필요가 없습니다.

  주색의 즐거움도 쉬 맛볼 수 있고요.

  경화가 필요하면 환전상이 있고 거기도 없으면 잠깐 파 오면 되지요.

  황금잔이나 황금 사슬은 경매에 붙여져서 지폐로 그 값이 치러집니다.

  우리를 비웃던 거만한 자들은 부끄러워할 겁니다.

  익숙해지면 이것 없이 못 살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앞으로 이 영토 안에선 어디를 가나 보석이며 금이며 지폐가 남아돌게 되지요.

황 제: 우리 나라는 그대들 덕택에 큰 복리를 얻었다.

  당장 그 공에 어울리는 상을 내리노니 국내의 땅 속은 그대들에 맡기노라.

  가장 훌륭한 보물의 관리자니까.

  보물이 매장된 넓은 곳을 알고 있으니 발굴의 지시를 그대들에게 일임한다.

  우리 재보의 관장자인 그대들은 마음을 합하여 거룩한 직책을 기꺼이 완수하고 땅 밑의 세계와 땅 위의 세계를 서로 맺어 이 나라 복지에 이바지해 다오.

재무 대신: 이 두 사람과 조금도 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마술사를 동료로 갖게 되어 좋아하고 있습니다.

황 제: 궁정 안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지폐를 줄 터이니 무엇에 쓸 것인지 솔직히 말해 보아라.

시종1: (받으면서) 신나고 명랑하고 재미있게 살겠습니다.

시종2: (마찬가지로) 곧 연인에게 목걸이와 반지와 팔찌를 사 주겠습니다.

시종1: (받으면서) 앞으로는 실컷 좋은 술을 마시겠습니다.

시종2: (마찬가지로) 주사위가 주머니 속에서 굼실거리고 있습니다.

기사1: (신중하게) 저의 성과 밭을 담보로 얻은 빚을 갚겠습니다.

기사2: (마찬가지로) 다른 보물로 바꾸어서 저축하겠습니다.

황 제: 나는 새로운 사업을 위한 의욕과 용기를 기대했었다.

  허나 역시 그대들이라, 내 짐작이 빗나가지 않았구나.

  잘 알았다, 아무리 보물의 꽃이 피어도 그대들은 언제까지나 변치 않을 것이다.

어릿광대 (앞으로 나오며) 주실 물건이 있으시면 저에게도 나누어 주십시오.

황 제: 살아 있었구나! 너는 지폐를 준다면 술로 다 마시고 말 게다.

  어릿광대: 마술 지폐! 저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황 제: 그럴 테지. 어차피 쓰는 방법이 나쁠 테니까.

어릿광대: 여기 지폐가 떨어졌습니다.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황 제: 넣어 둬라. 네 앞에 떨어진 것이니까. (퇴장)

어릿광대: 5천 크로네가 내 손에 들어왔다!

메피스토펠레스: 두 발 달린 술부대야, 되살아났구나?

어릿광대: 가끔 있는 일이지만, 이번처럼 운이 좋은 적은 없었어요.

메피스토펠리스: 땀까지 흘려가며 몹시 기뻐하는군.

어릿광대: 이것 좀 보십시오. 이것이 정말로 돈 값어치가 있단 말입니까?

메피스토펠리스: 그것으로 실컷 먹고 마실 수 있지.

어릿광대: 밭이나 집이나 가축도 살 수 있나요?

메피스토펠리스: 물론이지! 어떤 물건이든지 다 손에 넣을 수 있다.

어릿광대: 숲과 수렵장과 양어장이 있는 성도요?

메피스토펠리스: 암! 네가 영주가 된 꼴을 보고 싶구나!

어릿광대: 그럼, 오늘 밤엔 영주가 되는 꿈이나 꾸어 볼까! (퇴장)

메피스토펠리스: (혼자서) 저 어릿광대가 제일 영리한 것 같구나!

 

     - Johann Wolfgang von Goethe. "Faust"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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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정책보고서 2005- 노인교통이용 등 요금제도 연구 (석재은, 정경희, 김용하, 이윤경

   

 교통수당제도는 소득계층에 관계없이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7,800~15,600원 수준의 교통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이는 1980년에 경로우대를 위해 도입된 「노인승차권」지급제도가 발전한 것으로 1994년부터는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교통수당이 지급되고 있다. 

 지하철 개통에 따라 84년부터 노인의 경우 지하철 요금을 100% 할인하여 오고 있다. 

 다른 소득보장 제도가 미발달된 상황에서 우리 사회에서 경로우대차원에서 배려하는 거의 유일한 제도로 역할을 담당. 

 해당 제도 운영주체의 지방화, 민영화가 이루어져 옴에 따라 노인교통이용 지원제도 자체의 타당성과 함께 누가 비용부담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 

 2003년 현재 노인의 97.7%가 교통수당을 신청하고 있으며 4,561억원이 소요되고 있어 노인1인당 월 9,860원의 규모. 

 노인교통수당은 신청주의에 기초하고 있으므로 노인교통수당을 받고자 하는 노인은 주민등록증이나 기타 연령을 확인할 수 있는 증명서를 거주지 읍동사무소에 신청하면 되며, 한번 신청하면 사망시나 본인이 원하지 않는 경우 외에는 계속 유효 

 노인복지법시행령 제19조에 경로우대시설의 종류와 할인율을 제시하고 있는데, 교통요금과 관련해서는 철도의 경우 무궁화호는 30%, 통일호비둘기호는 50%의 할인을, 도시철도(도시철도 구간안의 국유전기 철도 포함)는 100% 할인을 명시 

 노인교통수당은 실제적인 교통수단의 이용 여부와는 상관없이 일정 금액이 일시에 제공되고 있어 실제 교통수단 이용에 이용된다고 판단하기 어렵다.

  어촌 지역은 경로연금 대상 노인의 비율이 높고 교통수당을 지급해야 하는 노인의 수가 많아 다른 사업에 관심을 기울이는 데 제한이 있다.

  경로우대제도로서의 교통수당은 노인 개인에 대한 지급이라기보다는 노인이라는 특정 집단에 대한 보상의 의미 - 전반적인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분담의 큰 틀 안에서 다시 검토될 필요가 있다.

  지하철의 경우 대도시에만 설치되어 있어 실제적인 교통수당 지출에 있어 중소도시나 농어촌지역 거주 노인에 비하여 대도시 노인에게 혜택이 많은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교통수당 관련 예산은 2004년에 4903억원이지만 노인인구의 증가에 따라 급속하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 2005년 5137억원, 2010년 6282억원, 2020년 9189억원으로 전망.

  교통수당을 국고보조사업으로 전환한다는 것은 현재 지자체에서 부담하고 있는 재원부담의 감소를 의미하므로 의존적 재정구조를 가진 지자체 입장에서는 총 재원의 감소를 가져오게 된다

  공적연금제도도 미성숙하고 여타 공적 노령소득보장제도도 미흡하고, 노령계층 경제활동참가율이 높지 않은 상태에서 수급연령을 현행 65세 수급연령에서 당장 상향조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최저생계비 산정에 교통이용에 대한 비용이 감안되어 최저생계비가 설정되고, 이에 근거하여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생계급여가 지급 -> 수급자에 대하여 교통수당을 차등하여 높게 지급하는 것은 이중 중복혜택이 된다.

  지하철 운영은 지방공사가 운영하지만 지방정부가 최종적으로 책임지고 있다. 노인의 지하철 무임승차 비용에 대한 정부 부담론이 제기되는 부분.

  지하철 공사는 단순히 무임승차에 의하여 재정적자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초기시설투자비에 대한 원리금 상환, 운영수지상의 만성적인 적자구조.

  노인무임승차비용은 2003년에는 1,364억원으로 산정되고 있다. 이는 2001년의 950억원에 비하면 급속하게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증가요인은 노인인구의 증가와 지하철요금의 인상.

  영국과 같이 출퇴근시간 등 피크타임에는 비용을 부담하고, 아닌 시간대에는 비용부담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운영. 결국, 오프타임에는 비용부담을 공사와 국가가 부담하며, 피크타임에는 본인과 국가가 비용을 부담하는 방식으로 하는 방안이 검토될 수 있다.

  지하철공사가 지자체에게 노인무임승차비용의 지급을 요구한다면 지자체는 그동안 적자분에 대하여 지원하던 예산총액은 변동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지원항목만 '노인무임승차비용 보조' 라는 명목으로 지원할 수 있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지하철공사에게는 전혀 이익이 되지 않은 결과가 될 수 있다.

  노인복지법 제 26조의 경로우대 조항에서 제 1항은 국가 또는 지자체의 수송시설에 대하여 요금을 할인하여 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제 3항에서는 이용요금 할인 자에 대하여 적절한 지원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나, 이는 강제조항이 아니다. 할 수도 있고 안 해도 되는 것.

  지하철이 운영되는 지역에 대해서는 지하철 무임승차에 대하여 지원하고 그렇지 않는 지역에 대해서는 하지 않는다면 이는 지역간 형평성 차원에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 것

  노인복지카드의 발급은 단순한 교통수당의 지급수단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다양한 노인복지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인프라기능을 할 수 있을 것

  만차가 되는 경우에는 노인에 대한 할인은 경영손실로 연결될 수 있지만 승차율이 낮은 경우에는 노인할인이 꼭 경영손실이라고 할 수 없는 것.   



결과적으로

 

첫째, 경영적 목적이 아닌 교통요금할인제도는 장기적으로 없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면, 노인에게 직접 일정액을 지급하는 것이 더 형평적이고 효율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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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통합방법상의 갈등

 

유럽연합의 근본적 갈등은 통합을 추진하는 방법과 시각의 차이에서 출발한다.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연합주의자 confederalist 들은 외교, 내무, 사법, 사회, 정책 등에 관한 주권을 유지하면서 국가간 협력을 강화하는 완화된 형태의 동맹관계를 지지했다. 반면 프랑스 등 연방주의자 federalist 들은 주권이 국가와 분리될 수 없다는 논리도 구시대의 산물로서 전쟁방지를 위해서는 초국가적인 기구를 설치하여 국가융합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랑스는 미국이나 독일의 각 주가 외교, 국방, 통화 등의 권한을 연방정부에 이양한 것과 같은 형태의 유럽통합을 주장하면서 의사결정도 다수결에 의한 신속한 결정을 주장했으나, 영국은 완화된 형태의 통합과 만장일치를 주장했다. 유럽연합은 연방주의자들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마스트리트히트조약 초안은 연방국가를 지향 federal goal 한다는 조항을 포함했으나, 영국의 반대로 회원국간 협조를 강화 ever closer Union 하는 문안으로 대체되었다.

미국의 독립 초기 (1791~88), 1815년 비엔나조약 이후 독일, 1874년 이전 스위스가 연합국가 confederal state 의 형태를 띠었다. 반면 연방국가 federal state 는 미국의 경우와 같이 중앙정부가 외교, 안보, 통화정책 등의 권한을 수행한다. 유럽연합을 회원국이 독자적인 법령체계를 갖추고 조약체결과 군대 및 조세권을 갖는 점에서 연합국가와 유사하나, 집행위원회도 독자적인 법령체계를 갖추고 조약체결과 통상, 농업, 사회정책 등 분야 정책결정권을 집행위원회에 양허하여 연방국가적 요소도 갖추고 있다.

유럽통합 과정에서 갈등은 회원국 경제여건과 역사적 배경의 차이, 통합방법상의 이견, 국가간 이해관계 등이 얽혀서 일어나는데, 프랑스의 유럽담당 장관 라마루스는 "독일은 동구정책에만 관심이 있고, 스페인은 남방정책, 영국은 자유무역, 이탈리아는 구조조정기금에만 집착하며, 프랑스는 공동 국방정책만을 주장한다면 공동체는 어디로 가겠는가?" 라고 갈등의 요인을 설명했다.

 


  2. 언어상의 갈등

 

유럽연합 27개국은 모두 23가지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이를 동시에 통역하기 위해서는 506가지의 조합이 나온다. 따라서 정상회의와 이사화 등 공식 회의에는 최소한 253명의 통역요원이 필요하며, 공식문서는 번역되는 과정에서 시간, 인력, 자원의 소모와 오류를 야기하기도 한다. 유럽연합 각 기관에 근무하는 인원 중 가장 많은 직종은 번역 및 통역사이며, 연간 번역비용만 8억유로 (약 1조원) 으로 전체 행정경비의 40%를 차지한다.

특히 핀란드어, 헝가리어, 에스토니아어 등 우랄 알타이 어족은 직접 번역이 어렵고, 핀란드어 -> 영어 -> 헝가리어 식으로 중역시 오역 가능성이 높아진다. 언어의 다양성은 단일통화 작용에도 장애요인으로 작용하는데, 유로(euro) 화의 표기도 슬로베니아는 evro, 라트비아는 eiro, 리투아니아는 euras, 몰타는 ewro 등으로 달리해 주도록 요구했다.

프랑스는 유럽연합의 주요 기구가 소재한 브뤼셀과 룩셈부르크가 불어권인 이점과 초기에 영국이 가입하지 않고 독일이 전쟁복구에 바쁜 틈을 이용하여 불어를 제 1 공용어로 확고히 했다. 집행위원회가 매일 실시하는 브리핑도 불어만을 사용했으나, 2,000명이 넘는 특파원들의 요청에 따라 95년부터 영어 통역이 허용되었다. 집행위원회의 인터넷 서비스는 영어를 주로 하였으나 프랑스의 반대로 모든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언어의 다양성은 유럽 확대에 최대 장애요인이 되고 있는데, 프랑스는 공식 회의에서 불어, 영어, 독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등 5개 언어만을 사용하도록 제안하였으나, 여타국들은 일제히 반대하고 나섰다. 유럽연합은 언어교육에 중점을 두는데, 통합 교육훈련사업 Socrates 은 대학간 협력 Erasmus 과 일반학교간 교류활동을 지원하며 Comenius, 기술훈련 과정에서도 언어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3. 의사결정 절차상의 갈등

 

로마조약은 의사결정절차로 만장일치와 함께 다수결원칙을 규정하였으며, 점차 다수결에 의한 결정을 확대하도록 하였다. 1965.6 집행위원회는 공동농업정책에 따른 재정부담이 커지자 자체 세입원을 확대하고 유럽의회에 예산통제 기능을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는데, 대부분의 회원국이 지지하여 다수결의 정족수는 충족되었다. 그러나 드골 대통령이 국익에 반한다는 이유로 반대하면서 65년 7월 자국 대표를 이사회로부터 철수하고 브뤼셀 주재 상주대표부도 철수해 버렸다.

당시 공동체 의장국인 프랑스가 브뤼셀을 떠나자 (empty chair) 이사회는 개최되지 못했고 공동체 기능은 마비되었다. 프랑스는 6개월 후인 1666년 1월 룩셈부르크에서 개최된 특별이사회에 다시 참석했는데, 개별 회원국에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은 바로 표결하지 않고 일정기간 동안 조정절차를 거친 후 만장일치로 결정하는 룩셈부르크타협 Luxembourg Compromise 을 채택했다.

룩셈부르크타협은 정치선언으로서 이사회의 결정에 중요한 지침이 되고 있다. 94년 6월 그리스 코르푸에서 개최된 회원국 정상회의에서 독일, 프랑스 등 대부분의 회원국은 차기 집행위원장으로 벨기에의 드한느 Jean-Luc Dehaene 수상을 지지했으나 영국만은 자국 출신 브리탄 집행위원을 고집했다. 회의 말미에 브리탄위원은 후보를 사퇴했으나 영국은 거부권을 행사했고, 독일의 막후 절충을 거쳐 제 3의 인물인 상태 Jacques Santer 룩셈부르크 수상을 선임하였다.

룩셈부르크타협은 법적 기속력이 없기 때문에 항상 비토권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82년 5월 각료이사회에서 영국은 농산물 가격결정이 국익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비토했다. 여타 회원국은 영국이 이미 공동농업정책에 합의했으므로 가격결정 자체가 중요 국익위반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해서 표결로 이어졌고, 영국의 반대와 덴마크, 그리스의 기권에도 불구하고 가결되었다.

 


  4. 공동정책에서의 갈등

 

공동 외교안보정책은 만장일치로 결정되므로 보스니아 등 지역분쟁은 적기에 대응하지 못했다. 1990년 8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미국은 13개국 연합군을 결성하여 걸프전을 집행했다. 유럽연합은 이라크와 무역협정을 파기하고 석유수입을 중단하는 등 신속히 대응했으나, 군사면에서 영국과 프랑스가 군대를 파병한 반면 벨기에는 무기판매도 거부했다. 이스켄 Mark Eyskens 벨기에 외무장관은 "유럽은 경제적 대국 giant 이나 정치적 난장이 dwarf 이고 군사적으로 벌레 worm 수준이다" 라고 평했다.

또한 2003년 3월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했을 때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덴마크, 네덜란드 등은 지지했으나 프랑스, 독일, 벨기에, 오스트리아, 그리스 등은 적극 반대했다. 파월 미 국무장관은 유럽은 한 국가를 설득하면 다른 국가가 반대하는 현대판 히드라에 비유했다. Financial Times 지는 이라크 전쟁에서 최대 희생자는 유럽 Europe is the first casualty of war 라고 표현했다 (2003.3.12)

96년 3월 영국 정부가 광우병 mad cow disease: BSE 이 사람의 소해면상 뇌증 (CJD) 과 연관이 있다고 발표하자 유럽연합 회원국은 영국산 쇠고기와 제라틴, 화장품, 의약품 등 쇠고기를 사용한 제품의 수입을 금지했다. 영국은 수입금지는 단일시장 정신에 어긋난다고 사법재판소에 제소했다. 아울러 광우병에 걸린 4백만 두의 도살하는 비용 중 일부를 유럽연합이 지원하도록 요청하면서 만장일치로 결정되는 안건을 모두 비토하여 정책이 표류했으나, 96년 6월 플로렌스 정상회의에서 850만 유로를 특별지원키로 하여 비토권을 해제했다.

 


  5. 재정부담과 수혜율 간의 격차

 

회원국은 유럽연합에 가입하여 주권의 일부를 양허하는 대신 경제적 이득을 기대하고 있으나 국가별 소득수준과 재정규모가 상이하여 재정부담과 공동정책 수혜율 간에 괴리가 발생한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 4개국이 전체 세입의 2/3을 부담하고 더구나 독일과 영국은 농산물 수입국으로서 공동농업정책에 따른 소비자의 고비용 지불이라는 이중부담까지 지고 있다. 반면 스페인, 그리스, 포르투갈, 아일랜드 등은 재정부담에 비해 수혜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특히 영국은 공동체 가입 초기 20%에 이르는 재정부담에 비해 수혜율은 10%에 불과했다. 또한 공동농업정책에 따라 높은 가격으로 농산물을 수입하면서 관세마저 공동세입으로 빼앗기게 되자 75년 6월 이에 대한 국민투표를 진행하였으나 67%가 공동체 탈퇴에는 반대했다. 퐁텐블뤼 정상회의는 영국에 대해 세출 면에서 보상장치를 마련하고 부가가치세 부담과 수혜액의 차액 중 66%를 환불해 주기로 했다. 대처 수상의 강경노선은 영국 의회 내에 통합회의론을 증폭시켰는데, 노동당은 83년 선거공약으로 공동체 탈퇴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영국은 EU 예산의 46%가 유럽 인구의 5%에 불과한 농가에 지출되며, 그 중 20%는 프랑스에 배정된다고 주장하면서 농업보조금 축소를 주장했다. 프랑스는 영국이 2007~2013년간 환급받기로 예정된 500억 유로 중 140억 유로를 포기토로 요청했으나 영국은 80억 유로만 포기하겠다고 주장하며 2007년 후 예산안이 표류했다. 2005년 12월 브뤼셀 정상회의에서 독일 메르켈 총리의 중재로 영국은 2007~2013년 간 총황금급 중 103억 유로를 포기하고, 유럽연합은 기간 중 예산 규모를 회원국 GNI 의 1.045%로 축소하기로 합의하여 예산안이 타결되었다.

 



  6. 업무영역상의 갈등.

 

로마조약에 따라 집행위원회는 공동통상정책을 담당하고 있으며, GATT 관세 인하 협정과 UR 협상을 주도하였으나 비준과정에서 회원국과 집행위원회 간에 업무영역 논쟁이 제기되었다. 집행위원회는 유럽연합조약 133조에 따라 포괄적인 통상정책을 수행하므로 유럽의회의 비준만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했으나, 독일과 프랑스는 UR 협정상 관세인하 / 반덤핑 등 전통적 통상보호조치는 집행위원회의 권한에 속하나 서비스와 지적소유권 등 새로운 분야는 집행위원회가 교헙하였더라도 회원국 권한으로서 회원국 의회의 비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94년 6월 집행위원회는 사법재판소에 로마조약의 유권해석을 의뢰하였고, 독일과 프랑스는 집행위원회와 회원국의 권한배분을 정한 준칙 code of conduct 제정을 추진하였다. 이와 같은 논란으로 UR 협정 비준안은 표류하기 시작했으나, 94년 11월 사법재판소가 서비스 GATS 와 지적소유권 TRIPs 등 새로운 분야는 회원국과 집행위원회가 권한을 나누어 갖는다고 해석함으로써 유럽의회와 회원국 의회의 비준을 모두 거친 후 확정되었다. 암스테르담조약은 집행위원회가 서비스 및 지적소유권 분야에서도 대외협상권을 갖도록 명문화했다.

 


  7. 핵심그룹 논쟁

 

회원국 확대와 유럽통합이 본격화되자 국가간 이해는 더욱 첨예화되고 있는데 비해 조정기능은 약화되었다. 90년 7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환율안정장치에 그리스는 처음부터 가입하지 않았고, 92년 9월 영국과 이탈리아는 탈퇴했다. 영국은 97년 5월 노동당정부 초기까지 근로자의 권리를 규정한 사회헌장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임산부의 유급휴가, 근로시간 제한, 파트타임 근무제 등 사회관련 공동법령의 채택을 거부했다. 영국과 아일랜드는 사람의 자유이동을 보장하는 쉥겐협약에도 가입하지 않고 있다. 영국은 공동정책 중에서 각 회원국이 필요로 하는 정책만을 선택적으로 참여 A La Carte 할 수 있는 차별적 통합을 지지한다.

이에 대해 오스트리아와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가입을 눈앞에 둔 94년 8월 발라뒤르 프랑스 수상은 기자회견을 통해 프랑스와 독일 외에 1개국이 추가된 3개국이 공동정책을 주도하는 방안 Three-Tier Europe 을 제시했다. 9월 1일에는 독일 기민당 CDU 과 사회당 CSU 이 유럽연합의 회원국 확대 후 정책결정을 신속화하기 위해 독일, 프랑스, 베네룩스 등 당초 공동체 설립국을 중심으로 핵심그룹 5 nation hard core 을 설치하는 정책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정책보고서는 유럽연합 내 모든 국가가 통화동맹이나 사회정책, 외교/안보 정책을 동시에 추진할 수 없으므로, 핵심그룹이 먼저 통화/정치동맹을 추진하고 나머지 국가는 천천히 따라오는 다원적 속도 multi-speed 에 의한 연합방안을 제시했다. 또한 독일과 프랑스는 핵심권 중의 핵심국가 core of hard core 로서 협력을 더욱 강화할 것을 주장했다.

당시 유럽연합의 의장국인 독일 집권당의 정책보고서가 발표되자 핵심그룹에 포함되지 않은 국가들은 일제히 반격에 나섰다. 특히 영국과 공동체 창설멤버로 핵심그룹에 포함되지 않은 이탈리아는 물론 덴마크/스페인 등은 독일과 프랑스의 제안은 유럽연합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비난하자, 콜 수상은 기민당의 보고서는 정부의 공식견해가 아니라고 진화했고,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도 수상의 발표를 부인했다. 유럽의회는 공식결의를 통해 핵심국가 설립을 거부함으로써 외형적으로 일단락되었으나 의사결정 과제로 남아 있다.

 

  - 이희범, 유럽통합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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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mbert Sustris - Liggende Venus 1550


아레티노의 풍자시 가운데 하나는 외국인들이 로마에 여드레나 열흘 정도 있으면서 "옛날 것"을 본 뒤에는 "요즘 것"을 보고 싶어 할 것이라고 묘사하는 내용이 있다. (Partner. Renaissance Rome) 여기에서 요즘 것이란 고급 창부를 의미했다.

 

고급 창부는 로마의 특징 중 하나로, 모든 방문객이 이들에 대해 언급했고, 많은 방문객이 찾아갔다. 이들은 특수한 형태의 사치품이었으며, 로마의 부와 화려함, 성적 불균형의 직접적인 결과였다. 16세기 말과 17세기 초에 로마에서 남성 대 여성의 비율은 약 6대 4였다. 로마만큼이나 고급 창부들이 두드러졌던 베네치아에서는 그 비율이 약 7대 6이었으며, 반대로 그들이 거의 중요하지 않았던 피렌체에서는 약 4대 5였다.

 

로마의 성적 불균형은 사제들이 집결해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태평했던 15세기 말과 16세기 초에 고급 창부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젊은 귀족과 부유한 방문객도 그들을 자주 찾았으며, 그들은 종교개혁에 대항한 가톨릭 내부 개혁으로 인해 성직자의 수요가 줄어드는 상황 속에서도 성매매의 수요를 유지해 주었다. – Masson, Courtesans.

 

성공한 고급 창부는 마차를 한 대 갖고 있었고, 세련된 집과 많은 가구를 갖추고 살았으며, 우아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반드시 읽었던 것은 아니지만 최신의 책들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창부는 심지어 바닥에 양탄자를 깔았는데, 이는 당시에 드문 일이었다. 에스파냐 대사가 유명한 고급 창부인 임페리아를 방문했을 때 그는 양탄자가 더러워질까봐 양탄자 대신 하인에게 침을 뱉었으며, 임페리아는 그의 배려를 고맙게 여겼다고 한다. – Delumeau, Vie economique.

 

몽테뉴 또한 그의 [여행록]에서 1581년 로마를 방문했을 때, 설교를 경청하고 고대의 유물을 보고 정원, 포도밭, 오락 장소를 살펴본 후, 고급 창부를 찾아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성매매가 아니라 대화를 위해 방문했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대화만 했다 할지라도 꽤 많은 돈을 지불해야 했을 것이다.

 

그들은 또한 열심히 교회에 나갔다. 일요일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이는 훌륭한 방법이었다. 이들은 화려한 차림으로 교회에 왔으며, 말쑥한 복장의 젊은 구애자를 동반해 앞쪽의 의자를 가득 채웠다. 그들은 15세기 말과 16세기 초 산타고스티노 교회에, 이후에는 로마에서 가장 새롭고 상류층 인사들이 많이 몰리는 교회에 다녔다. 고급 창부 중에는 고객과 가깝다는 명백한 이유로 산피에트로 성당과 바티칸에 인접한 보르고에 사는 이들이 많았다.

 

가톨릭 내부개혁 시기에 고급 창부들을 모두 추방하려는 노력이 잠깐 있었으나 실패했다. 하지만 이들을 포폴로 광장 주변의 캄포 마르초 지역에 있는 한 구역에 몰아넣으려는 시도는 보다 성공적이었다. 1599년 인구조사를 보면 801명의 직업 고급 창부 중 438명이 그곳에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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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9년 4월, 나탄 메이어 로스차일드 Nathan Mayer Rothschild 의 둘째 딸 해나 메이어 Hannah mayer 가 유대인임을 포기하고 노샘프턴셔의 부지사이자 서섹스 주도 루이스의 국회의원 헨리 피츠로이 Henry Fitzroy 와 결혼하자, 이미 사망한 나탄을 대신하여 동생 제임스가 분노하여 쓴 편지의 일부

 

해나 메이어의 이야기는 나를 너무나 고통스럽게 했기 때문에 펜을 들어 이 문제에 대해 쓸 용기조자 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안타깝게도 그 아이는 우리 가족의 자부심을 짓밟고, 우리에게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혔다. 냇, 너는 그 아이가 종교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갖게 되었다고 말하지만, 나는 종교야말로 모든 것을 의미한다고 믿는다. 우리가 가진 행운과 은총은 종교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 아이를 기억에서 지우고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나와 다른 가족들이 절대 그 아이를 다시 보거나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그 아이가 잘되기를 바라고, 마치 그 아이가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기억에서 지웠으면 좋겠구나.

 

사람이 자신의 종교를 버리고 15세 이후로 그 외에 다른 일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것보다 더 심한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구나. 냇, 너의 친구이자 숙부로서 솔직하고 정직한 내 의견을 말하고 싶다. ….. 신께서 우리에게 건강을 허락하신 동안 우리와 내 아이들은 두 번 다시 해나 메이어와 접촉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된 이유는 그것 말고도 수없이 열거할 수 있다.

 

여자아이가 "저는 가족의 소망에 반하는 결혼을 하겠어요" 라고 말할 때 그것이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본보기가 되겠니? 종교 이야기는 굳이 하고 싶지 않구나. ….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 아이를 환영하고 받아들여야 하겠니? 그런 아이를 혼내지 않는다면 내 아이들이나 그 아이들의 아이들이 부모의 소망을 따르겠니?

 

나와 나머지 우리 가족은 …. 반드시 가족 구성원들 속에서 사랑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가족 구성원이 아닌 사람과 결혼한다는 생각을 배제시켜 재산이 가족 안에서 유지되도록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녀들을 어릴 때부터 키웠단다. 벌을 받지 않을 것임을 안다면 그 아이들이 내가 말한 대로 하리라고 누가 장담하겠니? 만일 내 따리 결혼한 후에 "내게도 그럴 만한 돈이 충분히 있었는데, 내가 사랑한 공작님과 결혼하지 못해서 불행해요. 여자가 종교를 포기했는데도, 그리고 가족의 소망에 반하는 결혼을 했는데도 가족들이 그녀를 받아 주었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어요. 저도 그럴 걸 그랬나 봐요" 하고 말한다면 어떻겠니? 세심하게 계획된 일, 즉 마이어가 안젤름의 딸과 결혼하고 라이오넬의 딸은 또 다른 가족 구성원의 아이와 결혼하여 막대한 재산과 로스차일드라는 이름이 후대까지 명예롭게 전해지도록 하는 것이 누군가로 인해 중단되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결실을 맺게 되지 않겠니?

 

물론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할 수도 있었겠지만, 사람들은 분명히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것이다. 이번 일이 딱 그런 경우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 의견에 절대 공감하지 않는다. …. 가족의 바람과는 반대로 행동하는 여동생의 일 때문에 곱지 않은 눈으로 너를 바라보며 거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 바로 그 사회가 너의 편이 될 것이며, 네가 자신의 원칙을 고수하고 빈말로 엉망으로 만들지 않는 것을 본다면 훨씬 더 존경심을 가질 것이다. 정직하고 곧은 사람은 항상 같은 부류의 사람을 높이 평가하는 법이란다.

Posted by 김구공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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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4세가 1821년 보기 흉하 두피낭종을 외과적으로 절제하기로 결정했을 떄, 그는 간단한 수술로 인해 목숨이 위험해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조지가 살던 시대에는 그가 계획한 종류의 시술에 따르는 사망률이 오늘날의 심장절개 수술로 인한 사망률보다 월등히 높았다. 그 무지막지한 살인자는 수술 후 감염이었다. 모든 외과의사들이 치료를 하려고 메스를 집어들 때마다 언제 어디에서나 나타나는 그 유령이 의식에서 사라지지 않았고 그들의 꿈속에 나타났다. 그 당시에 의사가 된다는 것은 수술 현장의 날카로운 비명과 몸부림뿐만 아니라 수술실 공기를 더럽히는 부패한 살에서 나는 구역질나는 냄새에 단련된다는 의미였다.

 

요즘에야 순식간에 스며드는 단도의 염증이 우리가 연쇄상 구균이라 부르는 둥근 사슬 모양 세균의 독성 때문에 발생한다고 말한다. 쿠퍼의 시대에 그 질병에 대해 확실히 아는 것은 딱 한 가지, 발작이 환자의 베인 상처 조직에 빠른 속도로 번진다는 것이었다. 일단 증상이 시작되면 신의 마음에 이해할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병의 진행은 막을 길이 없었다. 아무도 수술 중 생긴 상처에서 왜 단독이 생기는지 알지 못했고, 그것을 예방하는 방법도 몰랐으며, 그 엄청나게 빠른 진행 속도를 막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아는 사람도 없었다.

 

수술 후 감염은 19세기를 지나는 동안 점차 골칫거리가 되어갔다. 상처 감염은 너무 일반적인 합병증이라 수술이 끝나면 환자들과 의사들은 으레 고름을 예상하게 되었다. 가끔은 약간의 염증도 없이 깨끗하게 나아서 관찰하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상처들도 있었지만 그런 경우는 상당히 드물었고 그 원인도 설명할 수 없었다. 환자가 운이 좋으면, 상처가 난 자리만 곪기도 했는데, 그런 경우에는 5~6일 내에 냄새가 없는 걸쭉한 크림색 분비물이 상처 가장자리를 통해 밖으로 흐른 다음 차차 건강한 반흔 조직과 함께 상처를 메웠다. 이런 고름은 '건전한 고름'이라고 불리며 손꼽아 기다려지는 대상이었다.

 

훗날 그 건전한 고름은 포도상 구균의 활동으로 생긴 것이라고 밝혀지게 된다. 주로 상처 깊숙한 곳에 잠복하는 다른 세균 침입자들과 비교했을 때 포도상 구균은 19세기 외과의사들의 친구라 할 수 있었다. 반면 연쇄상 구균은 고름과 함께 있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않았으며, 그 유해한 것을 빼낼 방법이 없었다. 그것은 마치 관목 지대의 화재처럼 원형으로 퍼지며, 유독물질을 혈류로 미리 보내는 악성 세균이었다. 죽음의 징조와 마찬가지로 그 독소 자체는 고열과 이가 딱딱 부딪힐 정도의 오한으로 알 수 있었다. 의사들은 그 증후군을 단독이라 불렀지만 환자들은 성 안토니오의 불 St. Anthony's Fire 이라 불렀다.

 

그러나 희생자 모두에게 끔찍한 죽음을 선고하는 또 다른 형태의 감염이 있었다. 병원 괴저라는 이름으로 통하는 악취가 나고 메스꺼운 부패 작용이었다. 그 감염은 여러 세균들이 뒤섞인 결과였다. 그 세균들 중 일부는 지금 우리가 혐기성 세균이라 부르는 것들인데, 산소가 없는 곳이 그 세균에게 최고의 번식 환경이라 무기력한 숙주의 조직 깊숙이 침입하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생긴 것이다. 그것은 앞에 놓인 모든 것을 죽였고, 코를 찌르는 악취를 만들어 여러 세대에 걸쳐 유럽과 미국의 외과의사들의 옷에 배었다.

 

어떤 환자들의 경우에는 문제를 일으키는 미생물 집단이나 그 미생물을 포함하고 있는 핏덩어리가 언제라도 감염된 상처에서 혈관으로 들어가서 패혈증과 농혈증이라 불리는 혈액 중독을 일으켜 문제를 악화시킬 수도 있었다. 수술 후 감염된 자궁에서 발생하는 단독이나 패혈증, 또는 농혈증은 산욕열 환자들을 손을 씻지 않은 산부인과 의사들의 희생물로 만든 전염병이다. 또한 항상 파상풍의 위험이 존재했다. 전쟁터에서 입은 부상이나 농장에서 생긴 사고에서는 더 흔한 병이었지만, 파상풍은 대도시 병원 건물에서 수술을 한 많은 환자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1867년, 클로로포름 마취제의 발명자인 에든버러의 제임스 심슨 경은 "병원 제도 Hospitalism" 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런 수술에 대한 실망스러운 통계 자료를 제시했다. 영국에서 병원에 입원 중인 사지 절단 수술 환자 2천명 이상의 결과를 조사행서 300개 이상의 병상이 있는 병원에서 수술이 이루어졌을 경우 41%의 환자들이 사망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감염은 단연 가장 주된 사망 원인이었다. 병원 밖에서 절단 수술이 이루어진 다른 환자 200명 중에서는 11%만이 사망했다. 수술 후 사망률 숫자는 유럽의 모든 병원에서 높게 보고되었다. 파리는 60%, 취리히 46%, 글래스고 34%였고, 베를린, 뮌헨, 코펜하겐, 다른 도시들도 그와 비슷했다. 메사추세츠 종합병원의 절단 수술 환자 사망률은 26%, 펜실베이니아 병원은 24%로 보고되었다. 심슨의 경고는 정확했다. "우리나라 외과 병원 중 한 곳의 수술대 위에 누운 사람은 워털루 전투의 영국 군인들보다 죽을 확률이 더 높다" 패혈증으로 인한 높은 사망률 때문에 몇몇 유럽 도시에서는 가장 평한이 안 좋은 병원들이 철거되었다.

 

감염 위험 때문에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체 내부의 수술은 불가능했다. 수술은 꼭 필요한 경우에만 했고, 사지 절단 그리고 가슴과 체벽의 종양 제거에만 국한되었다. 1847년과 1870년 사이에 메사추세츠 종합 병원에서 시행된 수술 1,924건 다운데 1,098건은 절단 수술, 237건은 가슴 종양이며, 나머지는 거의 모두 비교적 덜 중요한 신체 부위에 관련된 것들이었다. 감염률은 모든 집단에서 높게 나타났고, 사망률도 마찬가지였다. 다음은 프레데릭 트레비스 Frederick Treves 경이 1870년대 초 [오래된 응접실 Old Receiving Room]이라는 제목의 수필에서 묘사하는 런던의 병원 수술실 모습이다.

 

"치료는 매우 거칠었다. 외과의사도 거칠었다. 그는 마취제 없이 수술을 하던 시절, 고통에 냉담할 뿐만 아니라, 거칠고, 강하고, 재빨라야 했던 시절의 태도를 답습했다. 고통은 어쩔 수 없이 동반되는 것으로, 질병의 유감스러운 측면이었다.

수술실에는 겨울이나 여름이나, 또 밤이나 낮이나 항상 불이 켜 있는 난로가 있다.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부터 했던 대로, 지혈을 할 때 사용하는 인두를 달구기 위해 항상 불을 준비해 놓는 것이었다. 패혈증은 병실에서 일반적인 병이었다. 사실 심각한 상처는 모두 곪는다고 볼 수 있었다. 고름은 가장 흔한 대화 주제였다. 외과의사의 일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이었기 때문이다. '녹색 빛이 나는 묽은 고름은 보기에도 좋지 않았을 뿐더러 좋은 현상이 아니었다. '장액성(漿液性)' 고름은 가장 심각한 상태의 고름이었다.

청결함은 아무래도 좋았다. 아니, 어울리지 않았다. 외과의사는 도살장을 연상시키는 검정색 프록코트를 입고 수술을 했다. 그것은 몇 년 간 말라붙은 피와 오물로 인해 뻣뻣했다. 코트가 더 많이 축축할수록 그 외과의사가 유능하다는 강력한 증거가 되었다. 상처는 기름에 적신 붕대로 감았다. 기름과 붕대는 솔직히 말해 오염된 것이었다. 붕대는 버려진 리넨에서 얻은 폐기된 면사의 일종이었다.

병실에는 스펀지가 하나 있었다. 그 악취가 나는 물건과 한때는 깨끗했던 대야의 물로 하루에 두 번씩 병원에 있는 모든 환자들의 상처를 닦았다. 이 때문에 환자가 회복될 가능성은 사라졌다. 병원 괴저로 모든 병실에서 많은 환자들이 사망했다."

 

이때까지 현미경은 기대했던 것만큼 과학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17세기 초 현미경을 이용해 "온통 털과 무척 날카로운 발톱으로 뒤덮인, 양처럼 큰 파리" 를 보았다는 갈릴레오의 이야기는 사실 아무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지 못했다. 나중에 안톤 반 레벤후크가 직접 설계하고 만든 우수한 렌즈를 이용해서 그가 극미동물이라 부르고 우리가 지금 세균이라고 부른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후 잠시 1660년 마르첼로 말피기의 모세혈관 증명을 포함해서 현미경에 의한 발견들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그 시대의 확대 시스템은 일그러진 상을 만들어내기 일쑤였고, 18세기 내내 현미경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의 원인이 되었다. 현미경의 배율이 높아질수록 렌즈의 둥근 모양과 보통의 빛이 다양한 스펙트럼의 색깔로 분산되었다.

 

일부 연구자들은 고배율 현미경을 사용할 수 있도록 수차를 줄이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 첫걸음은 1826년 이탈리아의 지오반니 바티스타 아미치가 발명한 유침대물렌즈였다. 그것은 굴절력이 다른 매개체를 통과한 빛이 인간의 눈과 동일한 방식으로 수차를 발생시킨다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었다.

 

글래스고 대학의 외과교수 조셉 리스터는 산소가 고름의 부패 작용을 일으킨다는 당대의 개념을 납득할 수 없었다. 그 개념을 주장하려면 건강한 육체가 저절로 감염되어야 했다. 게다가 그의 경험상 골절된 늑골이 폐에 구멍을 내어 공기가 상처로 들어가게 했을 때 흉부 감염이 발생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는 상처로 들어오는 어떤 이물질이 원인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물론, 루이 파스퇴르가 그 세상을 처음으로 탐험한 사람은 아니다. 옛날부터 언젠가 '전염성 생물 contagium animatum'이 발견되고, 이것이 질병의 원인을 설명하게 될 거라는 이론을 세운 사람들이 간혹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인 지롤라모 프라카스토리우스 Girolamo Fracastorius는 1546년 '보이지 않는' 병원체를 예견하기까지 했다. 1676년 레벤후크는 런던 왕립학회에 보낸 편지들에서 눈으로 볼 수 없는 '극미동물'을 설명했다. 그는 물에서, 그리고 물에 잠긴 유기물질에서 나중에는 자신의 어금니 부스러기에서 이 생물을 발견했다. 그리고 우리가 오늘날 연쇄상구균, 간균, 나선균이라고 알고 있는 세균들을 확인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질병 대문에 배출되는 물질에서 애써 그러한 세균을 찾느라 수고한 사람이 없었다.

 

그후, 루이 파스퇴르는 그 세균들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 자연발생 과정을 통해 새로 생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여 1857년과 1859년에 발표 실험의 결과와 추적 연구 결과를 프랑스 과학원 학술지 Compte Rendu de l'Academie des Sciences 에 발표했다. 조셉 리스터는 파스퇴르의 논문들을 읽고 또 읽고, "인체 조직에 심각한 해를 끼치지 않는 물질로 상처를 치료할 수 있다면, 이미 그 안에 있는 세균들을 죽이게 될 수 것이다. 그리고 다른 세균들이 더 이상 살아 있는 조직에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면 산소를 포함한 공기가 자유롭게 상처에 닿더라도 부패 작용을 막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소독을 위한 독으로, 인근의 칼라일 Carlisle 에서 도시 쓰레기의 악취 제거에 사용하던 석탄산을 선택했다.

 

그는 1865년 8월 12일, 짐수레 마차에 치여 골절된 경골이 피부를 뚫고 나와 다리에 4cm x 2cm 정도의 상처가 생긴 소년을 치료하는데 석탄산에 담갔던 리넨 붕대를 사용했다. 치료에는 6주가 걸렸고, 리스터의 첫 임상시험은 성공이었다.

경험이 쌓여 감에 따라 리스터는 석탄산을 상처만이 아니라 의료진의 손은 물론 모든 수술기구에도 사용했다. 수술 후 관리는 주기적 붕대 교체로 이루어졌고, 붕대를 가는 동안 상처에 닿는 모든 것은 소독액으로 가득한 공기 환경에서 다시 소독되었다.

"소독을 하기 전, 35명 중 16명 사망, 소독을 한 기간 동안 40명 중 6명 사망"

 

글래스고 밖의 다른 영국 외과의사들은 아직 소독법이나 그것의 바탕이 되는 원리인, 세균이 어떤 질병과 조직 부패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이 무렵에는, 감염된 상처에서 세균을 발견한 것의 중요성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세균이 감염의 원인이라기보다 부패 작용이 시작된 후에 상처에 들어간 이차적인 침입자라고 믿었다. 다른 회의론자들은 세균이 무해한 오염 물질이라고 여겨 그것이 감염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고, 리스터가 복합 골절과 농양, 절단 수술의 치료 결과를 개선한 것에도 수긍하지 않았다.

 

세균 이론에 관한 기사는 그 당시 미국 의학 잡지에 드물게 실릴 뿐이었다. 미국 내과의사들에 따르면, 세균이 질병의 원인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에는 아직 명확한 답이 없는 실정이었다. 미국 의학 사상에 있어 과학은 아직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그들은 실험실에서 비롯된 의학 사상은 전부 외국의 영향을 받은, 어딘지 수상스러운 기색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유렵 대륙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특히 독일어권 외과의사들은 미국인들보다 세균이 감염의 원인이라는 개념을 믿을 준비가 훨씬 더 잘 되어 있었다. 일단 세균 이론이 받아들여지자 소독법이나 그와 동일한 방법이 사용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선구자들 중 한 명인 뮌헨의 리터 폰 누스바움 Ritter von Nussbaum 은 리스터에게 편지를 썼다. "우리는 잇달아 놀라고 있습니다. 병원 괴저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병원의 수술 결과는 갈수록 좋아지고, 치료 시간은 짧아지고 있으며, 농혈증과 단독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과학사에서 빈번하게 일어난 것처럼, 혁신이 등장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한 것은 전쟁의 비극이었다. 짧았지만 격렬했던 프랑스-프로이센 전쟁(1870-1871) 때 소독법을 사용한 몇몇 외과의사들은 자신들의 환자 사망률이 대다수 동료들의 환자 사망률보다 훨씬 더 낮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연이어 슐레스비히홀슈타인 Schleswig Holestein 군과 하노버 군의 의무감을 지낸 조지 프리드리히 루이스 슈트로마이어 George Fredrich Louis Stromeyer는 절대 무능한 의사가 아니었음에도 그가 집도한 환자들의 수술 후 사망률은 무시무시했다. 무릎 관절을 절단한 환자 36명 전원이 사망했다. 프랑스의 통계 자료도 칭찬받을 여지가 전혀 없었다. 손가락과 발가락을 포함한 온갖 종류의 절단 수술 13,173건이 프랑스 육군 병원에서 시행되었는데 무려 10,006명이 사망했다.

 

영국 버밍엄 미들랜드의 외과의사 로손 데이트는 1887년 영국의사협회 연설에서 "저는 세균 같은 것은 조금도 개의치 않습니다" 라고 말했다. 자신이 수술한 환자들의 사망률이 낮은 이유는 배액관과 흡수성 붕대를 아낌없이 사용하고 청결한 것을 좋아하는 영국인의 본능 덕분이라고 했다 데이트는 수술 전 꼼꼼하게 손을 씻고 충분한 양의 세제와 뜨거운 물로 수술 기구들을 닦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그가 비웃던 바로 그 이론인 무균법 예방 처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국인들과 미국인들은 독일 외과 수술 환경에 스며들기 시작한 강력하고 압도적 동향에 저항하고 있었다. 소독법과 마취 덕분에 가능해진 수술은 새로운 방식을 이용해서 꼼꼼하고 신중하게 실행하는 것이 예전처럼 속도의 현란한 손재주를 강조하는 것을 대체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더 이상 산소가 상처로 들어가 곪기 전에 그리고 발버둥치는 환자가 자신을 붙잡고 있는 건강한 조수들에게서 도망치기 전에 30초 만에 다리를 절단할 필요가 없었다.

 

파스퇴르의 계속된 연구가 세균이 전염병을 일으킨다는 증거를 제시하고 있었던 것은 물론, 1878년 로버트 코흐 Robert Koch 라는 34세의 독일 세균학자가 처음으로 특정 세균이 특정 질병의 원인임을 밝혀내고 순수 배양한 세균을 다른 동물에게 주입하는 단순하고 분명한 실험으로 탄저병에 걸린 동물 피에서 발견한 간균이 그 병의 병리학적 변화를 일으키는 직접적인 병원체임을 입증했다. 1878년, 코흐가 기념비적 논문 [상처 감염의 병인론에 관한 연구]를 발표하면서 여섯 가지 다른 종류의 수술 부위 감염을 여섯 가지 세균과 연결할 수 있었다.

 

이후 사람들은 공기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적은 수의 세균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미생물은 필연적으로 공기 중에서 떨어지는 미립자기 아닌 다른 방식으로 옮겨져야 한다는 의미였다. 주된 감염의 명백한 근원은 의료 팀, 즉 의사들과 간호사들의 손과 수술 기구였다. 상처 감염은 월트 켈리의 인기 만화 주인공 포고Pogo가 말한 것처럼 "적을 만났는데 알고보니 우리였"다.

 

외과의사는 수술 전에 손을 씻어야 하고, 수술 도구는 끓여서 소독해야 하며, 상처를 덮는 천은 세균이 없어야 한다. 석탄산이든 다른 동일한 효과가 있는 약품이든 간에 환자의 피부를 살균제로 소독한 후에 살균한 손으로 쥔 살균한 칼로 절개해야 상처가 감염되지 않는다. 불결한 낡은 프록코트는 새로 세탁한 살균 가운으로 바꿔야 한다. 무균법이 탄생되는 순간이었다.





-  Sherwin B. Nuland  - Doctors: The Biography of Medicine 



Posted by 김구공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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